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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계서원(靑溪書院) -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56호
    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0. 11. 18. 04:19

    함양 청계서원

     

     

    청계서원(靑溪書院) 중수기 기록비

     

    본 서원(書院)은 이 땅에 역사의 준엄함과 사관(史官)의 역할이 무엇인가를 일깨워 준

    탁영(濯纓) 김일손(金馹孫) 선생의 위패(位牌)를 모신 곳이다.

    원래 이곳은 탁영(濯纓) 선생이 1495년 청계정사(靑溪精舍)를 창건(創建) 하고

    수학(修學) 하던 곳이었으나 1498년 선생이 무오사화(戊午史禍)에 연류되어

    그 해 7월 5일 이곳에서 피체(被逮)되어 참형을 당하신 후 페사(廢舍)되었다.

    그러나 선생을 추모하는 영남 유림들과 관찰사(觀察使) 조민희(趙民熙) 등이 발의하여

    1906년 정사(精舍)의 재건을 숙의하고 모금운동을 전개하였다.

    1917년 남계서원(濫溪書院)으로부터 본 대지를 기증받아 묘우(廟宇)를 비롯하여

    강당과 부속건물 그리고 유적비(遺跡碑) 건립을 착공(着工)하여 1921년에 준공(竣工)하였다.

    그 해 2월 16일 선생의 위패(位牌)를 봉안(奉安)하고 청계서원(靑溪書院)이라 현액(懸額)하였으며

    매년 2월과 8월 중정일(中丁日)에 향사(享祀)를 받드니 사후(死後) 416년 만에

    비로소 선생의 확고한 사관(史官)과 유지(遺志)가 찬연하게 빛을 발하게 되었다.

    1947년에 중수(重修) 공사가 있었으며,

    1983년 8월 6일 경상남도 문화재 제56호로 지정되었다.

    1986년 문화관광부에서 묘우(廟宇)를 중수(重修)하고 1987년부터

    함양군에서 비각(碑閣)을 중수(重修)하였으며 묘우(廟宇)와 내삼문(內三文) 및

    경내 조경사업을 실시하여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서기 2001년 4월 23일 청계서원보존위원회(靑溪書院保存委員會)

     

     

    청계서원(靑溪書院)의 홍살문(紅箭門)과 외삼문(外三門)

     

     

    청계서원의 정문인 취도문(就道門)

     

     

    청계서원의 동재(東齋)인 역가재(亦可齋)

     

     

    청계서원의 서재(西齋)인 구경재(久敬齋)

     

     

    청계서원(靑溪書院) 강당(講堂) 애락당(愛樂堂)

    동덕재(同德齋) 병의재(秉義齋)

     

     

    청계서원 묘우(廟宇) 청계사(靑溪祠)

     

     

    탁영 김일손 유허비각(擢纓 金馹孫 遺墟碑閣)

     

     

    탁영 김선생 유허비(濯纓 金先生 遺墟碑)

     

     

    유허비 이수(遺墟碑 螭首)와 귀두(龜頭)

     

     

    김일손(金馹孫, 1464~1498)

     

    경북 청도출신으로 본관은 김해(金海)이며, 자는 계운(季雲), 호는 탁영(濯纓),

    시호는 문민(文愍), 김종직(金宗直)의 제자로 글에 능했다.

    1486년 성종 때 문과에 급제, 춘추관 기사관(春秋館 記事官)으로 성종실록을 편찬할 때,

    스승 김종직이 지은 조의제문(弔義帝文)을 사초에 실은 것이

    이극동 유자광에 의해 연산군(燕山君)에게 알려지고 이를 계기로

    무오사화에 능지처참 당하고, 스승 김종직은 부관참시 당하였다.

    그는 글에 뛰어났으며 관리들의 부정부패를 비판하였다.

    연산군 1년(1495)에는 ‘청계정사’를 세워 유생을 가르쳤고,

    광무 10년(1905) 유림들이 그 터에 유허비를 세웠다.

    그 뒤 1915년에 건물을 원래 모습으로 고쳐 청계서원이라 하였다.

    봄·가을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청계서원(靑溪書院) -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56호

     

    이 서원은 1907년 청계정사가 있던 터에 세워진 것으로,

    탁영 김일손(擢纓 金馹孫)의 위패를 모시고 춘추로 향사(享祀)를 지내고 있다.

    김일손은 성종 때 사림파를 대표하는 학자로서 청요직(淸要職)을 두루 지냈으나

    연산군 때 무오사화(戊午士禍 또는 戊午史禍)에 희생되었다.

    그가 이곳 청계정사에서 한동안 공부를 한 적이 있어 유림에서 그 터에 서원을 세운 것이다.

    서원의 건물은 중앙에 정면 4칸, 측면 3칸의 팔각지붕 기와집 형태의 강당이 있으며,

    그 뒤쪽 높은 지대 위에 묘우인 청계사가 있고,

    강당 앞으로 학생들이 거처하던 동재(東齋)인 역가재(亦可齋)와

    서재(西齋)인 구경재(久敬齋)가 있다.

    경내에는 탁영 김선생 유허비(擢纓 金先生 遺墟碑)와 네모난 연못이 있다.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원평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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