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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안이씨(淸安李氏) - 대전 효월드 뿌리공원
    국내 나들이/공원(公園)으로 2022. 3. 31. 04:12

     

    청안이씨(淸安李氏) 유래

     

    본관인 청안(淸安)은 충청북도 괴산군 청안면이다.

    시조는 이한번(李漢)이고 고려 충열왕 때 문과에 합격하여 한림원 학사에 이르렀다.

    1821년에 발간된 족보에 의하면 한림공은 1283년에 태어났고,

    이색(李穡)이 중국 원 나라에 들어가 과거를 볼 때 이색의 과거 응시를 도왔으며,

    홍건적 모거경이 침입하자 안유(安裕) 이방실(李芳實) 등과 함께 격파하였다고 기록되었다.
    추성보리공신으로 삼중대광정일품을 받았고 청안백(淸安伯)으로 봉(封)해졌다.

    말년에 공민왕 12년 즉, 1303년 김용(金鑛)등의 반란으로 전남 영광군으로 숨었다가

    85세로 사망하였는데, 묘는 후에 전남 나주군 여황면 왕산동으로 이장한 것으로 보이고

    용진산 왕잔등 산줄기가 도선산(都先山)이 되었다.
    청안이씨의 후손들은 전라도와 경상도와 경기도에 약 3만 명이 살고,

    전라도파 후손은 장성을 거쳐 나주(구 광산군 본양면) 전북 등지로 옮겨 살았다.

    이를 전라도파라 한다.

    영남의 안강(安康) 지방에도 청안이씨가 벌족을 이루고 있는데,

    양도파가 대동보를 못하고 있는 원인은 한림공(翰林公=漢藩)의 남쪽으로의 사실상 피신에 의하여

    그 자손이 5-6대를 계대(系代)치 못한 궐대론(鬪代論)에 기인한 것으로 판단된다.
    애석하지만 그러나 양도파는 청안이씨로서 600여 년을 살아온 같은 자손임이 분명한 것이다.

    선조 시대에 석탄공(石灘公) 이기남(李箕南)은 성리학에 몰두하여 벼슬을 마다하고

    송강 정철과 회유(回遊)하여 선조대왕이 장성에 불태산(佛台山)을 하사하였는데,

    그곳에서 초막을 짓고 시를 낭송하여 그 초막 이름을 정리암(鄭李菴)이라 하였고,

    그 아들 기호공(岐湖公) 이문룡(李文龍)은 선조를 모시고 의주(義州)까지 호위한 공으로

    임진공신(壬辰功臣)으로 녹권(錄券)이 하사되었다.

     

    대전광역시 중구 뿌리공원로 47 (안영동) 중구 효문화마을관리원 뿌리공원 內

     

     
     
     

    청안이씨 상징 조형물

     

    작품명 : 화합

    디자인 : 이동범, 조각가 : 임정혁

     

    청안이씨의 후손들이 항상 화합과 단합, 맑고 청렴한 기상을 갖추어

    후대에도 더 나은 미래로의 번영을 상징하고자 한다.

     

     

    岐湖公(기호공)이 지은 詩

     

    平生努力 三間屋(평생노력 삼간옥)

    한평생 노력하였어도 삼간집 밖에 장만하지 못했고

    白首窮心 一部書(백수궁심 일부서)

    머리가 하얗도록 마음을 다했어도 한편에 글밖에 쓸 수가 없다.

    不是子孫 遺淡白(부시자손 유담백)

    이것을 내 자손이 아니라면 누구에게 담백함을 남기랴

    始有吾性 大多疎(시유오성 대다소)

    말하고 나니 비로소 품고 있던 내 마음이 시원하고 시원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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