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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육사 시비(陸史 詩碑) - 광야(曠野)
    국내 나들이/동상(銅像),흉상(胸像),비(碑), 2022. 5. 8. 21:07

    陸史 詩碑(육사 시비)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山脈)들이
    바다를 연모(戀慕)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犯)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光陰)을
    부지런한 계절(季節)이 피어선 지고
    큰 강(江) 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나리고
    매화 향기(梅花 香氣)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백마(白馬) 타고 오는 초인(超人)이 있어
    이 광야(曠野)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유시(遺詩) - 광야(曠野)

     
     
     
     

    曠野(광야)를 달리는 駿馬(준마)의 意志(의지)에는 槽櫪(조력)의 嘆息(탄식)이 없고

    한마음 지키기에 生涯(생애)를 다 바치는 志士(지사)의 千古一轍(천고일철-생애)에는

    成敗(성패)와 榮辱(영욕)이 아랑곳없는 법이다.

    天賦(천부)의 錦心繡腸(금심수장)을 滿空(만공)의 熱血(열혈)로

    꿰뚫은 이가 있으니 志節詩人(지절시인) 李陸史(이육사) 님이 그분이다.

    임의 이름은 源祿(원록)이요. 一名(일명)은 活(활)이니 陸史(육사)는 그 雅號이다.

    (중략) ....

     

    1964년은 陸史(육사) 還曆(환력)의 해이다.

    生前(생전)의 知己之友(지기지우)와 同道(동도)의 後輩(후배)가

    誠力(성력)을 모아 한 조각 돌에 遺詩(유시)를 새기고

    겸하여 一代(일대)의 자취를 간추리는 것은

    임의 높은 뜻을 길이 紀念(기념)하고자 함이다.

     

    曠野(광야)를 달리던 뜨거운 意志(의지)여.

    돌아와 祖國(조국)의 江山(강산)에 안기라.

     

    趙東卓 撰(조동탁 찬)

    金忠顯 篆(김충현 전)

    裵吉基 書(배길기 서)

     
     
     
     

    육사 시비(陸史 詩碑)

     

    육사 이원록(李源祿, 1904~1944)은 안동 출신의 민족시인이자 애국지사이다.

    절정, 청포도, 광야 등에서 명징한 시어로 독립을 노래한 그는

    윤동주 시인과 함께 일제 암흑기를 밝힌 찬란한 별이었다.

    일제에 항거하는 강렬한 민족의식을 서정적으로 노래하고,

    상징적 기법과 세련된 언어로 청초하고 고고한 세계를 구축했다.

    도산면 원촌에서 성장하였으며, 일제에 나라가 강점당하자

    1926년 북경 조선군관학교에 들어가 독립운동에 참여하였다.

    이후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십수 차례나 옥고를 치렀다.

    육사(陸史)는 대구형무소에 수감되었을 때 죄수번호인 264번에서 따온 것이다.

    1944년 북경 감옥에서 40세를 일기로 순국했다.

    1964년에 세운 비의 앞면에는 유시(遺詩)인 광야가,

    뒷면에는 시우 조지훈의 추모글이 새겨져 있다.

     

    경상북도 안동시 민속촌길 13 (성곡동) 안동민속박물관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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