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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봉돈(烽墩) ... 수원 화성(水原 華城)
    수원사랑/수원화성(水原華城) 2007. 9. 6. 05:22

    봉 돈 ( 烽 墩 )

     

     

     

     

     

     



    봉돈은 일자문성(一字文星)의 위에, 동2포(東二鋪)와 동2치(東二稚)의 사이에 있는데 행궁을 안조(案照)한다. 

    4성을 쌓고 나서 파수(把守)를 설치하여 정찰할 임무를 맡긴 것은 척후(斥候)의 의미를 가진 것이니,

    멀리 육지나 바다에 대한 경보를 알리는 것을 더욱이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

    그래서 드디어 철성(凸城)의 제도에 의거하여 비로소 봉돈을 설치하였다.

    벽돌로 쌓아올려 성의 몸체 위에다가 벽돌로 다시 높게 쌓았으며, 성 밖으로 18척이나 튀어 나오게 하여

    마치 치(雉)처럼 생겼으면서도 그 보다 크다.

    외면의 돌로 쌓은 것이 5층, 벽돌로 쌓은 것이 62층으로 전체 높이 25척, 너비 54척, 현안 2구멍을

    뚫었다. 
    내면은 굴곡이 지게 하여 3층으로 만들었는데, 제1층의 높이 4척, 두께 8척으로 5개의 화두(火竇)를

    설치하였다. 화두의 밑둘레 각 17척 2촌, 위의 줄어든 둘레 11척 5촌, 높이 11척으로서,

    성가퀴 위로 6척이나 올라갔다.


    거구(炬口)는 허리 쯤 높이에 있는데, 길이 각각 3척 1촌, 너비 1척 5촌, 위로는 꼭대기까지 뚫어지게

    하였는데, 꼭대기 부분 지름이 1척이다. 5화두의 사이에는 성가퀴를 붙였고, 양쪽 끝은 구부려 안으로

    향하게 하였는데, 3면에 포혈 18개를 갖추었다. 

    아래 두 층의 벽돌 층계는 너비 각 1척 4촌이고 높이 3척 3촌인데, 이것도 또한 휘어 구부려 3면 벽성을 만들고,

    총안 18개와 누혈 1개[사방 1척]를 내었다.

    좌우의 구부러진 돌층계를 거쳐 위로 올라가서 거로(炬路)로 통하게 되었는데, 층계가 각 10층이다.


    양쪽 가장자리의 층계 끝에는 벽돌로 지은 집이 이어졌고, 용마루 없이 기와로 덮었다.

    남북에 각각 한 간씩 있는데, 남쪽에 있는 것은 온돌로서 지키는 군졸이 거처하는 곳이고,

    북쪽 것은 판자를 깔았는데 기계 따위를 넣어둔다.


    봉돈에서 성내로 들어가려면 이 2곳의 모퉁이에 이르게 된다. 이것은 좌우 것이 모두 길이가 16척이다. 

    돌층계의 등에 기대어 하나의 네모진 성을 만들고, 층계 위에는 짧은 담을 3 층으로 만들었는데,

    아래는 2집으로 이어지게 된다.

    전면의 2간은 벽돌로 쌓은 담인데, 길이가 18척 6촌이고, 한 가운데에 작은 문을 홍예로 틀었다. 

    담의 높이 13척으로 높이가 집과 같다.

    담의 안쪽 등()의 아래에 해당하는 곳은 남북이 32척이고 동서가 21척이다.


    저녁마다 남쪽의 첫째 횃불 구멍에서 횃불 하나를 들면 동쪽으로 용인 석성산(石城山)의 육봉(陸烽)에서

    봉화로 응하고, 서쪽이 없으면 횃불을 들지 못하게 되어 있다.

    다만 흥천대의 바다 봉화는 너무 멀어서 곧 바로 전하기가 어려우며 또 다시 화성부의 서쪽 30리

    서봉산(棲鳳山) 위에 새로이 간이 봉화를 두어 여기에서 오는 봉화를 이 곳에서 전담하도록 하였다.

     

    서봉산 사이 봉화는 또한 다섯 개의 화두(火竇)를 잡석대(雜石臺)위에 설치 하였는데,

    화두의 높이 11척이고, 아랫 둘레 13척인데, 돌로 쌓고 회를 발랐다.


    그 꼭대기는 허리 쯤의 높이로 하였고, 모두 횃불 아가리가 있는데, 동쪽으로 화성부 봉돈의 봉화에

    준하고 있다. 대 아래 산 허리에 4간의 곳간을 지어 군대 물품을 저장하게 되어 있다.

    그리고 그 아래에 수직청(守直廳)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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