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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용재 백낙준 박사 상(庸齊 白樂濬 博士 像)
    국내 나들이/동상(銅像),흉상(胸像),비(碑), 2021. 9. 29. 20:13

    백낙준(白樂濬, 1895~1985)

     

    호는 용재(庸齊), 영어 이름은 조지 백(George Paik)이다.

    재미 시절 별명은 백성빈(白成彬)이었으며, 창씨개명한 이름은 시라하라 라쿠준[白原樂濬]이다.

    1910년 평안남도 선천의 신성중학교에 입학, 중학생으로 신성소학교 교사를 겸직했다.

    1922년 미국 파크대학교를 거쳐 1925년 프린스턴대학교 대학원에서 역사학과 신학을 공부한 뒤,

    1925년 예일대학교 대학원에서 종교사 연구를 시작해 1927년 철학박사학위를 받았고,

    같은 해 캔자스 시티교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1929년 연희전문학교 교수를 지내는 한편, 조선기독교서회 이사, 조선어학회 회원,

    영국 황실아주학회 한국지부 이사, 진단학회와 조선민족학회 발기인,

    조선기독교청년회 이사 등을 지냈다.

    그뒤 외국에서 교육활동과 학술활동을 전개했고, 1939년 귀국했다.

    1945년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장, 한국교육위원회 자문위원을 지내면서

    교육심의회 구성에 주력했고, 홍익인간의 교육이념 정립에 기여했다.

    1946년 연희대학교 초대 총장에 취임하여 1960년까지 연세대학교 총장을 역임하면서

    1948년 대한소년단 총재를 지냈으며, 1950~52년 제2대 문교부장관을 지냈다.

    1953년 서울특별시 교육회장과 기독교청년회(YMCA) 재단 이사장을 지냈고,

    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의 제7·8차 총회 때 한국 대표를 지냈으며,

    1956년 대한교육연합회 회장을 역임했다.

    1960년 7·29총선거 실시 때 참의원 의장에 선출되었다.

    1961~85년 연세대학교 명예총장을 역임했고, 1969년 국토통일원 고문,

    1974~85년 외솔회 이사장을 지냈으며, 1980~85년 국정자문회의 운영위원,

    1983~85년 학술원 원로회원(종교사학 분야)을 지내면서

    학계·사회·교회·국제관계 전반에 걸쳐 다양하게 활동했다.

    대한민국 국민훈장 무궁화장과 인촌문화상 등을 수상했으며,

    주요저서로 〈한국 교육과 민족 현실〉·〈한국의 현실과 이상〉(상·하)·

    〈한국개신교사 1832~1910〉·〈나의 인생관〉·〈나의 종강록〉 등이 있다.

    출처 : 다음백과

     

     

     

    용재 백낙준 박사 상(庸齊 白樂濬 博士 像)

     

    여기 모신 이 어른은 1957년 연희대학교와 세브란스 의과대학을 통합하여

    연세대학교로 다시 세운 초대 총장 백낙준 박사이시다.

    교육과 학문 민족 봉사와 자유정신의 구현에 뜻을 두시고 일생동안

    연세와 민족을 붙들고 키운 연세의 정신적 주지시며 민족교육의 스승이시며

    겨레의 지도자시고 하나님의 종이시다.

    일찍이 연세를 국학연구의 발상지로 민족교육의 터전으로

    진리 자유의 전당으로 힘써 이끄시며

    연세는 연세인의 연세요, 한민족의 연세요, 세계의 연세임을 밝히시고

    연세의 맡기어진 하늘의 사명을 일깨워 주시다.

    그러기에 용재 선생에게 있어서 연세는 사랑이요 생명이시니

    여기 연세인과 함께 영원히 계시다.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연세로 50 (신촌동)

    연세대학교 신촌캠퍼스 중앙도서관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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