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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산이씨(韓山李氏) - 대전 뿌리공원
    국내 나들이/공원(公園)으로 2022. 1. 15. 04:06

    작품 : 향수

     

    조각가 : 천종권

    작품 설명 : 이 작품은, 선조의 고매한 학덕과 굳은 절조를 숭상하는 자손들의 그리움과,

    후손들의 번영과 학문 숭상을 기원하는 선조의 간곡한 유훈을 족자와 붓

    그리고 종회의 휘장으로 형상화하였음.

     
     
     
     

    한산이씨(韓山李氏)의 유래(由來)와 가문(家門)

     

    한산이씨는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면을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한산이씨가 관향(貫鄕)을 한산으로 삼게 된 것은,

    고려 때 원(元) 나라 제과(制科) 전시(殿試) 등에 네 번이나 급제하신

    성리학(性理學)의 대종(大宗) 문효공(文孝公) 가정(稼亭) 이곡(李穀, 1298~1351) 선생과,

    그의 아들로서 문과에 장원급제하시고 다음 해 원(元)의 전시에 합격하시어

    두 나라의 온갖 중요 요직을 거쳐 정당문학(政堂文學), 대사성(大司成), 대제학(大提學),

    문하시중(門下侍中)에 오르신 문정공(文靖公) 목은(牧隱) 이색(李穡, 1328~1396) 선생이

    한산부원군(韓山府院君)에 봉해진 데에서 연유한다.

    그래서 한산은 한산이씨 시조이신 호장공(戶長公)계의 이윤경(李允卿) 호장의 자손들이 정착하여

    8백 년 동안 쌓아 놓은 고고한 삶의 흔적이 살아 숨 쉬는 한산이씨의 터전이다.
    가정 이곡 선생은 한국 가전체(假傳體) 문학의 시초인 「죽부인전(竹夫人傳)」외

    수많은 작품을 남긴 대문호이며, 또 원(元)에서 문명을 떨친 정치, 외교가로서

    당시 고려의 딸들을 원나라에 강제로 데려가는 고통스러운 제도(貢女制度)를

    원의 순제에게 간하여 폐지케 한 불멸의 고려 공신이다.

    목은 이색 선생은 고려의 관리로서 전제개혁(田制改革) 등

    당시의 정치, 사회의 폐단을 과감히 개혁한 정치가이며,

    성균관을 창건하여 수년간 대사성을 맡아 성리학의 전파와 생활화에 크게

    공헌한 우리나라 성리학의 유종(儒宗)이자 교육가이며,

    뛰어난 문장과 6 천수 이상의 주옥같은 시를 남긴 동방의 대문호이다.

    특히 고려가 조선으로 바뀌는 때에, 마지막까지 고려를 지키고자 했던 선생의

    굳은 절조(不事二君, 불사이군)는 단순한 정치적 태도를 넘어

    유교 전래의 가치관(春秋大義, 춘추대의)의 실천이었는바,

    선생을 지금까지 삼은(三隱) 중의 한 분으로 존숭(尊崇)하고 있다.
    한산이씨는 가정과 목은 선생을 중시조로 받들고 있다.

     

    대전광역시 중구 침산동 364 뿌리공원 內

     

     

     

     

    사람들이 말하기를 나라는 가정과 목은 선생에게 의지(依持)하기를 시귀(蓍龜)와 같이했고,

    나라 안 밖의 학자들도 두 선생을 우러러 받들기를 산두(山斗)와 같이 했다 했으니,

    이 부자(父子) 분의 국가적 공헌과 학덕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고도 깊다.

    사육신의 한 분이며 한글 창제의 핵심 주역이던 이개(李塏),

    토정비결(土亭秘訣)과 걸인청(乞人廳)으로 유명한 이지함(李之菡),

    대문장가로서의 영의정을 지낸 이산해(李山海), 영의정 이경재(李景在),

    좌의정 이유청(李惟淸), 좌의정 이사관(李思觀), 조선조 중엽의 명현 이자(李耔),

    퇴계 선생의 학문을 집대성하여 소퇴계로 불리는 이상정(李象靖), 이광정(李光靖) 형제,

    근대 한국의 정신적인 지주로 일컬어진 이상재(李商在) 선생 등이 모두 한산이씨이다.

    그리고 한산이씨는 이조(李朝) 오백 년을 통해 재상(宰相) 4명, 대제학(大提學) 3명,

    청백리(淸白吏) 5명, 공신(功臣) 11명, 문과급제(文科及第) 198명을 배출하였다.

     

    목은 선생께서는 고려 왕조가 허물어져 가자,

    힘을 잃고 깊은 산속으로 몸을 숨긴 고려의 충신들을 한없이 그리워하고,

    점점 쓰러져가는 고려 왕조의 운명을 안타까워하고,

    또 무기력해진 선생 자신을 한없이 한탄하면서,

    그 애통한 심정을 다음 시조로 남겼는데,

    이것이 후대에 널리 알려진 우국가(憂國歌)라고 불리고 있다.

     

    백설(白雪)이 자자진 골에 구루미 머흐레라.

    반가온 매화(梅花)는 어느 곳듸 픠엿난고.

    석양(夕陽)에 홀노셔셔 갈 곳 몰나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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