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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마고지의 전투영웅 김종오장군 기념관
    국내 나들이/기념관(記念館) 2008. 11. 14. 05:08

    백마고지의 전투영웅 김종오장군 기념관

     

    철원군 북방에 있는 이 백마고지는 6.25동란 당시 가장 피비린내 나는 격전지였다.

    1952년 10월 6일 중공군의 대공세로 10일 동안에 걸쳐 대 혈전이 계속되었던 백마고지 전투는

     피아의 포탄낙하가 30만발이 작렬했고 고지의 주인이 24번이나 바뀌었다.

    이 전투에서 중공군은 1만4천여 명의 사상자를 내어 2개 사단이 완전 와해되고 말았으며

     국군 제9사단은 백마고지의 대승을 계기로 백마사단이라 명명되었다.

    흙먼지와 시체가 뒤엉켜 악취가 코를 찔렀으며 피아 간의 포격으로 산이 본래의 모습을 잃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마치 백마가 누워있는 형상과 같다하여 백마고지로 불리게 되었다.

     

    백마고지 [기념의 장]에는 통일의 염원과 전승을 기념하는 전적비와 35평 넓이의 기념관에는

     당시 전투 상황을 보도한 신문 기사들과 육탄 3용사의 부조물 및 유물, 저서 등을 갖춘 동관과

    당시의 백마부대장이었던 김종오 장군의 유품 등을 전시한 서관으로 나누어 전시 되고 있다.

     

    백마고지 기념관앞의 백마고지 위령비

    이 위령비는 백마고지 전투에서 희생된 아군과 중공군 장병의 영혼을 진혼키 위해 1985년 6월 6일에

    보병 제5사단 장병과 대마리 주민의 뜻을 모아 현재의 전적비 위치에 세웠던 것을

     1990년 5월에 백마고지 전적비를 조성함에 따라 이곳으로 옮긴 것이다.

     

       6.25 당시 백마부대장이었던 김종오(金鍾五)장군의 부조물

     

    6.25전쟁 당시 철원 북방의 백마고지(395m) 전투에서 승리를 이끌었던 육탄 3용사
    1952년 10월 12일 13시 20분경에 한국군 제9보병사단 30연대 1대대 1중대 육탄 3용사(강승우 소위,

     오규봉 하사, 안영권 하사)의 11차 돌격으로 백마고지 주봉을 탈환한 후에 야간방어를 성공함으로써,

    낙타능선을 제외하고  백마고지의 결정적인 확보에 크게 기여하였던 것이다.


     

    육탄 3용사의 부조물

     

    백마고지 전적비의 조형물과 기념관의 조화로운 모습 

     

    김종오 육군대장(1921.5.22∼1966.3.30) 


    김종오 육군대장은 1921년 충북 청원에서 출생. 1946년 1월 군사영어학교 졸업과 동시에 육군소위 임관.

     

    1950년 대령으로 제6사단장에 부임할 때까지 북한군 1개 대대를 유인 섬멸했던 사직리전투 승전 등 큰 공을 세움.


    6·25전쟁이 발발하자 6사단장으로서 춘천에서 인제까지 90km에 이르는 광정면을 책임지게 된 그는

     

    지원화기조차 미비한 상태에서 탁월한 방어작전으로 6월 29일까지 춘천 - 홍천지역을 성공적으로 방어함으로써

     

    서부전선의 국군 주력부대들이 한강방어선을 구축하고 유엔군이 증원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음.

     

    김종오 장군은 이후 지연전 단계에서도 음성의 무극리, 동락리 전투에서 적 15사단을 기습하여 적 2,186명을 

    사살하는 대승을 거두었으며, 북진작전시에는 북한군에 의해 미군 학살현장에서 생존자 20여명을 직접 구출하고

    초산의 압록강변에 태극기를 꽂는 등 혁혁한 전과를 올렸음. 


    1952년 10월 6일부터 15일까지 철원지역 백마고지에서는 고지 주인이 12회나 바뀌는

     세계 전사상 유례가 없는 처절한 공방전이 전개되었음.

    그는 당시 9사단장으로서 8,000여명의 사단병력으로 중공 제38군 예하 3개 사단

    15,000여명을 격퇴하였으며 적 사상 14,300여명이라는 대전과를 거두었음.

    휴전 이후 제1군단장, 제5군단장, 제15대 육군참모총장 등을 역임한 후

    1965년 4월 10일 육군대장으로 예편하였으며, 1966년 3월 30일 45세를 일기로 타계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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