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학교 서울캠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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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자방아 – 고려대학교 박물관일상생활속에서/우리의 옛 것들.. 2022. 1. 8. 19:15
연자방아 – 고려대학교 박물관 연자방아는 곡식을 가루로 만드는 데 쓰는 도구로 연자매(硏子磨)라고도 한다. 둥글고 판판한 큰 돌판 위에 그보다 작고 둥근돌을 옆으로 세워 이를 소나 말이 끌도록 고안되었다. 아랫돌과 윗돌이 적당히 물리도록 조절한 뒤, 판 위에 찧고자 하는 곡식을 넣고 소나 말을 이용하여 둥근돌을 굴려 껍질을 벗겨낸다. 보통 한 사람이 소나 말의 고삐를 잡고 앞에서 몰고, 다른 사람이 그 뒤를 따르며 넉가래로 곡식을 뒤집어 곡식을 도정, 제분했다. 서울특별시 성북구 안암로 145 (안암동 5가) 고려대학교 서울캠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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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석(文人石) - 고려대학교 박물관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1. 12. 30. 19:08
문인석(文人石) - 고려대학교 박물관 조선시대 석물을 대표하는 것은 문인석이다. 각종 문헌자료에 석인(石人)이라고 표현한 것은 대부분 문인석을 의미한다. 문인석은 시기마다 양식과 규모가 다양하게 변화 발전하면서 대량으로 제작되었다. 문인석은 문관(文官)의 형상으로 깎아 왕릉(王陵)이나 원(園), 시대부 묘(士大夫 墓) 등 능묘 앞 좌우에 능의 주인을 지키는 의미로 세운다. 서울특별시 성북구 안암로 145 (안암동 5가) 고려대학교 서울캠퍼스 이 문인석은 15~16세기 작품들로 조선 전반기 석물의 특징을 잘 드러내고 있다. 도포를 입고 머리에는 복두(幞頭)나 금관을 쓰며, 손에는 홀(笏-관복을 하였을 때 손에 드는 手板)을 든 공복(公服) 차림을 하고 있다. 이 문인석은 북두공복(北斗公服-관리의 평상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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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촌 김성수 선생 추모비(仁村 金性洙 先生 追慕碑)국내 나들이/동상(銅像),흉상(胸像),비(碑), 2021. 12. 28. 20:07
仁村 金性洙 先生 追慕碑(인촌 김성수 선생 추모비) 인촌 김성수선생 추모비(仁村 金性洙先生 追慕碑) 선생의 호는 인촌(仁村)이요, 본관은 울산(蔚山)이니 조선조 중종 때의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 선생의 13대손으로 1891년 10월 11일(음력 9월 9일) 전라북도 고창군 부안면 봉암리 인촌마을에서 태어났다. 선생은 국권을 빼앗긴 일제강점기와 광복 후의 혼란 속에서도 항상 나라의 장래를 내다보면서 우리 민족의 역량을 하나로 모으고 굳건하게 키우는데 혼신의 힘을 다한 애국자요 선각자였다. 선생은 교육자, 언론인, 기업가, 정치가로서 크나큰 공적을 남겼는데 그중에서도 참된 민족정신과 지도자를 육성하는 교육사업에 가장 큰 정성을 기울였다. 儒學(유학)의 전통이 깊은 명문의 후예로서 선생은 일찍이 신학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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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암동 오층석탑(安岩洞 五層石塔)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1. 12. 26. 19:15
안암동 오층석탑(安岩洞 五層石塔) 이 탑은 고려 중기의 탑으로 높이는 5.55m이다. 단층의 기단 위에 5층의 탑신으로 구성된 석탑으로 재질은 화강암이다. 기단부의 하대석에는 안상이 새겨져 있고 상대 갑석(上臺 甲石)은 4매의 판석으로 되어 있다. 탑신부는 탑신석과 옥개석이 각각 하나의 돌로 제작되어 층단을 이루고 있다. 옥개석의 낙수면 경사각이 완만하고 전각에서 약간의 반전을 보이고 있다. 2층 탑신과 기단부 면석 3매는 후대에 복원하였다. 원래 경기도 남양주군 와부면 원당국민학교에 소재했으나 1986년 10월 27일 고려대학교 박물관으로 이전하였다. 서울특별시 성북구 안암로 145 (안암동 5가) 고려대학교 서울캠퍼스 법학관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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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의 상징 호랑이상(虎像, 호상)국내 나들이/동상(銅像),흉상(胸像),비(碑), 2021. 12. 25. 19:05
호상 비문(虎像 碑文) - 조지훈 民族(민족)의 힘으로 民族(민족)의 꿈을 가꾸어 온 民族(민족)의 보람찬 大學(대학)이 있어 너 恒常(항상) 여기에 自由(자유)의 불을 밝히고 正義(정의)의 길을 달리고 眞理(진리)의 샘을 지키느니 地軸(지축)을 박차고 咆哮(포효)하거라 너 불타는 野望(야망) 젊은 意慾(의욕)의 象徵(상징)아 宇宙(우주)를 향한 너의 부르짖음이 民族(민족)의 소리 되어 메아리치는 곳에 너의 氣槪(기개) 너의 志操(지조) 너의 叡智(예지)는 祖國(조국)의 영원한 鼓動(고동)이 되리라. ※ 호상 비문은 당시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였던 조지훈 시인이 글을 썼으며. 이 글은 2003년 '민족의 아리아'라는 이름의 곡으로 만들어져 고려대학교 응원가로 사용되어 오고 있다. 고려대학교 응원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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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촌 김성수 선생 동상(仁村 金性洙 先生 銅像)국내 나들이/동상(銅像),흉상(胸像),비(碑), 2021. 12. 24. 20:16
銅像(동상) 高(고, 높이) 3.424m 金景承 彫刻(김경승 조각) 閔福鎭 助手(민복진 조수) 銅像建立文(동상건립문) 校友會長 李丙壽 撰(교우회장 이병수 찬) 財團 主務理事 李活 書(재단 주무이사 이활 서) 인촌 김성수 선생 동상 건립문(仁村 金性洙 先生 銅像 建立文) 민족 자립의 대본(大本)이 첫째 교육에 있음을 깨닫고 일제의 억압과 싸워가며 이 사업을 완수한 이는 곧 인촌 김성수 선생이었다. 선생의 사업이 허다(許多)하지만 특히 교육은 그가 지상 사명으로 삼아 물심을 기울여 일생을 여기에 바쳤던 것이다. 선생은 본시 고창 출생으로 일본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을 마치고 돌아오자 단기 4248년(1915년) 중앙학교를 맡아 일익 확장(日益擴張), 다시 그 경영을 반석 위에 놓고자 4262년(192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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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암동 삼층석탑(安岩洞 三層石塔) - 충남 예산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1. 12. 21. 20:15
안암동 삼층석탑(安岩洞 三層石塔) - 충남 예산 높이 3.31m의 삼층석탑으로 고려 중기에 건조된 것으로 추정되나 통일신라시대 석탑 양식이 보인다. 기단부의 하층 기단은 1매로 4쪽으로 갈라져 있다. 하층 기단 4면에는 물결무늬의 안상을 2개씩 내고 그 안에 보상화문(寶相華文)을 하나씩 새겼다. 하층 기단과 상층기단이 만나는 부분에는 연판문(蓮瓣文)이 양각되어 있다. 탑신과 옥개석(屋蓋石)은 각 1매씩이며 탑신에는 우주(隅柱)가 양쪽으로 모각되어 있으며, 옥개석 하면에는 각형 3단의 받침이 새겨져 있다. 옥개석 모서리는 살짝 들어 올려져 있어 기단부에서 상륜부까지 일정한 비례로 축소되어 상승감과 동시에 안정감을 준다. 2, 3층의 탑신과 옥개석 모서리 각각 3부분은 후대에 복원하였다. 원래 충청남도 예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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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삼층석탑(高麗大學校 三層石塔)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1. 12. 20. 20:16
고려대학교 삼층석탑(高麗大學校 三層石塔) 고려시대의 석탑으로 높이는 3.37m이며, 통일신라시대의 석탑 양식을 잘 반영하고 있는 석탑이다. 기단(基壇)은 상하 2층 기단을 구비하고 있으며, 별다른 장식을 하지 않아 고졸(古拙)한 멋이 있다. 탑신(塔身)과 옥개석(屋蓋石)은 각 1매씩이며, 탑신에는 양우주(兩隅柱)가 모각되어 있고, 옥개석 하면에는 각형 3단의 받침이, 상면에는 각형 2단의 탑신 괴임대가 튀어나와 조각되어 있다. 3층 옥개석과 탑신 일부가 파손되었으며, 상륜부(上輪部)는 없어졌다. (고려대학교박물관 소장) 서울특별시 성북구 안암로 145 (안암동 5가) 고려대학교 서울캠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