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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UNESCO 世界文化遺産) "수원화성(水原華城)"
    수원사랑/수원화성(水原華城) 2013. 5. 21. 06:58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UNESCO 世界文化遺産)

    "수원화성(水原華城)"

     

    “수원화성(水原華城)”은 1794년에 착공하여 2년 후인 1796년 완공된 성(城)으로

     

    조선 제22대 정조대왕(正祖大王)께서 정쟁(政爭)에 휘말려

     

    억울하게 뒤주 속에 갇혀 생을 마감한 아버지 사도세자(思悼世子)에 대한 효성심과

     

    강력한 왕도정치를 꿈꾸며 건설한 효의 성곽이자 신도시이다.

     

    수원화성(水原華城)은 조선시대 제일 마지막으로 축성된 것으로

     

    임진왜란(壬辰倭亂), 병자호란(丙子胡亂) 등 전란을 통해 나타난

     

    우리나라 성의 취약점을 실학자들이 과학적이고 실용적이며

     

    효과적으로 보완하여 축성한 것으로 사적 제3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다.

     

    수원화성 성곽 축성에 소요된 자재는 석재가 201,400덩이, 기와 530,000장,

     

    벽돌 695,000장, 목재 26,200주 등이며 동원된 인원 6,343명에 달했을 정도로 큰 공사였다.

     

    또한 축성 시에는 다산 정약용에 의해 고안된 거중기 등 많은 신기재가 사용되었다.

     

    거중기(擧重機)의 경우 40근의 힘으로 25,000근의 무게를 움직일 수 있었다고 한다.

     

    수원화성 성곽의 특징은 형태에 있어 팔달산과 시내에 드리워져 있어

     

    평지성과 산성의 장점을 고루 갖춘 평산성의 형태로 성 가운데를 수원천이 지나고 있다.

     

    또한 벽돌이 사용된 최초의 성으로 시설물의 곳곳에 곡선의 미가 나타나고 있으며,

     

    성벽에 배가 나오도록 하여 적군의 침투를 어렵게 하고 있다.

     

    성곽 전체의 둘레는 5,744 m이며, 주요 시설물로는 4대문을 비롯하여

     

    장대(將臺) 2곳, 수문(水門) 2곳, 포루(砲樓) 5곳, 포루(鋪樓) 5곳,

     

    각루(角樓) 4곳, 암문(暗門) 4곳, 공심돈(空心墩) 3곳, 치성(雉城) 등

     

    총 48개의 시설물이 있었으나 일부가 파괴된 것을 1975년부터 5년간에 걸쳐 복원 보수하였다.

     

    1997년 12월 수원화성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명실공히 세계인의 문화유산으로 관리하고 있다.

     

    수원화성 축성과 관련된 모든 기록이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라는 책으로 남아 있으며,

     

    현재 규장각(奎章閣)에 보관되어 있다.

     

     

     

    서북각루(西北角樓)와 서일치(西一稚)

     

     

     

    화서공원에서 수원화성으로 오르는 길

     

     

     

    아름다운 서북각루(西北角樓)

     

    각루(角樓)는 성곽의 비교적 높은 위치에 세워져 주변을 감시하고

    휴식을 위할 수 있으며 비상시 각 방면의 군사 지휘소 역할을 하는 곳이다.

    서북각루(西北角樓)는 화성의 4개 각루의 하나로 숙지산(熟知山) 자락이 마주 보이는 자리에서

    화서문(華西門) 일대의 군사를 지휘하기 위해서 만들었다. 1층은 온돌을 설치하여 숙직하는 군사가 사용하도록 만들었다.

     

     

     

    수원화성의 성곽

     

     

     

    수원화성의 중무장 요새인 서포루(西砲樓)

     

    수원화성의 서포루(西砲樓)는 화성의 5개 포루 중 서쪽에 위치하고 있다.

    포루(鋪樓)는 외관상 포루(鋪樓)와 비슷하지만,포루(砲樓)의 전형적인 모습은 화성(華城)에서 볼 수 있는데

    성벽의 일부를 밖으로 돌출시켜 만든 치성(雉城)위에 검정 벽돌로 쌓았으며

    나무 마루판을 3층으로 구획하여 군사들이 몸을 숨길 수 있는 건물을 세워 초소나 대기소와 같은 용도로 쓰이던 곳이다.

    마루 아래 성벽 여장(女牆:담장)에는 여러 개의 총구멍(銃眼)을 뚫어 적을 공격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팔달산 정상에 위치한 효원의 종각

     

     

     

    수원화성매표소(팔달산 서장대)

     

     

     

    아름다운 수원화성

     

     

     

    화성장대(華城將臺),  서장대(西將臺)라고도 한다.

     

    화성장대(華城將臺)는 장수(將帥)가 올라가 전투를 지휘하는 곳으로, 화성장대는 화성의 제일 높은 서쪽에 있는 장대다.

    보통 성안 가장 높은 곳에 자리 잡은 장대는 누각으로 지어져 경관이 좋고 건축미도 빼어나다.

     

     

     

    화성장대(華城將臺)와 서노대(西弩臺)

     

    수원화성의 서노대(西弩臺)는 팔달산 정상 서장대(華城將臺) 뒤에 있는 시설물이며,

    구조는 팔각형이며 기와와 벽돌로 약 3m 정도의 여장을 쌓아 만들어져 있다.

    서노대에 오르면 수원시가지가 한 눈에 들어와 사방을 볼 수가 있다.

    특히 군사 지휘소인 서장대를 적의 공격으로부터 효과적으로 보호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다.

    노대(弩臺)란 누각이 없이 전돌을 쌓아 높은 대를 만든 시설물로

    적의 공격을 항상 감시해서 대(臺)와 성(城) 전체에 오방색 기(旗)로 신호를 하며

    적이 근접했을 때 쇠뇌를 쏠 수 있도록 만든 군사 요새이다.

    수원화성(水原華城)에는 화성장대 옆에 있는 서노대(西弩臺)와

    동북공심돈 오른쪽에 자리한 동북노대(東北弩臺) 등 2개의 노대(弩臺)가 만들어져 있다.

     

     

     

    서포루(西鋪樓)

     

    포루(鋪樓)는 성의 치성(雉城)위에 지은 누각(樓閣)으로

    성내에서 이동하는 아군의 동향을 적이 알지 못하도록 설치한 초소나 군사대기소를 말하며,

    서포루(西鋪樓)는 화성장대(華城將臺)의 남쪽에 위치하여 성 밖으로 약 7m 돌출되었고

    누각에는 판문이 설치되어 있고 전안을 두어 적을 공격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화성의 서쪽을 조망하는데 유리하도록 가장 높은 곳에 지었고

    가급적 멀리 보기위해 계단을 놓아서 높은 누각을 지었으며 1796년(정조 20년)에 완공하였다.

     

     

     

    꽃과 어우러진 화성장대

     

     

     

    수원화성은 산책하기에 좋은 명소로도 유명하다.

     

     

     

    200년 이상을 노송이 굳건히 화성을 지키고 있다.

     

     

     

     경사진 곳에서는 계단형식의 성곽을 축조

     

     

     

    조형미 넘치는 수원화성

     

     

     

    아름다운 곡선미가 넘치는 수원화성의 성곽

     

     

     

    화사한 봄꽃과 어우러진 수원화성 화성장대

     

     

     

     

    팔달산에 바라 본 장안문주변, 멀리 수원의 진산인 광교산이 보인다.

     

     

     

    팔달산에서 바라 본 팔달문주변과 수원시 중심가

     

     

     

    화성장대 앞에서 화성행궁주변 수원시내를 조망하는 관광객

     

     

     

    KBS 1박2일 촬영지임을 알리는 표지판

     

     

     

    서서히 석양에 물드는 수원화성

     

     

     

    화성장대(서장대) 앞에 세워진 이정표, 세계 주요도시의 구간 거리가 표시되어 있다.

     

     

     

    세계문화유산 수원화성 표지석

     

     

    수원화성안내도

     

     

     

     

    전 세계적으로 역사가치가 높은 토목공사의 표본

    화성, 대한민국

     

    화성은 건축가이자 학자인 다산 정약용이 설계하여 1794년부터 1796년까지 축조되었습니다.

    화성성역의궤는 화성의 축조 경위 및 역사를 기록한 서적으로 전10권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유상 노역으로 신속하게 이루어진 화성의 축조는 정조시대 문화 및 문예진흥의 기상을 잘 나타냅니다.

    대한민국토목학회 및 미국토목학회가 20048월 헌정

     

     

     

     

    국제연합 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 유네스코) 세계 문화 및 자연유산 보호에 관한 협약

     

    세계유산위원회는 화성을 세계유산 목록에 등록했습니다.

    본 목록에 등록됨으로써 전 인류의 이익을 위해 보호해야 할

    뛰어나면서도 전 세계적인 문화 또는 자연 유적으로 인정됩니다.

    1997126

    유네스코 사무국장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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