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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오랑 세오녀 상(延烏郞 細烏女 像) - 호미곶(虎尾串)
    일상생활속에서/작품속으로 2021. 6. 15. 19:25

    延烏郎 細烏女(연오랑 세오녀)


    第八阿達羅王卽位四年丁酉, 東海濱有延烏郎細烏女, 夫婦而居. 一日,

    延烏歸海採藻, 忽有一巖【一云一魚】

    負歸日本, 國人見之曰 "此非常人也." 乃立爲王【按《日本帝記》,

    前後無新羅人爲王者, 此乃邊邑小王而非眞王也.】

    細烏怪夫不來, 歸尋之, 見夫脫鞋, 亦上其巖, 巖亦負歸如前. 其國人驚訝, 奏獻於王,

    夫婦相會, 立爲貴妃. 是時, 新羅日月無光, 日者奏云 "日月之精, 降在我國, 今去日本, 故致斯怪."

    王遣使求二人. 延烏曰 "我到此國, 天使然也,

    今何歸乎? 雖然朕之妃有所織細?, 以此祭天可矣."

    仍賜其?. 使人來奏, 依其言而祭之, 然後日月如舊. 藏其?於御庫爲國寶,

    名其庫爲貴妃庫. 祭天所名迎日縣, 又都祈野. (三國遺事)

     

    제8대 아달라왕 즉위 4년 정유(157)에 동해 바닷가에 연오랑과 세오녀 부부가 살고 있었다.

    하루는 연오가 바다에 가서 해초(미역 종류)를 따고 있던 중

    갑자기 한 바위(혹은 한 고기라고도 한다.)가 연오를 싣고 일본으로 가버렸다.

    그 나라 사람들이 연오를 보고 “이는 비상한 사람이다.” 그래서 왕으로 삼았다.

    (일본 제기帝紀를 살펴보면 전후에 신라 사람이 왕 될 이가 없으니

    이것은 변읍의 소왕이고 진왕은 아닐 것이다.)

    세오는 그 남편이 돌아오지 않음을 괴이하게 여겨 가서 찾다가 남편의 벗어 놓은

    신이 있음을 보고 또한 그 바위에 올라가니 바위는 또한 그 전처럼 세오를 싣고 갔다.

    그 나라 사람들이 보고 놀라서 왕께 아뢰니 부부가 서로 만나게 세오를 귀비로 삼았다.
    이때 신라에서는 해와 달이 빛이 없어지니 일관이 말했다.

    “해와 달의 정기가 우리나라에 있었던 것이

    지금 일본으로 가버린 때문에 이런 괴변이 일어났습니다.”

    왕은 사자를 일본에 보내어 두 사람을 찾았다. 연오는 말했다.

    “내가 이 나라에 온 것은 하늘이 시킨 일이니 이제 어찌 돌아갈 수 있겠소.

    그러나 나의 비가 짠 고운 명주 비단이 있으니 이것으로써 하늘에 제사를 지내면 될꺼요,”

    이에 그 비단을 주었다. 사자가 돌아와서 아뢰었다.

    그 말대로 제사를 지냈더니 그런 후에 해와 달이 그 전과 같아졌다.

    그 비단을 임금의 창고에 간직하여 국보로 삼고 그 창고를 귀비고라 하며

    하늘에 제사 지낸 곳을 영일현 또는 도기야라 했다.

    (전거 : 삼국유사)

     

     

     

    연오랑 세오녀 상(延烏郞 細烏女 像)


    '연오랑 세오녀(延烏郞 細烏女)' 기록은 삼국유사에 수록된 설화로

    단군신화가 한국문화의 뿌리를 형성했듯이 오랜 세월 동안 포항 문화의 큰 물줄기를 이뤄왔다.

    '연오랑 세오녀' 부부는 신라 초기 영일(迎日) 지역의 소국 근기국(勤耆國)의 인물로

    신라 8대 아달라왕 4년(157)에 일본으로 건너가

    길쌈과 제철기술 등 선진문화를 전파하고 그곳의 왕과 왕비가 되었다고 한다.
    이 설화에서 일월정(日月精)이 일본으로 건너갔다가 세오녀가 짠 비단을 제물로 삼아

    하늘에 제사를 지냄으로써 이를 다시 회복했다는 이야기는

    이 고장이 예로부터 일월숭배와 제천의식의 국가 행사처였음을 일러준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이어 온 영일의 해맞이는 육당 최남선 등에 의해

    조선10경(朝鮮十景)의 하나로 꼽히기도 했으며,

    오늘날 포항의 호미곶(虎尾串)이 한국에서 가장 해가 먼저 뜨는 곳이라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입증되어 새 즈믄해 1월 1일 한민족해맞이축전의

    국가행사장으로 선정되기에 이르렀다.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호미곶면 대보리 (호미곶 해맞이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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