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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상산 사고 (赤裳山 史庫)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07. 10. 30. 21:09
적상산 사고 (赤裳山 史庫)
적상산 사고는 1995년 6월 20일 전라북도기념물 제88호로 지정되었고 대한불교 조계종 안국사에서 소유하고 있다.
면적은 6,083㎡이고 한국의 사고는 고려 말기 이후 조선 초기에 이르기까지 역대왕조의 실록을 보관하던 곳으로
선원전(璿源殿)과 실록전(實錄殿)을 두었다.
1439년(세종 21) 경상도 성주와 전라도 전주에 사고를 신설하여 임진왜란 이전까지는 내사고인 춘추관과외사고인 충주·성주·전주 사고의 4곳이 있었으나, 임진왜란 때 전주사고를 제외한 전국의 모든 사고가 불에 타버렸다.
이때 전주사고의 실록은 1593년(선조 26) 내장산, 해주 등을 거쳐 평안도로 옮겨 난을 피함으로써 임진왜란 중 멸실되지 않은유일한 사고본으로 남게 되었다.
그후 조정에서는 1603(선조 36)∼1606년(선조 39)에 실록을 다시 인쇄하였는데, 인쇄된 실록은 전주사고본을 저본으로정본 3부와 초본인 교정본 1부를 인쇄, 모두 5부로 만들었으며, 전화를 피할 수 있도록 깊은 산중이나 섬 지방에 사고를 설치하였다.
원본인 전주사고본은 강화의 마리산에 두었다가 정족산사고로 옮겼으며, 새로 인쇄한 정본 가운데 1본은 예전처럼서울의 춘추관에 두고, 나머지는 태백산사고와 묘향산사고에 보관하였다. 그리고 초본인 교정본은 오대산사고에 보관하였다.
이때, 묘향산사고가 있는 북방에서는 후금(後金)의 세력이 확장됨으로써 이에 대비하여 묘향산사고의 실록을 옮기자는논의가 있었으며, 1610년(광해군 2) 조정에서는 사관을 보내 적상산의 지형을 살피게 하고 산성을 수축하였다.
그뒤 1614년(광해군 6) 천혜의 요새로 이름난 적상산에 실록전을 창건함으로써 적상산사고가 들어서게 되었다.또 1641년(인조 19) 선원전을 세우고 그해 11월 왕실의 족보인 《선원계보기략(璿源系譜記略)》을 봉안함으로써
적상산사고는 완전한 사고가 되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적상산사고에 비장되어 있던 실록을 서울의 왕실규장각으로 옮겨감으로써 사고가 폐지되었으며,이곳은 안국사의 불구를 옮겨와 법당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후에 선원전 건물은 안국사 경내로 옮겨왔고 실록전과 그밖의 부속 건물들은 모두 훼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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