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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무량사(扶餘 無量寺)국내 나들이/사찰(寺刹), 불교(佛敎) 2021. 4. 13. 20:14
萬壽山 無量寺(만수산 무량사)
무량사 일주문 - 광명문(光明門)
앞쪽에는 萬壽山 無量寺(만수산 무량사)라 현판이 걸려있고,
뒤쪽에는 光明門(광명문)이라 현판이 걸려 있다.풍치 보안림(風致保安林)
산림법에 따라 명승지, 유적지, 관광지, 공원, 유원지 따위의 주위 산림과
그 진입 도로변 또는 고속도로변, 주요 간선 도로변, 철도변 및 도시 주변으로서
풍치 보전상 필요하다고 인정되어 보안림으로 지정된 산림.
천왕문(天王門) - 일제강점기의 목조 건축물
천왕문에는 대개 사천왕상이 있다.
사천왕은 천상계 사천왕천의 동. 서. 남. 북 네 곳을 관장한다고 믿었던
고대 인도의 신화적인 존재다. 사천왕은 수미산 기슭을 지키면서그곳 중생들이 바른 가르침에 따라 올바르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살피고,
그들을 바른 길로 인도한다는 천왕들이다.
사천왕상(四天王像)
동방은 持國天(지국천)으로 손에 칼을 들고 있으며,
서방은 多聞天(다문천)으로 손에 비파를 들고 있다.남방은 增長天(증장천)으로 오른손엔 용을 움켜쥐고 있다.
북방은 廣目天(광목천)으로 탑을 들고 있다 합니다.부여 무량사 오층 석탑(扶餘 無量寺 五層石塔) - 보물 제185호
부여 무량사 오층 석탑은 극락전 앞에 있는 고려 전기의 석탑이다.
탑을 받치는 기단은 신라 양식의 탑이 2층인 것과 달리 단층이다.
탑신은 지붕돌과 몸돌을 한 층으로 하여 5층을 이루고 있다.지붕돌의 처마 끝이 살짝 올라가 있는데, 이는 백제의 양식과 비슷하다.
이처럼 이 탑은 백제와 통일 신라의 석탑 양식이 조화를 이루도록 만든
고려 전기의 탑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1971년 해체 수리를 할 때 탑신에서 고려 시대 금동 아미타 삼존불상과
사리 장치, 금동 관음보살 좌상 등이 나왔다.부여 무량사 석등(扶餘 無量寺 石燈) - 보물 제233호
부여 무량사 석등은 통일 신라 말기에서 고려 초기 사이에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등이다.
석등은 절의 탑이나 건물 앞에 세워 부처나 보살의 지혜가 밝다는 것을 나타낸다.탑 앞에 등불을 밝히면 33천에 다시 태어나 허물이나 번뇌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한다.
무량사 석등은 불을 밝혀 두는 부분인 화사석을 중심으로
아래에는 네모난 바닥 돌 위로 3단의 받침돌을 쌓고,
위로는 지붕돌과 머리장식을 얹은 모습이다.
아래 받침돌에는 여덟 개의 연꽃이 조각되어 있고
가운데 받침은 8각 기둥으로 길게 세워져 있다.
그 위로 연꽃이 새겨진 위 받침돌이 놓여 있다.
화사석 8면 중 4면은 넓고, 4면은 좁은 형태로 넓은 4면에 창이 뚫려 있다.
전체적으로 지붕돌이 약간 큰 감이 있으나
곡선이 경쾌하게 표현되어 있어 무거운 느낌은 없다.
* 33천 : 육욕천, 십팔천, 무색계 사천과 일월 성수천, 상교천,
지만천, 견수천, 제석천을 통틀어 이르는 말.
무량사 극락전(無量寺 極樂殿) - 보물 제356호
극락전은 극락세계를 관장하는 아미타불을 모신 전각이다.
무량사의 중심 불전으로서 한국에는 흔치 않은 2층 불전인데,
외부에서는 2층으로 보이지만, 내부는 층 구분 없이 하나로 트여있다.아래층의 규모는 앞면 5칸, 옆면 4칸이며,
1층 내부 기둥이 통 기둥으로 올라가 2층의 외부 기둥이 되었다.
공포는 조선 시대의 다포형식으로 조각과 장식이 화려하다.
불전 내부에는 가운데 아미타불(阿彌陀佛)을 중심으로
양쪽에 관세음보살과 대제지보살을 모셨다.
주불인 아미타불은 극락전이 중건된 연대와 같은 인조 11년(1633)에 조성된 것이며,흙으로 빚은 소조불로는 최대의 규모를 자랑한다.
이 건물은 조신 중기의 건축 양식을 잘 보존하고 있어 건축적 가치가 높다.
김시습 초상(金時習 肖像) – 보물 제1497호
김시습 초상은 조선 전기 문인이었던 매월당 김시습(1435~1493)을 그린 것이다.
김시습은 생육신의 한 사람으로 수양대군이 단종을 폐위하고 왕위에 오르자
21세에 승려가 되어 전국을 떠돌다가 남은 생을 무량사에서 보냈다.
얼굴은 전체적으로 옅은 살구색과 짙은 갈색을 사용해서 대비되게 표현하였고,
수염은 검은색으로 섬세하게 그려 당시 초상화의 특징이 잘 드러난다.
약간 찌푸린 눈매와 꼭 다문 입술, 눈에 어린 총명한 기운에서
김시습의 내면이 생생하게 전달된다.
이 초상은 역사적인 인물인 김시습을 그렸다는 사실 외에도
조선시대 야복(野服) 초상화 중 걸작이라는 점에서 가치가 높다.
* 야복(野服) : 벼슬에서 멀어진 사람을 뜻하는 야인(野人)이 입는 옷
무량사 김시습 부도(無量寺 金時習 浮屠) - 충남 유형문화재 제25호
부도(浮屠)는 덕이 높은 스님의 사리를 모시기 위해 세운 탑으로,
승려의 묘탑(墓塔), 혹은 승탑(僧塔)이라고도 한다.
무량사(無量寺)의 김시습(金時習) 부도는 조선 전기 문인이었던
매월당 김시습(1435~1493)의 사리를 모신 것이다.
김시습은 생육신의 한 사람으로서
수양대군이 단종을 왕의 자리에서 물러나게 하고 왕위에 오르자
21세에 승려가 되어 전국을 또 돌다가 말년을 무량사에서 보냈다.
일제강점기에 부도 안에서 김시습의 사리를 넣은 사리기가 발견되었다.
현재 사리는 무량사에 모셨고, 사리기는 국립 부여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이 부도는 조선 전기에 세워졌는데 조각이 화려하고 뛰어나다고 평가된다.
느티나무에 기생하여 자라고 있는 소나무(무량사 입구)
만수산 등산로 안내판
부여 무량사(扶餘 無量寺)
무량사는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된 사찰로서 만수산 기슭에 자리 잡고 있다.
고려시대에는 대웅전, 극락전, 천불전, 응진전, 명부전 등의 불전과
30여 동의 요사와 12개의 암자가 있었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모두 불타고 조선 인조(1623~1649 재위) 때
진묵 선사가 다시 지어 오늘에 이른다.
무량사는 2층의 극락전을 중심 불전으로 하는 아미타 사원이다.
극락전 앞에는 오층 탑과 석등이 있고 동쪽에는 명부전, 서쪽에는 영산전이 있다.
주변에 도솔암과 태조암 등의 암자가 있다.
충청남도 부여군 외산면 무량로 203 (만수리) 대한불교 조계종 무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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