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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용영 수위의식(壯勇營 守衛儀式) ... 수원화성문화제
    수원사랑/볼거리 2007. 10. 14. 17:12

    장용영 수위의식 (壯勇營 守衛儀式)

     

    조선 후기 국왕의 호위를 맡아보던 숙위소(宿)를 폐지하고 새로운 금위체제()에 따라

    조직·개편한 국왕 호위군대로 1784년(정조 8) 정조는 생부 사도세자()의 존호를

    장헌세자()로 바꾸고, 이를 축하하기 위한 경과()를 실시, 무과에서 무려 2,000여 명을 합격시켰다.

    이듬해 홍복영()의 역모사건이 일어나자 왕의 호위를 강화하기 위해 경과에 합격한 무사들을 흡수하여

    장용위()를 설치하고 약 500명의 인원을 5대()로 나누어 편제하였다.

    1788년
    장용영으로 개칭하였고, 1793년 도성() 중심의 내영()과

    그 외곽인 화성(사적 제3호) 중심의 외영()으로 확대 편제하여 기존 5군영보다 더 큰 비중을 차지하였다.

    1795년 다른 군영의 군대를 흡수해서 5사() 23초()의 편제를 갖추었고

    장용사(使:장용영 대장)가 이를 지휘하였다. 1802년(순조 2) 폐지되었다.

     

     

    수위의식 행사는?
    조선 제 22대 정조대왕의 친위부대인 장용영의 수위의식과 군례를 관찰하는 행사로

    자랑스러운 수원의 전통 문화를 국제적인 역사.문화.관광상품으로서의 가치가 충분한 문화행사로 치루어 진행된다.

    엄격한 고증을 통하여 역사적 근거를 확보하였으며, 주말마다 수원의 역사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행사로

    진행되어 문화도시에 걸 맞는 수준 높은 전통행사로의 성장할 것을 기대해 본다.

    장용영(壯勇營)은?
    조선 후기 정조9년(1785년)에 장용위(壯勇衛)라는 국왕 호위의 전담부대를 설치하여

    총책은 장용영병방(壯勇營兵房)이라 하였고, 그 아래에 무과 출신의 정예금군을 두어

    국왕의 호위를 담당하는 친위 체제로 만들었다.

    그 뒤 1793년 (정조17)에 규모를 더욱 확대 시켜 하나의 군영(軍營)으로 발전시킨 금위조직(禁衛組織)이 장용영이다.
    장용영은 크게 내영과 외영으로 나누어지는데, 내영은 도성을 중심으로 하였고 외영은 수원 화성을 중심으로 이루어 졌다.

    외영제는 수원부를 화성으로 개칭하고 정3품의 부사에서 정2품의 유수로 승격,

    장용외사와 행궁정리부의 직을 겸하게 하였으며, 그 아래에 판관1인을 두었다.

    지휘관인 장용영변방은 장용사(壯勇使) 또는 장용대장으로 개칭하였으며,

    그 규모는 12,000여 명이었다.(화성에 5천병사 주둔)


    외영의 편제는 1798년에 크게 개혁되어 오위체제(五衛體制)를 도입하여 장악위(長樂衛)아래에 오위를 두고

    각 위를 중심으로 한 정병과 각대를 중심으로 한 성정(珹丁)으로 편성하였으며, 이는 중앙집권적인 오위체제를 도입,

    강력한 왕권의 상징으로 삼으러 하였다. 하지만 정조가 죽자 1802년(순조 2년)에 혁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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