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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가지를 올바르게 하는 이가 거처하는 집 "사의재(四宜齋)"
    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12. 5. 14. 22:00

     4가지를 올바르게 하는 이가 거처하는 집 "사의재(四宜齋)"


    전남 강진군 강진읍 동성리 495-1번지에 소재한 “사의재(四宜齋)”는

    다산 정약용이 1801년 11월 23일 강진에 유배 와서 처음 머물던 곳이다.
    당시 오갈데 없는 선생의 딱한 사정을 알고 이곳 주막집(동문매반가) 주인 할머니의 배려로 골방 하나를 거처로 삼고,

    교육과 학문연구에 헌신키로 다짐하면서 붙인 이름으로 “4가지를 올바로 하는 이가 거처하는 집”이라는 뜻을 담고 있는데,

    다산은 생각과 용모와 언어와 행동 이 네가지(四宜齋:사의재)를 바로 하도록 자신을 경계하였던 것이다.
    “생각을 맑게 하되 더욱 맑게, 용모를 단정히 하되 더욱 단정히, 말(언어)을 적게 하되
    더욱 적게, 행동을 무겁게 하되 더욱 무겁게” 할 것을 스스로 주문하였다.
    사의재는 창조와 희망의 공간이다.
    사려깊은 주막 할머니의 “어찌 그냥 헛되이 사시려 하는가?
    제자라도 가르쳐야 하지 않겠는가?”라는 얘기에 스스로 편찬한 "아학편"을 주교재로 교육을 베풀고,

    "경세유표"와 "애절양" 등을 이곳에서 집필했다.
    다산은 주막 할머니와 그 외동딸의 보살핌을 받으며 1801년 겨울부터 1805년 겨울까지 이곳에 머물렀다.
    2007년 강진군이 초가형태의 조선시대 주막으로 복원하였으며 현판의 글씨는 다산 선생의 친필을 집필한 것이다.
    이곳에서 주민들과 탐방객들을 상대로 민속주점으로 사용하고 있다.

     

     

     

     

     

     

     

     

     

     

     

     

     

     

     

     

     

     

     

     

     酗誶千夫裏(후수천부리) 천 명이 술에 취해 떠드는 속에

    端然一士莊(단연일사장)  단정한 선비 하나 의젓하게 있고 보면

    千夫萬手指(천부만수지) 그들 천 명이  모두 손가락질하며 /

    謂此一夫狂(위차일부광) 그 한 선비야 미쳤다고 한다네

    - 다산의 시 우래(憂來)에서 -


    이 시(詩)는 고달픈 귀양살이에 세상을 원망하던 다산의 쓰린 마음과 불행에 좌절하지 않던 용기를 읽을 수 있다.

    모두가 실현성 없는 관념적 성리학에 매몰되어 있을 때, 외로운 선비 다산은 유배지에 홀로 단정히 앉아 어지러운 세상을

    구제하려는 깊은 사념에 잠겨 있었으니, 미친 사람으로 여겨지지 않을 수 없었다는 다산의 한숨이 들려오는 듯하다.

     

     다산 주막     정호승


    홀로 술을 들고 싶거든 다산 주막으로 가라

    강진 다산 주막으로 가서 잔을 받아라

    다산 선생께서 주막 마당을 쓸고 계시다가

    대빗자루를 거두고 꼿꼿이 허리를 펴고 반겨주실 것이다

    주모가 차려준 조촐한 주안상을 마주하고

    다산 선생의 형형한 눈빛이 달빛이 될 때까지

    이 시대의 진정한 취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겨울 창밖으로 지나가는 딱딱한 구름과 술을 들더라도

    눈물이 술이 되면 일어나 다산 주막으로 가라

    술병을 들고 고층아파트 옥상에서 뛰어내리지 말고

    무릎으로 걸어서라도 다산 주막으로 가라

    강진 앞바다 갯벌 같은 가슴을 열고

    다산 선생께서 걸어나와 잔을 내미실 것이다

    참수당한 눈물의 술잔을 기울이실 것이다

    무릎을 꿇고 막사발에 가득

    다산 선생께 푸른 술을 올리는 동안

    눈물은 기러기가 되어 날아갈 것이다.

     

     

    이 시(詩)는 정호승 시인께서 이곳 사의재(四宜齋)를 방문하셨던 2009년 6월 5일 착상해서 작성한 시로 정 시인의 친필체다.

    정 시인은 평소에도 다산을 흠모하여 강진의 다산초당과 사의재를 역사의 현장으로 자주 찾곤 한다.

    정호승 시인은 1950년 1월 3일 대구에서 태어나 자랐고, 비극적 현실 세계에 대한 자각 및

    사랑과 외로움을 슬프고도 따뜻한 시어들로 그려내어 우리나라 국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정약용(丁若鏞) 선생께서 거처하던 터

    이 곳은 조선조 후기 실학을 집대성한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선생(1762~1836)이

    강진에 유배되어 4년간(1801~1804) 거처하던 집터이다.

    그후 도암면 굴동마을로 옮겨 초당(草堂)에서 우거(寓居)하면서 목민심서(牧民心書) 등

    많은 책을 저술하여 다산학(茶山學)을 정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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