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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사 박종보어찰첩(正祖賜 朴宗輔御札帖) - 경기도 유형문화재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1. 11. 19. 21:21
정조사 박종보어찰첩(正祖賜 朴宗輔御札帖) - 경기도 유형문화재
정조가 박종보에게 보낸 어찰첩
정조가 처남인 박종보(朴宗輔, 1760~1808)에게 보낸 친필 어찰 19통을
노랑색과 분홍색의 고급 색지를 사용해 궁중 장황으로 꾸민 중요한 어찰첩이다.
내용은 정조가 박종보의 안부와 궁궐 출입 여부를 묻거나 하사한 선물의 목록이 대부분으로
처남인 박종보와 매우 친밀한 사이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박종보는 정조의 후궁이자 순조의 생모인 수빈박씨(綏嬪朴氏, 1770~1822)의 큰 오라버니이다.
수빈박씨는 1787년(정조 11) 2월 8일에 삼간택에서 정조의 빈(嬪)으로 정해졌다.
박종보의 본관은 반남(潘南)으로 아버지는 판돈령부사 박준원(朴準源, 1739~1807)이며,
어머니는 증(贈) 이조참판 원경유(元景游)의 딸(1740~1783)이다.
1787년 누이동생이 빈으로 간택되자 음보(蔭補)로 장악원 주부에 등용되고
사옹원 주부와 의빈부·충훈부 도사를 지냈다.
1789년 생원시에 합격했고 이듬해 정조의 아들[純祖, 순조]이 태어나자
왕명에 따라 궁에서 원자(元子)를 보육하는 책임을 맡았다.
1800년(순조 즉위) 정조 붕어(崩御) 후 정순왕후(貞純王后)가 수렴청정할 때
가까운 친척을 임금 측근에 두어야 한다고 하여 동부승지에 임명되었다.
이듬해 공조참의가 되고 순조가 천연두를 앓았을 때 입직한 공로로 호조참판이 되었다.
1803년 형조참판을 거쳐 성천부사·춘천부사 등을 지냈고
1806년 내직으로 들어와 사도시 제조가 되었다.
그때 대신의 천거로 호조판서에 임명되나 ‘음관(蔭官)이 한 사람의 천거로
호조판서가 된 것은 유례가 없다’고 세 차례 상소하며 사양했다.
비변사 당상으로 다시 임명되나 나가지 않았다.
사후 영의정에 추증되었고 시호는 충익(忠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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