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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신ㆍ구법천문도(新ㆍ舊法天文圖)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2. 7. 12. 10:11
동서양 천문지식의 융합 - 보물, 신ㆍ구법천문도(新ㆍ舊法天文圖)
천문학은 한반도에서 역사시대 이전부터 이어져 왔는데
청동기시대 고인돌에 남겨진 별 그림을 통해 고대 천문 활동의 흔적을 살펴볼 수 있다.
삼국시대에 들어서며 남겨진 2만 5,000여 개의 천문관측 기록,
왕실 천문대, 그리고 여러 관측기기와 천문도 등은 우리의 대표 천문 자산이다.
특히 고인돌 시기부터 확인되는 별 그림은 고구려 고분벽화를 거쳐 고려의 여러 무덤,
그리고 조선의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에 이르기까지
우리 역사 속에 다양한 모습으로 전해지고 있다.
조선의 밤하늘을 돌판에 새기다
한 해 동안 볼 수 있는 다양한 밝기의 별들을 하나의 원에 그려 넣는 것은
오랜 시간 하늘을 체계적으로 관측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이러한 천문학의 역사와 노력이 담긴 관측의 결과물이 바로 천문도이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는 고구려에서 전래된 천문도 인본을 받은 뒤 기뻐하며
조선 개국의 정당성을 위해 개국 4년 만에 조선의 밤하늘을 돌판에 새겨
천상열차분야지도 각석을 만들었다.
고구려와 가야, 고려시대에도 여러 별 그림이 남아 있는데
이들은 밤하늘에 보이는 일부 별자리만을 그려 놓은 형태이다.
우리 밤하늘에 볼 수 있는 전체 모습을 그린 완전한 형태의 천문도는 대부분
조선시대에 만들어졌는데 천구 북극을 중심으로 주극원,
적도와 황도 은하수 등이 그려져 있다.
천상열차분야 지도가 대표적인 모습이다.
서양의 천문지식과 천문도는 16세기 무렵 예수회 선교사들을 통해 중국에 알려졌다.
그리고 자연스레 조선에 다시 전해졌다. 1741년 청(淸)에 다녀온 연행사(燕行使)는
독일인 선교사 이그나티우스 쾨글러(Ignatius Koegler)의 천문도를 배워
신법 천문도(新法 天文圖)로 불리는 황도남북총성도(黃道南北總星圖)를 만들어
조선에 처음으로 소개했다. 현재 보물로 지정된 이 천문도는
보은 법주사 신법 천문도 병풍(報恩 法住寺 新法 天文圖 屛風)으로 불린다.
이 천문도에는 북반구 별자리뿐만 아니라 한반도에서 볼 수 없는
남반구 별자리를 포함해 망원경으로 관측한 행성과 그 위성까지 그려져 있다.
이 신법 천문도 병풍은 조선시대 관상감에서 8폭 병풍에 그린
천문도이다. 황도의 북쪽과 남쪽 하늘을 그린 두 개의 성도,
그리고 천문도 제작에 참여한 관원이 적혀 있다.
두 개의 성도에는 황도의 북쪽 하늘에서 볼 수 있는 1,066개의 별과
남쪽에 보이는 789개의 별을 합해 모두 1,855개의 별이 그려져 있다.
서양 천문지식과 전통 천문학의 만남
서양식 천문도가 전래된 이후, 천상열차분야 지도와
서양식 천문도를 함께 그린 천문도가 만들어졌는데
이러한 천문도를 신·구법천문도라고 부른다.
서양식 천문도와 전통 성도를 종합해 만든 천문도인 셈이다.
2001년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신·구법천문도 병풍이 보물로 지정되었다.
8폭 병풍에는 모두 세 개의 성도와 일월오성 그림이 있으며, 4~7폭에 그린 두 개의
서양식 성도(黃道南北兩總星圖) 위아래로 천문지식을 적은 명문이 있다.
오른쪽 세 폭 에는 천상열차분야 지도를 그려 놓았는데 성도의 우측 상단에
‘天象列次分野圖(천상열차분야도)’라고 적었다.
신·구법천문도에 그려진 서양식 천문도는 법주사 신법 천문도를 옮겨 그린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법주사 성도에 보이는 여러 흰색 홑 별이 없어지고
전통 방식에 따라 별을 원으로만 표현하는 등 일부 변화된 모습을 보여준다.
신법 천문도가 신·구법천문도의 모본(母本)이거나
더 이른 시기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에서 제작한 신·구법천문도는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보물을 포함해
국내외에 7점이 알려져 있다.
국내에는 국립민속박물관 2점과 국립중앙박물관 1점이 있으며
해외에는 영국 휘플과학역사박물관
그리고 일본의 국회도서관과 남만문화관(南蠻文化館) 등에 있다.
신·구법천문도의 국내 소장본 별 그림을 비교해 보면 천상열차분야도의 경우
보물본이 각석본에 가장 가까우며 다른 두 점은 각석본과 여러 곳에서 차이를 보인다.
쉽게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별의 크기와
위치 별자리 모양 등인데 하고(河鼓), 대각(大角), 구경(九卿), 태미(太微), 귀수 (鬼宿),
벽수(壁宿), 부광(扶筐) 등의 별 그림을 살펴보면
보물본의 제작 시기가 가장 앞선 것으로 보인다.
서양식 성도의 경우, 신법 천문도에서 신·구법천문도 보물본으로
그리고 다른 신·구법천문도로 모사되며 별자리 모양과 위치의 오차가 커지는 경향을 보인다.
신·구법천문도의 채색 안료를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조선의 전통 안료를 사용한
국립민속박물관 보물본과 휘플과 학역사박물관 소장본은 18세기 중기 이후에 제작된 것으로,
서양식 안료가 활용된 비지정 국립민속박물관 소장본과
일본 국회도서관 소장본은 19세기 중엽 이후에 제작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별자리 모습으로 살펴본 천문도의 제작 순서와 일치한다.
신·구법천문도는 동서양의 천문지식이 융합되는 모습을 보여주는 소중한 천문 유물이다.
천상열차분야 지도를 모사하기 위해 활용된 천문학, 기하학, 수학 등
과학기술적 특징뿐 아니라 서양식 천문도가 조선에 전래된 이후,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의 짧은 시기에 서양 천문지식과 전통 천문학이
어떻게 융합되는지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글. 양홍진(한국천문연구원 고천문연구센터장)
[문화재청, 문화재사랑. 2022-6월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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