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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량사 김시습 부도(無量寺 金時習 浮屠) - 충남 유형문화재 제25호
    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1. 4. 12. 19:56

    梅月堂 詩碑(매월당 시비)

     

    半輪新月上林梢(반륜신월상림초) 새로 돋은 반달이 나뭇가지 위에 뜨니

    山寺昏鐘第一鼓(산사혼종제일고) 산사의 저녁종이 울리기 시작하네.
    淸影漸移風露下(청영점이풍로하) 달그림자 아른아른 찬 이슬에 젖는데

    一庭凉氣透窓凹(일정양기투창요) 뜰에 찬 서늘한 기운 창틈으로 스미네

     

    - 설잠(雪岑) ‘가을밤에 초승달을 보며(中秋夜新月)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은 강릉인(江陵人)으로서

    세종 17년(1435) 서울에서 태어나

    성종 24년(1493) 부여(扶餘)의 무량사(無量寺)에서 일생을 마친 문인이다.

    어려서 신동의 이름을 떨쳐 앞날이 크게 촉망되었으나

    단종 폐위라는 불의의 변고를 당하여 일신의 명리의 길을 버리고

    천하를 방랑하는 시인으로 수도자로서 철저한 국외자의 길을 택하여

    많은 기행으로 자기의 철학을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책을 써서 석실에 숨기기도 하고 가는 곳마다 시를 써서

    바람에 흩날리고 물위에 띄워 버릴 수밖에 없었으나

    금오신화(金鰲新話)․ 매월당 시집 등 저술이 오늘에 전하고 있는 것은

    오로지 하늘이 그의 거룩한 뜻과 재능을 아끼고 많은 사람들이

    그의 외로운 뜻을 흠모한 까닭이었으니

    오늘 우리도 날로 빛나는 그의 업적을 기려 여기 작은 시비를 세운다

     

    1983년 11월  일

    전국시가비건립동호회에서 성금을 모아 이 비를 세우고

    예술원회원 정한모(鄭漢模)는 이 글을 짓고

    학술원회원 김동욱(金東旭)은 글씨를 쓰다.

     

     

    매월당 김시습(설잠스님) 부도

     

    김시습 사리는 일제 강점기 때 폭풍우로 나무가 쓰러지면서

    함께 넘어진 ‘김시습 부도’에서 발견되었다.

    이때 발견된 사리는 국립부여박물관에서 보관하다가 2017년 무량사로 이운하였고,

    무량사 경내에 봉안할 수 있도록 2020년 10월 새로이 부도를 조성하였다.

    1495년 조성한 ‘김시습 부도’는 현재 부여군 외산면 만수리 125-1번지에 위치하고 있다.

     

    매월당 김시습(1435~1493)

    세조 때 생육신의 한 사람으로 유학과 불교에 능통한 학자이자 문인이다.

    수양대군(세조)이 단종을 폐위시켰다는 소식을 듣고

    절개를 지키며 청빈한 삶을 살기 위하여 스님이 되어 전국을 떠돌다가

    마지막 남은 생을 무량사에서 보냈다.

     

     

     

    무량사 김시습 부도(無量寺 金時習 浮屠) - 충남 유형문화재 제25호

     

    부도(浮屠)는 덕이 높은 스님의 사리를 모시기 위해 세운 탑으로,

    승려의 묘탑(墓塔), 혹은 승탑(僧塔)이라고도 한다.

    무량사(無量寺)의 김시습(金時習) 부도는 조선 전기 문인이었던

    매월당 김시습(1435~1493)의 사리를 모신 것이다.

    김시습은 생육신의 한 사람으로서

    수양대군이 단종을 왕의 자리에서 물러나게 하고 왕위에 오르자

    21세에 승려가 되어 전국을 또돌다가 말년을 무량사에서 보냈다.

    일제강점기에 부도 안에서 김시습의 사리를 넣은 사리기가 발견되었다.

    현재 사리는 무량사에 모셨고, 사리기는 국립부여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이 부도는 조선 전기에 세워졌는데 조각이 화려하고 뛰어나다고 평가된다.

     

    충청남도 부여군 외산면 만수리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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