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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석소(浮石所)는 오늘날 채석장(採石場)입니다..수원사랑/수원화성(水原華城) 2008. 3. 7. 18:20
부석소(浮石所)는 오늘날 채석장(採石場)입니다.
조선조 제22대 정조대왕께서 수도를 한양으로 정한 뒤 궁궐과 각종 관아 ,성곽을 조성 한 공사 이후
화성(지금의 수원) 신도시 건설과 화성을 쌓는 것은 조선시대 최대의 국가적 대역사(大役事)였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화성(華城)을 국.내외 많은 관광객이 방문하여
화성의 아름다움과 우수성에 찬사를 보냄에도 정작 성(城)을 쌓을때 사용 한 돌(石)을
과연 어디에서 가져왔는지를 모르는 이들이 많다.
수원시 팔달구 화서동 산27, 산41, 산43번지 일원에 돌을 뜨던 흔적이 있는데 이를 모르고 지나치는 이들이 많다.
KT&G앞 야트막한 숙지산 자락에 가면 그 모습을 볼수가 있다.
수원시 팔달구 화서동에 위치한 숙지산(熟知山)은 화성을 축성(1794.1~1796.9)할 때 대부분의 돌을 조달했던 곳이다.
지금도 바위 군데군데에 돌을 자르기 위해 쐐기를 박았던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정(釘)을 사용해 돌에 구멍을 판 뒤, 그 속에 물푸레나무나 밤나무 등을 박고 물을 부어 팽창하는 힘으로 돌을 잘라냈다.
화성 축성(華城 築城)에 사용한 돌은 무게 때문에 멀리서 운반하지 못하고
인근의 숙지산(熟知山),여기산(麗妓山),팔달산(八達山),권동(勸洞,서호방죽 주변의 앵봉산이나
동말 주변으로 추정)에서 채취 해 사용 했는데 숙지산(熟知山)이 있는 곳의 옛 지명은 공석면(空石面)인데
이곳에 돌이 많다는 채제공의 보고를 받은 정조대왕이 1796년 1월24일 수원에서 환궁하는 길에
“오늘 갑자기 단단한 돌이 셀 수 없이 발견되어 성 쌓는 용도로 사용 됨으로써 돌이 비워지게(空石) 될지
누가 알았겠는가(熟知)? 암묵(暗黙)중에 미리 정함이 있으니 기이하지 아니한가?” 라고 감탄하게 된다.
공석면 숙지산(空石面 熟知山)은 지금의 화서동 영복여고 뒷산을 일컫는다.
각 부석소(浮石所)에서 캐낸 양은 숙지산 81,100덩어리, 여기산 62,400덩어리,
권동 32,000덩어리, 팔달산 13,900덩어리 등 189,400덩어리였다.
화성을 쌓을 때 종합공사보고서인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에는 물자들을 조달한 내용이 적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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