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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진 필경사(唐津 筆耕舍) - 충청남도기념물 제107호
    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1. 4. 10. 20:24

    심훈의 집 - 필경사

     

     

    필경사 옆에는 심훈(본명:심대섭, 1901~1936)의 묘지도 자리 잡고 있다.

    이 묘는 원래 경기도 안성시에 있었으나 2007년에 필경사로 이장했다.

     

     

    장편소설 상록수(常綠樹)의 주인공 - 박동혁, 채영신

     

     

    그날이 오면 - 심훈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은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날이

    이 목숨 끊기기 전에 와 주기만 할 양이면

    나는 밤하늘에 날으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의 인경(人磬)을 머리로 들이받아 올리 오리다

    두개골이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이 남으오리까

     

    그날이 와서 오오, 그날이 와서

    육조(六曹) 앞 넓은 길을 울며 뛰며 뒹굴어도

    그래도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미어질 듯하거든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커다란 북을 만들어 들처 메고는

    여러분의 행렬에 앞장을 서오리다

    우렁찬 그 소리를 한 번이라도 듣기만 하면.

    그 자리에 거꾸러져도 눈을 감겠소이다

     

     

    눈 밤 -심훈

     

    소리 없이 내리는 눈,

    한 치(寸), 두 치 마당 가득 쌓이는 밤엔​

    생각이 길어서 한 자(尺) 외다, 한 길(丈) 이외다.​

    편편이 흩날리는 저 눈송이처럼​

    편지나 써서 온 세상에 뿌렸으면 합니다.

     

     

    심훈 선생 흉상 부조(浮彫)

     

    심훈(沈熏)
    1901∼1936. 소설가·시인·영화인. 본명은 대섭(大燮). 본관은 청송(靑松). 호는 해풍(海風).

    아명으로 삼준 또는 삼보가 있고 아버지 상정(相珽)의 3남 1녀 중 3남으로 서울 노량진에서 출생하였다.

    1915년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였고, 1917년 왕족인 이해영(李海暎)과 혼인하였다.

    1919년 3·1 운동에 가담하여 투옥, 퇴학당하였다.
    1920년 중국으로 망명하여 1921년 항저우(杭州) 치장대학(之江大學)에 입학하였다.
    1923년 귀국하여 연극·영화·소설 집필 등에 몰두하였는데 처음에는 특히 영화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1924년 이해영과 이혼하였고 같은 해 동아일보사에 입사하였다.

    1925년 조일제(趙一齊) 번안의 〈장한몽 長恨夢〉이 영화화될 때 이수일(李守一) 역으로 출연하였고,

    1926년 우리나라 최초의 영화 소설 〈탈춤〉을 동아일보 연재하기도 하였다.

    이듬해 도일하여 본격적인 영화 수업을 받은 뒤 귀국하여 영화 〈먼동이 틀 때〉를 원작 집필·각색·감독으로

    제작하였으며 이를 단성사에서 개봉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다.

    식민지 현실을 다루었던 이 영화는 〈어둠에서 어둠으로〉라는 제목이 말썽을 빚자

    개작한 작품이며 영화제작은 이것으로 마지막이었다.
    1928년 조선일보사에 다시 입사하였고, 1930년 안정옥(安貞玉)과 재혼하였다.

    1931년 경성방송국(京城放送局)으로 옮겼으나 사상문제로 곧 퇴직하였다.

    1930년 조선일보에 장편 〈동방(東方)의 애인(愛人)〉을 연재하다가 검열에 걸려 중단당하였고,

    이어 같은 신문에 〈불사조 不死鳥〉를 연재하다가 다시 중단당하였다.

    같은 해 시 〈그날이 오면〉을 발표하였는데 1932년 향리에서 시집 《그날이 오면》을 출간하려다

    검열로 인하여 무산되었다(이는 1949년 유고집으로 출간되었다.).

    1932년 고향인 충청남도 당진으로 낙향하여 집필에 전념하다가 이듬해 상경하여

    조선중앙일보사에 입사하였으나 다시 낙향하였다.

    1933년 장편 〈영원(永遠)의 미소(微笑)〉를 (조선중앙일보 朝鮮中央日報)에 연재하였고

    단편 〈황공(黃公))의 최후(最後)〉를 탈고하였다(발표는 1936년 1월 신동아).
    1934년 장편 〈직녀성 織女星〉을 조선중앙일보에 연재하였으며

    1935년 장편 〈상록수 常綠樹〉가 동아일보 창간 15주년 기념 장편소설 특별공모에 당선, 연재되었다.

    1936년 장티푸스로 사망하였다.

    <동방의 애인>, <불사조> 등 두 번에 걸친 연재 중단사건과 애국 시 <그날이 오면>에서 알 수 있듯이

    그의 작품에는 강한 민족의식이 담겨 있다.

    <영원의 미소>에는 가난한 인텔리의 계급적 저항의식, 식민지 사회의 부조리에 대한 비판정신,

    그리고 귀농 의지가 잘 그려져 있으며 대표작 <상록수>에서는 젊은이들의 희생적인 농촌사업을 통하여

    강한 휴머니즘과 저항의식을 고취시킨다. 행동적이고 저항적인 지성인이었던

    그의 작품들에는 민족주의와 계급적 저항의식 및 휴머니즘이 기본정신으로 관류하고 있다.
    특히, 농민계몽 문학에서 이후의 리얼리즘에 입각한 본격적인 농민문학의 장을 여는 데

    크게 공헌한 작가로서 의의를 지닌다.

    문화관광부 선정 1996년 8월의 문화인물로 선정되었다.

     

     

     

    常綠樹文化館(상록수 문화관)

     

     

    심훈 선생의 문학 산실

     

    심훈 소설 ‘상록수’에서 확인되는 상록수(常綠樹) 4종

     

    “날이 어둑어둑해지고 매미 쓰르라미 소리도 점점 엷어질 무렵에는

    회관 앞마당이 턱 어울리도록 두길 세길이나 되는 나무가 섰다.

    전나무, 향나무, 사철나무(冬靑) 같은 겨울에도 잎사귀가 떨어지지 않는

    교목(喬木)만 골라서 '봄이나 가을에 심어야 잘 산다’고

    고집을 하는 회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파다가 옮겨 심은 것이다.”

    “동혁이가 동리 어귀로 들어서자 맨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불그스름하게 물든 저녁 하늘을 배경 삼고,

    언덕 위에 우뚝우뚝 서있는 전나무와 소나무와 향나무들이었다.

    회관이 낙성되던 날 그 기쁨을 영원히 기념하기 위해서 회원들과 함께

    파다 심은 상록수들이 키돋움을 하며 동혁을 반기는.”

     

    즉 소설 속 박동혁이 자칭하는 상록수는 전나무, 향나무, 사철나무(冬靑), 소나무

     

     

     

    沈熏 先生 故宅(심훈 선생 고택) - 필경사

     

     

    당진 필경사(唐津 筆耕舍) - 충청남도 기념물 제107호

     

    필경사(심훈 선생 고택)는 상록수의 작가 심훈(沈熏, 1901~1936) 선생이

    1932년 서울에서 그의 아버지가 살고 있는 당진 부곡리로 내려와 작품 활동을 하던 중

    1934년에 직접 설계하여 지은 집이다.

    '필경(筆耕)'은 심훈 선생의 1930년 7월 작품으로

    조선인들의 마음을 붓으로 논밭을 일구듯 표현하고자 하는 의지와 함께

    자신의 집을 '필경사'라 명명한 것으로 보인다.

    필경사는 대지 661㎥에 건평 62㎥(18,7평)인 아담한 팔작지붕의 목조집이며,

    ‘-’자형 초가지붕 아래 목조기둥으로 세워져 있으며

    벽체는 황토를 짓이겨 바른 예전 농촌의 전형적인 초가이다.

    필경사 내부에는 심훈 선생이 읽었던 책들이 책상 위에 흩어져있고

    등불과 옷가지, 부엌의 아궁이, 화장실까지 당시의 모습을 재연해 놓았다.

    심훈 선생은 민족의식과 일제에 대한 저항의식을 지닌 당대의 지식인으로서

    1935년 농촌 계몽소설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상록수(常綠樹)'를 집필하였다.

     

    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 상록수길 97 (부곡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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