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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귀신 잡는 해병대의 별칭을 얻은 해병대 대령 안창관(安昌寬)
    국내 나들이/능, 원, 묘(陵 園 墓) 2022. 7. 5. 04:03

    예비역 해병대 대령 안창관의 묘(海兵隊 大領 安昌寬 墓)

     

    계급 : 해병대 대령

    군번 : 80301

    사망일자 : 1971. 3. 30

    안장일자 : 1971. 4. 1

    묘역 : 국립서울현충원 07-5-1

     
     
     
     

    1

    1971330

    서울에서 병사

     
     
     
     

    해병대 대령 안창관

     

    안창관(安昌寬, 1924년 1월 8일 ~ 1971년 3월 30일)은 독립운동가 안용운 선생의 아들이자

    해병대 창설 요원으로 6.25 전쟁에 첨여한 군인이다.

    평남 평원 출생으로, 1948년 9월 해군 소위로 임관 후 다음 해 해병대로 전입하였다.

    6·25 전쟁 당시 낙동강 전선의 진동리 전투에서 북한군 격퇴에 활약하였고 통영 상륙작전에서

    승리의 결정적 계기를 마련해 국군 최초 부대원 일계급 특진을 이루었다.

    원문고개 전투에서도 북한군의 부산 진출을 저지하는 등 낙동강 방어선 사수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그 후 인천상륙작전과 서울 탈환작전, 도솔산 전투 등에서도 수훈을 세워 대한민국 해병대가

    명성을 떨치는데 크게 기여하여 그 공을 인정받아 을지무공훈장을 수여하였고,

    국가보훈처에서 호국인물로 선정되었다. 1966년 해병대 대령으로 전역한 후 1971년 타계하였다.

     

    안창관의 생애

    안창관은 안용운의 2남 5녀 중 막내로 태어나 어린 시절 부친을 따라 만주로 들어가

    하얼빈 공립사범학교를 졸업한 후 공립 금강소학교에서 수년간 교사 생활을 하였으며

    조국이 광복되자 귀향한 후 가족과 함께 월남하였다.

    월남 후 1946년 2월 창군기의 해병경비대에 입대했다.

    1948년 9월 해군사관학교 특별교육대 2기생으로 임관한 후 506함정의 부함장(해군 소위)으로

    근무하던 중 1949년 2월 해병대로 전입하여 창설요원으로 활동하였다.

     

    전투

     

    공비토벌작전(공비소탕작전)

    1948년 9월 해사후보생 특별교육대 2기생으로 임관하여

    6·25 전쟁 전 진주와 제주도 공비토벌작전에 참가하여 많은 공을 세웠다.

     

    진동리 전투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하여 낙동강 전선이 위태로울 때, 김성은 부대의 7중대장으로서

    부산 점령을 위해 마산 방면으로 침공해오는 적 정찰대대를 진동리에서 기습 공격으로 격멸하였다.

    8월 3일 창원군 어항면 고사리 일대의 고지에서 전차를 앞세우고 침략한 북한군 6사단 정찰대대를

    기습 공격하여 거의 전멸시켰으며, 이어 고성 방면으로 나타난 적을 포위 공격하여 격퇴하였다.

    이는 6.25 전쟁이 발발한 이후 국군이 거둔 최초의 대승리였다.

    또한 마지막 보루인 낙동강 방어선을 둘러싸고 벌어진 첫 전투에서 북한군의 침략 기세를 꺾어

    놓았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8월 5일 국군 사상 최초로 전 부대원이 일계급 특진했다.

    이후 킨 특수임무부대의 반격작전에 참가하여 마산으로 통하는 진동리를 완전히 확보하여

    마산-부산 간 북한군의 공격 위협을 제거하였다.

     

    통영상륙작전

    해병대와 한국 해군이 최초로 단독 수행한 통영 상륙작전에서 통영 시가지를 감제하는

    망일봉을 적보다 먼저 점령함으로써 승리의 결정적 계기를 마련하였으며, 이어 원문고개 전투에서도

    북한군의 부산 진출을 저지하는 등 낙동강 방어선 사수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다른 대원과 함께 약 500여 명의 적을 사살하여 해병대의 용명을 떨침으로써

    '귀신 잡는 해병대'라는 별칭을 얻었다.

    이 별칭은 뉴욕의 타임즈 종군기자 히긴즈가 통영에 상륙해 인민군들을 싹쓸이하다시피 소탕하는

    해병대를 보고 '그들은 악마도 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라는 기사를 쓴 이후 생긴 말이라고 한다.

     

    도솔산 탈환작전

    안창관은 인간으로서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던 도솔산 탈환작전에 참가하여

    한국 해병대의 용명을 떨치는데 기여했다.

    또한 인천 상륙작전과 서울 탈환작전, 도솔산 전투 등에서도 수훈을 세워

    대한민국 해병대가 명성을 떨치는데 크게 기여하였으며, 그 밖에도 대우산 전투와 김일성고지 전투 등

    전쟁 기간 내내 전투 현장을 떠나지 않았다.

    수많은 격전지를 누비며 청춘을 전장에서 보낸 그는 1966년 해병 대령으로 전역했으며 1971년 타계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최인화 여사와 2남 2녀가 있으며, 친인척 모두가 해병 출신인 전형적인 해병가족이다.

    현재 안창관의 영혼은 국립서울현충원 제 7 묘역 5판 1호에 잠들어 있다.

     

    전쟁 이후

    그는 휴전 후 제2상륙전단장, 진해기지 참모장, 해병대사령부 군수국장 등을 역임하면서

    해병대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상훈

    을지무공훈장, 금성을지훈장(1952년 12월), 금성충무훈장, 미 동성훈장(1956년 2월)

     

    호국 인물

    2003년 3월, 2013년 3월, 국가보훈처에서 지정하는 이달의 호국인물로 지정되었다

     

    자료출처 : 위키백과

     

    서울특별시 동작구 현충로 210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 內

     

     
     
     

    여기 해병대를 처음 세운 일꾼이며

    그 젊음을 승리의 해병 전통과 바꾸어

    붉은 침략으로부터 조국과 겨레를 굳게 지킨

    고 해병 대령 안창관의 넋이 고이 잠들다.

     

    1971. 4. 1.

    해병대 장병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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