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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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산묘재성지 - 성 남종삼 요한.순교자 남상교 아우구스티노 유택지국내 나들이/천주교(天主敎) 2022. 11. 26. 20:11
성 남종삼 요한 남종삼 요한 성인은 남탄교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백부인 남상교 아우구스티노에게 아들이 없어 양자로 들어갔다. 남상교 아우구스티노는 1827년 북경에서 영세를 받고 천주교를 믿었기에 남종삼도 양자로 들어간 후, 부친의 영향으로 천주교 교리를 배운 것으로 보인다. 기록에 나타난 성인의 최초 교회 활동은 1861년에 입국한 리델 신부에게 조선어를 가르친 것이었지만 이미 이전 베르뇌,다블뤼 주교 등과 교류하며 교회 일에 참여하였다. 1864년 러시아인들의 통상요구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하면서, 남종삼 요한은 대원군에게 프랑스 주교들을 통해 서구의 열강과 동맹을 맺어 러시아의 남하를 막을 수 있다는 상소문을 올렸고, 대원군이 이를 받아들였으나 마음을 바꾸어 천주교를 박해하게 되었다. 학산묘재성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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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 정지용 문학관(沃川 鄭芝溶 文學館)국내 나들이/기념관(記念館) 2022. 8. 9. 04:03
엽서에 쓴 글 - 정지용 詩 나비가 한 마리 날러 들어온 양 하고 이 종잇장에 불빛을 돌려대 보시압. 제대로 한동안 파다거리 오리다. -대수롭지도 않은 산목숨과도 같이. 그러나 당신의 열적은 오라범 하나가 먼데 가까운데 가운데 불을 헤이며 에이며 찬비에 함추름 취적시고 왔오. -스럽지도 않은 이야기와도 같이. 누나, 검은 이 밤이 다 회도록 참한 뮤-쓰처럼 쥬무시압. 해발 이천 피이트 산봉우리 우에서 이제 바람이 나려 옵니다. 정지용 시인 - 고향에서 문학을 노래하다 호수 1 얼골 하나 야 손바닥 둘로 폭 가리지 만, 보고 싶은 마음 호수만 하니 눈 감을 밖에. 꿈엔들 잊힐리야 시인 정지용 상(詩人 鄭芝溶 像) 1902년 음력 5월 15일 충북 옥천군 옥천면(현 옥천읍) 하계리에서 부친 정태국(鄭泰國)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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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향교(沃川鄕校) – 충청북도 유형문화재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2. 7. 26. 04:05
옥천향교(沃川鄕校) –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1398년 태조 7년에 창건하였으나 1592년 임진왜란 시 병화로 불탄 것을 다시 재건하였다. 대성전에는 공자를 주향으로 모시고 그 양편에 사성과 공자의 열 제자인 십철 즉, 안회, 민자건, 염백우, 중궁, 재아, 자공, 염유, 자로, 자유, 자하를 비롯하여 육현을 배향하였다. 동쪽에 있는 동무에는 설총, 안유, 김굉필, 조광조, 이황, 이이, 김장생, 김집, 송준길을 서쪽에 있는 서무에는 최치원, 정몽주, 정여창, 이언적, 김인후, 성흔, 조헌, 송시열, 박세채 등 모두 18명의 위패를 모셔놓고 옥천의 유림들이 매년 봄, 가을 두 번에 걸쳐 2월과 8월 첫 번째 정일(丁日)에 석전제(釋奠祭)를 올린다. 충청북도 옥천군 옥천읍 향수8길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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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전통문화체험관(沃川傳統文化體驗館)국내 나들이/체험관(體驗館) 2022. 7. 25. 04:08
옥천전통문화체험관(沃川傳統文化體驗館) 옥천은 삼국시대에는 고시산군(古尸山郡)으로, 통일신라 경덕왕 대에 상주(尙州) 관성군(管城郡)으로 재편되었다가 고려 충선왕 때 옥주(沃州)로 불리었으며, 조선 태종 때에 이르러 옥천(沃川)으로 명명되면서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옥천전통문화체험관은 유구한 역사와 풍요로운 자연환경 속에서 피어난 옥천의 전통문화를 공유하며 즐기면서 우리나라 전통문화의 맥을 이어 나가기 위해 2020년 푸르른 신록 속에서 개관하였다. 옥천전통문화체험관은 부지면적 13,118㎡에 건물면적 2,206㎡의 한옥 목구조로 전통체험관 1개동, 전시시설 1개동, 숙박시설 2개동(4인실, 8인실), 커뮤니티센터 1개동, 편의시설 등을 갖추고 있다. 특히 숙박동의 객실 명칭은 윤슬, 움찬, 다솜, 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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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 벽화거리(옥천읍 향수4길, 향수5길)일상생활속에서/사람사는 현장 2022. 7. 17. 04:05
향수(鄕愁) - 정지용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 재가 식어지면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조름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개를 돗아 고이시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흙에선 자라난 내 마음 내 마음 파란 하늘빛이 그리워 빛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러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전설 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하늘에는 성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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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영수 생가(陸英修 生家)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2. 7. 12. 19:07
육영수 생가(陸英修 生家) 옥천 구읍의 한옥 ‘교동집’은 육영수 여사(1925~1974)가 나고 자란 집이다. 허물어진 채 생가 터만 남았다가 복원을 마치고 2011년 5월부터 일반에게 공개됐다. 이 집은 조선 중기, 1600년대 김정승이 처음 지어 살고 이후 송정승, 민정승 등 삼정승이 살았던 집으로 알려져 있다. 이렇게 삼정승이 살았다하여 ‘삼정승집’이라 불리었던 이 집은 육 여사가 태어나기 전인 1918년 부친 육종관이 민정승의 자손 민영기에게 사들여 고쳐 지으면서 조선 후기 충청도 반가의 전형적양식의 집으로 탈바꿈했다. 육영수 생가는 1974년 육 여사 서거 이후 관리가 소홀해지면서 생가는 폐가의 길을 걷는다. 육 여사 서거 후 네 해째. 1979년 10.26 사건으로 박 전 대통령이 서거한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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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 옥주사마소(沃川 沃州司馬所) - 충청북도 유형문화재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2. 7. 11. 20:05
옥천 옥주사마소(沃川 沃州司馬所) -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사마소는 조선 중기 이후 지방의 고을마다 생원(生員)과 진사(進士)들이 모여 친목과 학문, 정치, 지방 행정의 자문 등을 논하던 곳이다. 그러나 점차 압력 단체로 발전하여 폐단이 컸으므로 선조 36년(1603)에 없앴으나 지방에 따라 그 폐단이 지속되기도 하였다. 옥주사마소는 효종 5년(1654)에 의창(義倉)을 뜯어다가 지었다. 당(堂) 안에는 관성사마안(管城司馬案), 향약계안(鄕約契案), 옥천군향약계규약(沃川郡鄕約契規約) 등 지방 문인들의 활동상을 알려주는 고문서들이 여러 편 있다. 정면 5칸, 측면 2칸의 홑처마 맞배지붕 건물이며,앞면 4칸에 툇마루를 두고, 그 뒤에는 오른쪽으로 마루,왼쪽으로는 온돌방, 부엌을 두었다. 사마소는 전국에 옥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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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용 생가(鄭芝溶 生家)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2. 7. 10. 21:02
향수(鄕愁) 어린 '정지용 생가' 전형적인 초가집으로 두 채가 한 울타리에 있으며, 정지용(鄭芝溶, 1903~1950)은 이곳에서 17세까지 지내고 서울로 상경하여 교사 생활과 집필 활동을 하였다. 원래 생가는 1974년에 허물어졌으나 1988년 정지용 시인의 납북이 정부로부터 인정받고 작품들이 해금되면서 옥천에서 결성된 지용회를 통해서 생가 복원이 논의되었으며, 1996년에 생가지에 초가집 두 채를 복원하였으며, 바로 옆에 정지용 시인의 문학세계를 전시하는 정지용문학관이, 근처에 옥천군립 지용문학공원이 신설되었다. 부엌을 제외하고 정면 2칸은 퇴칸 구조이다. 생가의 전체적인 형상은 'ㄱ‘자 집이며 마주 보이는 방향으로 정면 3칸 측면 1칸의 ’一‘ 자형 창고가 있다. 주거용의 'ㄱ‘자 집은 부엌 뒤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