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순국선열들의 한과 넋이 서린 곳 "제암교회(提巖敎會)"
    국내 나들이/기독교(基督敎) 2012. 2. 26. 18:29

     순국선열들의 한과 넋이 서린 곳 "제암교회(提巖敎會)"

     

    1919년 3.1독립만세사건이 있은 후 다른 지역 주모자는 다 체포되었으나

    발안 시위를 주도했던 제암리 주모자들이 체포되지 않자 아리타 다케오(有田俊夫) 중위는 제암리 토벌에 나서게 된다.

    1919년 4월 15일, 3.1운동과 이후 이 지역에서 이어진 만세운동을 못마땅하게 여겼던 일본은

    15세 이상의 마을주민들을 제암리교회로 모두 불러 모아 가둔 채 무차별 총격을 가하고, 석유를 뿌린 뒤 불을 질렀다.

    이로 인해 교회는 잿더미로 변했고, 그 안에 있던 무고한 사람들이 불에 타 죽었다.

    당시 교회에 모였던 23인이 희생되었으며, 제암리 마을의 33가구도 2채만 남긴 채 모두 불태워졌다. 

    일본군은 3.1운동 당시 고주리 지역의 독립운동가인 김흥렬,김성렬,김세열,김주남,김주업,김흥복 등 한가족 6명을 참살했다. 

    1919년 4월15일 오후 일본군은 제암리 학살을 자행한 후, 인근 고주리의 독립운동 세력을 말살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김흥렬 일가가 몰살 당하였다.

    일본 수비대는 그들을 집 뒤 언덕으로 끌고 가서 칼로 잔인하게 처형한 후 불을 질러 시신을 훼손 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당시 희생자들 가운데는 기독교인과 천도교인이 각각 절반 정도 됐는데 이 때문에

    이곳이 ‘기독교 성지’인지를 두고 기독교-천도교 간 갈등이 빚어지기도 했다.

    사건 이후 그 자리에 기념비를 세우고, 작은 교회와 기념관을 건립했다.

     

    (경기도 화성시 향남읍 제암리 대한기독교 감리회 제암교회에서...) 


    이 사건이 이튿날 신속하게 외부에 알려지게 된 것은 소문을 접한 언더우드, 커티스, 테일러 선교사 일행이

    자동차로 수촌리 현장을 확인, 제암리의 참상을 목격한 것이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스콧필드 선교사는 4월 18일 단독으로 제암리와 수촌리를 방문하여 참상을 몰래 촬영했다.

    이후 그는 사건현장을 수차 왕래하며 사후 수습을 돕는 한편, 사건 보고서를 캐나다와 미국의 친지들에게 전달했고

     ‘끌 수 없는 불꽃’이란 책을 펴내 일제의 만행을 세계에 알리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1905년 사랑방 예배로 시작된 수촌교회 역시 일제의 만행으로 불타고 1938년에 다시 지어졌다.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