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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25 전쟁 영웅 김용하 소령 - 이화령전투(梨花嶺戰鬪)
    일상생활속에서/나라사랑 2021. 12. 12. 21:11

    작렬하는 적 포화도 두렵지 않다. 연대 주력부대를 죽음으로 엄호하다.

     

     

     

     

    이화령전투(梨花嶺戰鬪)

     

    이화령전투는 국군의 지연전 과정에서 제6사단 제2연대가

    문경 북쪽의 이화령 일대에서 1950년 7월 13일부터 7월 16일까지 4일간

    북한군 제2군단 예하 제1사단의 남진을 지연시킨 방어 전투이다.

    북한군의 기습남침에 한강 방어선이 무너진 국군은 축차적인 지연전을 펼쳐

    소백산맥의 중앙 지대에 새로운 진지를 편성했다.

    이때 국군 제6사단은 돌파될 경우 낙동강까지 물러설 수밖에 없는 주요 지역인 문경지역

    방어를 담당함으로써 중부 내륙으로 남진하는 북한군 제1사단과 대결하게 되었다.

    사단장 김종오 대령은 군단의 작전계획에 따라 이화령에 제2연대를,

    조령에 19연대를 각각 배치해 거점 방어를 펼칠 계획으로

    1950년 7월 12일 사단을 문경에 집결시켰다.

    제2연대는 야간 도보 행군으로 다음 날 새벽 2시 무렵 이화령 일대에

    진지구축을 완료했으나, 이 과정에서 수안보 방면으로 우회한

    북한군 제1사단 일부 병력으로부터 공격을 받기도 했다.

    7월 14일 새벽 4시 30분 무렵 북한군 제1사단 2연대는

    집중 포격의 지원을 받으며 국군 제2연대를 공격했다.

    짙은 안개를 이용해 북한군은 진지 진입을 시도한 끝에 제2대대와 제3대대 진지를 돌파했다.

    이에 연대장 함병선 대령은 제1대대로 역습을 개시해 빼앗긴 진지를 탈환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이화령과 조령에 대한 북한군의 압력이 가중되면서

    전반적인 전황은 국군에게 불리하게 전개되었다.

    제2연대 우측에서 조령을 방어하던 제19연대가 북한군과 격전 끝에

    문경 방면으로 철수를 시작했고, 이화령 서남쪽 계곡으로 북한군의 침투가

    이어지면서 제2연대는 퇴로가 차단될 위기에 직면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연대는 7월 16일 정오 무렵 사단장의 명령에 따라 철수를 단행해

    상당한 병력을 손실한 채 오후 7시 남호리에 집결했다.

    이 전투에서 국군 제6사단은 북한군 제2군단 주력이 상주 정면을 공격한다는 사실을 확인했고,

    효율적인 전선 형성과 지연전을 펼쳐 국군과 미군이 낙동강선으로 철수해

    방어선을 형성할 수 있는 시간을 제공했다.

    반면에 북한군은 유엔군 증원부대가 국군과 함께 낙동강 방어선을 형성하기 전에

    신속히 남진해 전쟁을 종료한다는 작전계획에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었다.

     

     
     

    대한민국 육군 소령 김용하(1926~1950)

     

    1926년 11월 29일 경상북도 경주에서 출생한 김용하 소령은

    육군 사관학교 제6기로 입교해 1948년 7월 28일 졸업과 동시에 육군 소위로 임관했다.

    6‧25 전쟁 초기 제6사단 2연대에 배속된 그는 홍천지구 전투에 이어 충주지구 전투 중

    달천강 도하작전에서 효과적인 근접 지원사격으로 큰 전공을 세웠다.

    이후 사단의 소백산맥 방어작전에 따라 제2연대 1대대 4중대장 및 중화기 중대장으로

    문경지역 방어에 투입된 그는 이화령 전투에 참전했다.

    전략적 요충지인 이 지역을 빼앗기게 되면 방어선을 낙동강선으로 물려야 하는 중요한 전투였다.

    이화령 방어를 담당했던 제2연대는 북한군의 공격에 진지를 빼앗긴 후 역습으로

    진지를 탈환했으나, 이어진 북한군의 공격으로 철수를 단행할 수밖에 없었다.

    이때 제1대대장 박노규 중령은 중화기 중대장인 김용하 대위(당시 계급)에게

    화력으로 대대 주력의 철수를 엄호할 것을 명령했다.

    적의 포격이 급증하는 가운데 김용하 대위는 총알이 빗발치는 능선에서부터

    포화가 작렬하는 계곡으로 동분서주 뛰어다니면서 대원들을 독려하였고

    중대가 철수하기 전에 적에게 최대한 타격을 가하려고 했다.

    하지만 혼신의 힘을 다해 주력의 철수를 엄호하던 김용하 대위는

    우박처럼 쏟아지는 적 포탄의 파편을 맞고 그 자리에서 장렬히 전사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김용하 대위의 이러한 공적을 인정하여

    1950년 12월 30일 1계급 특진(소령)과 을지무공훈장을 추서 했다.

     

     

     

    2021년 12월 이달의 6.25 전쟁 영웅 - 국가보훈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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