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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소산성(扶蘇山城) 낙화암(落花岩)
    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13. 8. 8. 06:46

     

     

    부소산성(扶蘇山城) 낙화암(落花岩)

     

     

     

     

     

    충남 부여 백마강변의 부소산 서쪽 낭떠러지 바위를 가리켜 낙화암(落花岩)이라 부른다.

     

     

    낙화암(落花岩)은 백제 의자왕(義慈王,재위 641660) 때 신라와 당나라 연합군이

     

     

    일시에 수륙 양면으로 쳐들어와 왕성(王城)에 육박하자,

     

     

    궁녀들이 굴욕을 면하지 못할 것을 알고 이곳에 와서,

     

     

    치마를 뒤집어쓰고 깊은 백마강에 몸을 던진 곳이라 한다.

     

     

    궁녀들은 치마를 뒤집어쓰고 백마강으로 꽃이 되어 떨어진다.

     

     

    한순간에 이곳은 눈물과 한숨, 통곡과 비명이 뒤섞인 아수라장이 되었다.

     

     

    당시 백마강은 붉은 피와 서러운 꽃잎으로 가득 덮였던 곳이다.

     

     

    삼국유사(三國遺事), 백제고기(百濟古記)에 의하면

     

     

    이곳의 원래 이름은 타사암(墮死巖)이었다고 하는데,

     

     

    뒷날에 와서 궁녀들을 꽃에 비유하여 낙화암이라고 고쳐 불렀다.

     

     

    낙화암 꼭대기에는 백화정(百花亭)이란 정자가 있는데,

     

     

    궁녀들의 원혼(寃)을 추모하기 위해서 1929년에 세운 것이다.

     

     

     

    낙화암과 관련되어 전해오는 전설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백제(百濟)의 마지막 왕인 의자왕(義慈王)은 용담(勇談)이 많은 영주(英主)였는데,

    여러 차례 신라의 여러 고을을 쳐서 천하에 그 성세(聲勢)를 높인 뒤로는 정사는 돌보지 않고

    날마다 궁성 남쪽의 망해정(望海亭)에서 궁녀들을 데리고 가무주연(歌舞酒宴)의 향락(享樂)을 일삼았다.

    좌평 성충(成忠)은 이를 근심하고 극력 간()하였으나, 왕은 이 말이 귀에 거슬려 그를 옥()에 가두어버렸다.

    그러자 그는 마음이 아파서 죽고 말았다.

    이러할 때 일찍이 백제의 침략을 받아온 신라는 무열왕(武烈王) 및 김유신(金庾信) 등의 영주와

    명신(名臣)이 나타나서 나라의 힘을 크게 길러 복수를 하고자 당나라 군사와 힘을 합하여 백제를 치게 되었다.

    이에 백제의 용장 계백(階伯)4천의 적은 군사로써 황산(黃山)벌에서 신라 군사와 싸웠으나 패하고 말았다.

    그러자 나당연합군(羅唐聯合軍)의 수많은 군사가 일시에 수륙 양면에서 쳐들어와

    왕성(王城)에 육박해오자 왕은 그제야 성충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음을 후회하였다.

    왕은 하는 수 없이 해질 때를 기다려 왕자 효()를 데리고

    웅진성(熊津城)으로 달아나서 싸웠으나 성문은 부서져 열리고 말았다.

    수많은 궁녀들이 슬피 울면서 흉악한 적군에게 굴욕을 당하는 것보다 깨끗하게 죽는 것이 옳다 하여

    대왕포(大王浦) 물가 높은 바위 위에서 치마를 뒤집어쓰고 사비수 깊은 물에 몸을 던지고 말았다.

    이러한 일로 인하여 이 바위를 낙화암(落花岩)이라 하였다고 한다.

    충남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산4번지에 위치한 낙화암(落花岩)은 문화재자료 제110호로 지정. 관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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