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각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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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寶物), 수원 방화수류정 (水原 訪花隨柳亭)수원사랑/수원화성(水原華城) 2021. 11. 13. 22:11
보물(寶物), 수원 방화수류정 (水原 訪花隨柳亭) 조선 정조 18년(1794) 건립되었으며, 화성의 동북각루(東北角樓)인 방화수류정은 전시용(戰時用) 건물이지만 정자의 기능을 고려해 석재와 목재, 전돌을 적절하게 사용하여 조성된 건물이다. 수원 방화수류정은 송나라 정명도(程明道)의 시(詩) “운담풍경근오천(雲淡風輕近午天), 방화수류과전천(訪花隨柳過前川)”에서 따왔으며, 편액은 조윤형(曺允亨, 1725~1799)의 글씨이다. 평면은 “ㄱ”자형을 기본으로 북측과 동측은 “凸”형으로 돌출되게 조영하여 사방을 볼 수 있도록 꾸몄으며, 조선 헌종 14년(1848)에 중수되었고, 일제강점기 이후 여러 차례 부분적으로 수리되었다. 주변 감시와 지휘라는 군사적 목적에 충실하면서 동시에 주변 경관과 조화를 이루는 조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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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각루, 방화수류정(東北角樓, 訪花隨柳亭) - 보물 제1709호수원사랑/수원화성(水原華城) 2021. 9. 24. 19:12
동북각루, 방화수류정(東北角樓, 訪花隨柳亭) - 보물 제1709호 동북각루는 화성 동북쪽 요충지에 세운 감시용 시설이다. 용두(龍頭) 바위 위에 각루를 우뚝 세워 주변을 감시하고 화포를 쏠 수 있도록 했다. 군사 시설이지만 아름다운 연못과 함께 있어 경치를 즐기는 정자로 많이 쓰였다. 정자의 별칭은 방화수류정(訪花隨柳亭)이다. 정조는 이를 ‘현륭원(顯隆園)이 있는 화산(花山)과 수원 읍치를 옮긴 땅 유천(柳川)을 가리키는 뜻’이라고 풀이했다. 방화수류정에는 온돌방 한 칸이 있었다. 보통 군사들의 휴식을 위해 각루 1층에 온돌방을 만들었는데, 방화수류정은 임금을 위해 2층에 온돌방을 만들고 창문을 설치했다. 조선 정조 21년(1797) 정월, 정조는 방화수류정에서 활쏘기를 하고 주변의 아름다운 경치를 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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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각루(방화수류정) - 보물 제1709호수원사랑/수원화성(水原華城) 2021. 3. 25. 19:54
동북각루(방화수류정) - 보물 제1709호 1794년(정조 18) 창건 1934년 해체・수리 동북각루는 수원 화성 동북쪽 요충지에 세운 감시용 시설이다. 용두(龍頭) 바위 위에 각루를 우뚝 세워 주변을 감시하고 화포를 쏠 수 있도록 했다. 군사 시설이지만 아름다운 연못과 함께 있어 경치를 즐기는 정자로 많이 쓰였다. 정자의 별칭은 방화수류정(訪花隨柳亭)이다. 정조는 이를 ‘현륭원이 있는 화산(花山, 꽃뫼)과 수원 읍치를 옮긴 땅 유천(柳川, 버드내)을 가리키는 뜻’이라고 풀이했다. 방화수류정에는 온돌방 한 칸이 있었다. 보통 군사들의 휴식을 위해 각루 1층에 온돌방을 만들었는데 방화수류정은 임금을 위해 2층에 온돌방을 만들고 창문을 설치했다. 조선 정조 21년(1797) 정월, 정조는 방화수류정에서 활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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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각루(방화수류정) - 보물 제1709호수원사랑/수원화성(水原華城) 2020. 8. 4. 04:41
동북각루(방화수류정) - 보물 제1709호 동북각루는 화성 동북쪽 요충지에 세운 감시용 시설이다. 용두(龍頭) 바위 위에 각루를 우뚝 세워 주변을 감시하고 화포를 쏠 수 있도록 했다. 군사시설이지만 아름다운 연못(龍池)과 함께 경치를 즐기는 정자로 많이 쓰였다. 정자의 별칭은 방화수류정(訪花隨柳亭)이다. 정조는 이를 ‘현륭원(顯隆園)이 있는 화산(花山)과 수원 읍치를 옮긴 땅 유천(柳川)을 가리키는 뜻’이라고 풀이했다. 방화수류정에는 온돌방 한 칸이 있었다. 보통 군사들의 휴식을 위해 각루 1층에 온돌방을 만들었는데, 방화수류정에는 임금을 위해 2층에 온돌방을 두고 창문을 설치했다. 조선 정조 21년(1797) 정월, 정조는 방화수류정에서 활쏘기를 하고, 주변의 아름다운 경치를 읊은 시를 지었다. 지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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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제1709호 동북각루(방화수류정) - 화성수원사랑/수원화성(水原華城) 2020. 6. 20. 04:29
동북각루(방화수류정) - 화성 동북각루는 화성 동북쪽 요충지에 세운 감시용 시설이다. 용두(龍頭) 바위 위에 각루를 우뚝 세워 주변을 감시하고 화포를 쏠 수 있도록 했다. 군사시설이지만 아름다운 연못(龍池)과 함께 경치를 즐기는 정자로 많이 쓰였다. 정자의 별칭은 방화수류정(訪花隨柳亭)이다. 정조는 이를 ‘현륭원(顯隆園)이 있는 화산(花山)과 수원 읍치를 옮긴 땅 유천(柳川)을 가리키는 뜻’이라고 풀이했다. 방화수류정에는 온돌방 한 칸이 있었다. 보통 군사들의 휴식을 위해 각루 1층에 온돌방을 만들었는데, 방화수류정에는 임금을 위해 2층에 온돌방을 두고 창문을 설치했다. 조선 정조 21년(1797) 정월, 정조는 방화수류정에서 활쏘기를 하고, 주변의 아름다운 경치를 읊은 시를 지었다. 지금은 온돌방과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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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화수류정(訪華隨柳亭)의 설경수원사랑/수원화성(水原華城) 2018. 12. 20. 04:32
방화수류정(訪華隨柳亭)의 설경 동북각루, 방화수류정(東北角樓, 訪華隨柳亭) - 보물 제1709호(2011. 3. 3) 방화수류정은 1794년(정조 18) 10월 19일 완공되었다. 주변을 감시하고 군사를 지휘하는 지휘소와 주변 자연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정자의 기능을 함께 지니고 있다. “꽃을 찾고 버들을 따라 노닌다(訪花隨柳)”라는 뜻을 지닌 방화수류정은 독특한 평면과 지붕형태 때문에 바라보는 위치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이것은 화성에서 가장 뛰어나며 다른 성곽에서는 볼 수 없는 독창적인 건축물로 평가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