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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육영수 생가(陸英修 生家)
    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2. 7. 12. 19:07

    육영수 생가(陸英修 生家)

     

    옥천 구읍의 한옥 ‘교동집’은 육영수 여사(1925~1974)가 나고 자란 집이다.

    허물어진 채 생가 터만 남았다가 복원을 마치고 2011년 5월부터 일반에게 공개됐다.

    이 집은 조선 중기, 1600년대 김정승이 처음 지어 살고 이후 송정승, 민정승 등

    삼정승이 살았던 집으로 알려져 있다.
    이렇게 삼정승이 살았다하여 ‘삼정승집’이라 불리었던 이 집은 육 여사가 태어나기 전인

    1918년 부친 육종관이 민정승의 자손 민영기에게 사들여 고쳐 지으면서

    조선 후기 충청도 반가의 전형적양식의 집으로 탈바꿈했다.

    육영수 생가는 1974년 육 여사 서거 이후 관리가 소홀해지면서 생가는 폐가의 길을 걷는다.

    육 여사 서거 후 네 해째. 1979년 10.26 사건으로 박 전 대통령이 서거한 이후 방치되어 오다가

    1999년 유족들이 건물을 완전 철거하면서 생가는 기단과 초석과 함께 터만 남게 된다.

    이후 옥천군에서 2000년 9월, 육영수 여사 생가 복원계획을 세우고,

    민간이 주체가 된 ‘육영수여사 생가복원추진위원회’를 발족하여

    육 여사의 회고에 근거하여 2002년 생가지 지표조사를 마친 다음

    2003년부터 2010년까지 37억 5천만 원을 들여 건물 13동을 복원했다.

    초서로 한 일(ㅡ) 자를 쓰려면 옆으로 힘차게 가로 그어 가다가 붓에 힘을 모아 멈추는 잠두에서

    아래로 내리 뻗치는 그 끊어질 듯 이어지는 정기가 모인 아늑한 양지 받이에 터를 잡은 교동집은

    풍수지리학 상 명당에 자리 잡은 집으로 알려져 왔다.

    집의 후원과 과수원을 합치면 26,400㎡에 대지 10,000㎡ 규모의 집이니

    규모면에서도 보통의 집 수준을 넘어선다.

    아흔 아홉 칸의 집이었다는 이야기가 헛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생가는 육영수여사의 회고에 의하여 건물의 배치를 살펴보면,

    솟을대문을 들어서서 오른편으로 마방이 있고, 대문과 마주 보는 곳이 사랑채였다 한다.

    사랑채 왼쪽에 건너채가 있었고, 사랑채를 돌아 중문을 열고 들어서면

    안채가 집터 중앙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이 안채에서 왼쪽으로 행랑,

    오른편으로 연당사랑, 뒤로 돌아 별당, 후원에 사당과 정자가 있었다고 한다.

    정자 오른 쪽에 또 뒤채가 자리 잡고 있었으며 바깥 겹집 사랑채만 하여도 누마루, 바깥 사랑방,

    안 사랑방, 사랑채 안방, 대청, 광, 다락, 식객들이 거처하는 방, 사랑채 전용 부엌 등

    당시로서는 상류층의 규모 있는 살림집이었다고 한다.
    생가에 가면 사랑채와  ‘ㄷ'자형의 안채에 설치된 전통창호를 유심히 살필 일이다.

    용(用) 자 살창과 아(亞)자 살창, 완(卍) 자 살창 등 사대부집 방의 창호를 장식하는 살대가

    그려내는 문양이 고고하기도 하면서 아름답기도 한 멋이 깃든 전통창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충청북도 옥천군 옥천읍 향수길 119 (교동리) 대표전화 043-730-3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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