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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미순교탑(海美殉敎塔)국내 나들이/천주교(天主敎) 2012. 12. 20. 05:37
해미순교탑(海美殉敎塔)
서산시 해미면 읍내리 274-10 해미순교성지(海美殉敎聖地)는 천주교인들의 순례가 끊이지 않는 성지로서,
천주교에 대한 박해가 극심하던 때인 1866년부터 1872년까지 사이에 1천 명 이상의 천주교 신자들이 생매장을 당한 곳으로,
당시 많은 천주교 신자들을 처형하기 힘들자 해미천에 큰 구덩이를 파고 생매장을 하였다.
이 순교자들의 유해는 대부분 홍수로 유실되고 1935년에 그 일부가 발굴되었다.
이 일대에서 생매장 당한 이름 모를 순교자들을 기리기 위하여 1975년에 높이 16미터의 탑을 세웠다.
무명 생매장 순교자들의 묘
조선조 천주교 박해 시 목숨을 바쳐 신앙을 증거한 순교 선열들의 유해 일부를
이곳 해미 생매장터에서 발굴하여 1935년 4월 2일 서산 상흥리 공소 뒷산 백씨 문중 묘역에 모셨다가
이제 순교자 유해를 교회적 차원에서 관리하며 성지 순례자들의 기도를 돕기 위해 다시 원위치에 옮겨 모시다.
1995년 9월 20일 천주교 대전교구장 주교 경갑룡 요셉
(순교자 탑문 내용)
조선왕국에 뿌려진 복음의 씨앗은 이곳 해미 기름진 땅 내포의 벌에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되었다.
해미는 고귀한 복음의 정신에서 살며 이를 증거한 많은 순교자를 배출시킨 자랑스런 땅이 되었다.
10세기 말엽이래 이곳 해미에 신도들은 신앙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바쳐왔고,
1866년의 병인박해와 1868년의 무진박해에 이르기까지 그 피의 제헌은 끊이지 아니 하였다.
특히 1868년 무진박해 때에는 바로 이곳에 문마리아, 방마리아와 그의 사위 박요한을 비롯한
많은 신도들이 생매장을 당하면서 그들의 신앙을 고백하였다.
이곳에서 죽임을 당한 무수한 신도들의 이름을 일일이 밝힐 수 없음이
한 이거니와 그들의 신앙심은 천추에 빛을 잃지 않을 것이다.
신앙의 자유를 획득한 이후 1935년 4월 2일 서산본당의 범베드로신부는 순교를 목격했던
이주필 박성익 등 십여 명의 증언을 토대로 하여 이곳을 발굴하였고
이곳이 순교지임을 증명해주는 고상과 묵주 등의 유물을 수습할 수 있었다.
이곳에서 신앙을 증거한 순교자의 유해는 서산군 음암면 상홍리에 모시어졌다.
여기는 영원한 생명이 숨을 쉬는 곳 순교자의 뜨거운 피가 뿌려진 성스러운 땅이다.
여기는 목숨을 바쳐 신앙을 증거한 믿음의 땅이다.
신앙의 자유를 부르짖던 외침이 스며든 소망의 땅이다.
겨레를 구하려던 희생양의 넋이 서린 사랑의 땅이다.
여기는 신앙의 환희가 죽음의 두려움을 이긴 승리의 땅이다.
순례자여 이곳에서 머리를 숙이어 순교자가 남긴 뜻을 새롭게하여라
그리하여 이곳을 그대의 승전지로 만들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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