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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기(愛妓)"의 한(恨)이 서린 김포 "애기봉(愛妓峰)"국내 나들이/안보 현장(安保 現場) 2011. 9. 18. 09:28
"애기(愛妓)"의 한(恨)이 서린 김포 "애기봉(愛妓峰)"
경기도 김포시 하성면 가금리 산59-13에 위치한 애기봉(愛妓峰,154m)은 유유히 흐르는
한강을 사이에 두고 건너편의 북녘 땅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최단거리 전망대로서
병자호란 때 평양감사와 애첩인 애기(愛妓)와의 슬픈 일화가 서려있는 곳으로.
고 박정희 대통령이 이곳을 방문하여 "애기봉(愛妓峰)"이라 명한 곳이다.
건너편 북한지역인 개성직할시 판문군 조강리의 선전마을은 1960년대 흙벽돌과 슬레이트로 지은
북한의 전통적인 촌락 마을로서 집단 농사를 짓는 것을 망원경으로 한눈에 볼 수 있으며,
1982년도에 북한에서는 북한인민들이 이렇게 잘 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조성한 선전용 위장마을이다.
애기봉은 1954년부터 매년 성탄절(크리스마스) 과 석가탄신일(부처님 오신 날)마다 ‘평화통일 염원’의 불을 밝혔었는데,
예전에는 큰 소나무를 이용하다가 1971년 부터는 30m높이의 철골구조 등탑이 세워서 불을 밝혔다.
그러나 애기봉 등탑 점화는 2004년 6월 군사분계선(MDL) 지역에서 선전활동을 중지하고
선전수단을 모두 제거키로 한 2차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 합의에 따라 중단됐다가
2010년 12월 21일 성탄절을 맞아 서부전선 최전방 애기봉의 등탑이
7년 만에 불을 밝히기도 했다. 애기봉은 해병대 제2사단(청룡부대)에서 국토방위를 하고 있다.
애기봉 유래
서기1636년(인조 14년)에 청나라 태종이 10만 대군을 이끌고 우리나라를 침범해 온 병자호란 때의 일이다.
호란이 일어나자 당시 평양감사는 그가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애첩 "애기"라는 기생을 데리고 수도 한양을 향해 피난길에 오르게 되었다.
당시로선 가장 지름길이었던 평양에서 개성을 거쳐, 지금은 우리가 마음대로 갈수 없게 된 바로 이 강 건너
개성직할시 판문군 조강리에 이르렀을 때, 감사는 아깝게도 뒤따라오던 청나라 오랑캐에게 붙잡혀
다시 북으로 끌려가고, 애기만이 구사일생으로 전방에 흐르는 강을 건너 이산 좌측에 위치한 조강리란 마을에 머물게 되었다.
그 후 날마다 애기는 이 봉우리에 올라와 님 계신 북녘하늘을 바라보며 눈물로서 감사가 돌아오기만을 애타게 기다렸으나
끝내 님이 돌아오지 않자, 애기는 결국 병이 들어 죽어가면서, 고향하늘과 님 계신 북녘 땅이 잘 보이는
이 봉우리에 묻어 달라는 간절한 유언을 남기고 숨지자, 그 유언을 전해들은 조강리 마을사람들은 감사에 대한
일편단심과 애달픈 사랑을 가엾이 여겨, 애기를 이 봉우리에 묻어줌으로써 애기의 평생 한을 달래 주었던 것이다.
그 후, 1966년 10월 7일 지금은 작고하신 박정희 대통령께서 이곳을 방문하시어,
이 봉우리에 얽힌 이야기를 들으시고 애기의 한(恨)은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오가지 못하는
우리 1천만 이산가족의 한(恨)과도 같다고 하시며, 그동안 154고지로 불리던 이 봉우리를 "애기봉(愛妓峰)"이라고 정식 명명하시고,
전망대 밖 우단에 친필휘호로써 애기봉(愛妓峰) 이라는 비석을 세워주셨던 것이다.
그리고 비석의 아랫부분에 있는 시는 지금은 작고하신 유명한 시인 노산 이은상 선생님께서
이곳을 둘러 보고 느끼신 감회를 시(詩)로써 표현하여 부대에 헌시하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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