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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삼충신을 모시는 사당, 삼충사(三忠祠)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13. 8. 1. 04:39
백제의 삼충신을 모시는 사당, 삼충사(三忠祠)
삼충사(三忠祠)는 백제의 충신이었던 성충(成忠, ?~656)·흥수(興首, ?~?)·
계백(階伯, ?~660)을 기리기 위해 1957년에 지은 사당이다.
성충(成忠)은 백제 의자왕(義慈王, 재위 641∼660) 때 충신으로,
좌평으로 있으면서 잘못된 정치를 바로잡기 위해 애쓰다 옥중에서 단식을 하다 죽었다.
흥수(興首)는 백제 의자왕 20년(660) 나당연합군(羅唐聯合軍)이 공격해 오자
탄현(炭峴)을 지키다 대신들의 반대로 지키지 못하고 결국은 멸망하였다.
계백(階伯)은 신라 김유신(金庾信, 595~673)장군의 5만 대군이 황산벌로 쳐들어오자
5천 결사대를 뽑아 지금의 연산인 황산에서 싸우다 장렬히 전사한 장군이다.
1957년 지은 이 사당은 1981년 다시 지어 현재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해마다 10월 백제문화제 때 삼충제(三忠祭)를 지내고 있다.
충남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산1-1 부소산성에 위치하고 있으며,
1984년 5월 17일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15호로 지정, 관리하고 있다.
삼충사 중건 사적비(三忠祠 重建 事蹟碑)
우리 도(道)는 예로부터 충절(忠節)의 고장이라고 알려졌다.
청사(靑史)에 빛나는 충신열사(忠臣烈士)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이와 같이 많은 충열(忠烈)이 나올 수 있었다는 것은 우연(偶然)한 것이 아니라
오랜 옛날로부터 그 교훈(敎訓)을 후세(後世)에 드리운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도리켜 보건데 이 고장에 충의교훈(忠義敎訓)을 처음으로 세운 분이
바로 여기모신 성충(成忠) 흥수(興首) 계백(階伯)의 삼충(三忠)이시다.
삼충신(三忠臣)은 모두 백제(百濟)의 멸망(滅亡)에 즈음하여 라당대군(羅唐大軍)이
침공(侵攻)하는 마당에서 죽음으로써 충간(忠諫)하고 항전(抗戰)하였던 것이다.
일찌기 성충(成忠)과 흥수(興首)는 의자왕(義慈王)이 방탕(放蕩)과 향락(享樂)에 빠지자
극간(極諫)하다가 성충(成忠)은 옥(獄)에 갇히고 흥수(興首)는 유배(流配) 되었다.
이때 성충(成忠)은 죽으면서 상서(上書)하기를 충신(忠臣)은 죽어도
인군(人君)을 잊지 않는다 하니 한 말씀 드리고 죽겠습니다.
신(臣)이 시세(時勢)를 살피건데 반드시 전쟁(戰爭)이 나겠습니다.
외군(外軍)이 침입(侵入) 하거든 육로(陸路)는 탄현(炭峴)을 넘지 못하게 하고
수군(水軍)은 기벌포(伎伐浦)의 락안(洛岸)을 오르지 못하게 하라고 하였다.
그후 성충(成忠)의 말과 같이 라당군(羅唐軍)이 동서(東西)로 침입(侵入)하였다.
그러자 조정은 당황(唐慌)하여 유배(流配)된 흥수(興首)에게 계책(計策)을 물었다.
흥수(興首)는 대답(對答)도 성충(成忠)의 말과 같았다.
그러나 그말도 받아드려 지지 못하고 말았다.
마침내 라당군(羅唐軍)이 탄현(炭峴)과 기벌(伎伐)의 요새(要塞)를 통과(通過)하자
계백(階伯)은 불가항력(不可抗力)의 대세(大勢)임을 기록한 나머지
사랑하는 처자(妻子)도 죽이고 오천(五千)의 결사대(決死隊)로
신라(新羅)의 오만대군(五萬大軍)을 황산벌(黃山筏)에서 맞아
사전사승(四戰四勝) 하였으나 중면불적으로 끝내는 장열(壯烈)하게 죽고 말았다.
이제 도리켜 생각하건데 삼충(三忠)의 지용(智勇)과 충성(忠成)은 족히
라당대군(羅唐大軍)을 격퇴(擊退)시키고 백제사직百濟社稷)을 보전(保全) 할 수가 있었다.
그런데 국론(國論)의 분열(分裂)로 충신(忠臣)의 말을 듣지 아니하고
나라를 멸망(滅亡)시켰으니 이 어찌 원통(寃痛)하지 아니 한가
그러나 후일(後日)에 그 장절(章節)을 교훈(敎訓)삼아 이 고장(故場)에
충열(忠烈)이 드 높았으니 님은 가셨어도 충혼(忠魂)은 살아계신 것이다.
위패(位牌)는 원래 청마산성내 의열사에 봉안(奉安)하였으나 조선 고종 때 철폐(撤廢) 된 것을
뜻있는 분들이 그 충혼(忠魂)을 기리고자 1957년 이곳에 사우(祠宇)를 세운바 있었다.
그러나 건물이 몹시 퇴락(頹落)하였기에 이제 다시 중수(重修)함에 있어서
그 애국충정(愛國忠情)을 되새기고자 이와같이 간략(間略)하게 기록(記錄)하는 바이다.
충청남도지사(忠靑南道知事) 이계원 짓고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 김충원 쓰다
1981년 11월 세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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