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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릉(光陵), 사적 제197호
    국내 나들이/능, 원, 묘(陵 園 墓) 2009. 7. 8. 05:13

    광릉(光陵), 사적 제197호

     

    광릉(光陵)은 조선 제7대 세조(世祖 :1455~1468 재위.1417~1468년)와 정희왕후(貞熹王后 1418~1483) 윤씨가 묻힌 곳이다.
    세조는 1417년 9월29일 세종(世宗)소헌왕후 사이에서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타고난 자질이 영특하고 명민(明敏)하여 학문과 무예도 뛰어났다.

    처음에는 진양대군(晋陽大君)이었으나 1455년 수양대군(首陽大君)으로 고쳐 봉해졌다.

    대군으로 있을 때 세종(世宗)의 명을 받들어 불서(佛書)의 번역을 관장 했으며, 향악(鄕樂)의 악보 정리에도 힘을 쏟았다.

    1452년(문종文宗2년)에는 관습도감 도제조(慣習都監 都提調)에 임명되어 처음으로 국가의 실무를 맡아 보기도 하였다.

    세종(世宗)에 이은 문종(文宗)이 재위 3년만에 승하하고 어린 단종(端宗)이 왕위에 오르자 왕실의 권위를 되찾고자

    수양대군은 1453년(단종원년) 계유정란(癸酉靖亂)을 일으켜 정치 실권을 장악하고 조정의 원로인 김종서(金宗瑞),

    황보인(皇甫仁) 등과 그의 경쟁자였던 동생 안평대군(安平大君)을 몰아내고 정권을 장악한뒤,

    1455년 단종으로 부터 왕위를 전위(傳位)받았다.
    만년에는 왕위 찬탈에 대한 고뇌에 싸여 불문(佛門)귀의(歸依)하여

    원각사(圓覺寺)를 창건했고 간경도감(刊經都監)을 두어 불경(佛經)을 간행했다.

    1468년 왕세자(예종)에게 왕위를 전위하고 이튼날 수강궁(壽康宮) 정침(正寢)에서 승하(昇遐)하였다.
    광릉(光陵)은 같은 능선아래의 다른 언덕에 왕과 왕비를 따로 봉안한 동원이강(同原異岡)능제이면서

    두 능의 중간 지점에 정자각(丁字閣)을 세운 최초의 능이다.

    석실사대석을 쓰지 말라는 세조의 유언에 따라 석실을 회격으로 바꾸고 봉분 곁에 둘렀던 병풍석을 없애고 능하구역에는

    홍살문에서 정자각까지 이르는 참도가 생략되는 등 조선조 능제의 일대변혁을 가져왔으며, 이후의 왕릉 조성에 모범이 되었다.
    정희왕후(貞熹王后:1418~1483) 윤씨는 파평부원군(坡平府院君) 윤번의 딸로 태여나,

    세종10년(1428) 혼인 하였고,1455년 왕비가 되였다.

    덕종(德宗:추존). 예종(睿宗). 의숙공주(懿淑公主)를 낳았다.

    성종(成宗)이 왕위에 오른후 7년 동안  나이 어린 왕을 대신하여 나라를 다스린 조선시대 최초의 수렴청정을 한 왕후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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