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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읍성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함양 함화루(咸陽 咸化樓)'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13. 8. 6. 05:08
함양읍성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함양 함화루(咸陽 咸化樓)'
원래 이 누각은 조선시대 함양읍성(咸陽邑城)의 남문(南門)이었다.
일제강점기(日帝强占期)에 도시계획이라는 명목으로 총독부(總督府)에서 강제로 철거하려고 하자,
1932년 함양고적보존회의 대표 노덕영(盧悳泳) 선생이 사재를 들여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본래의 명칭은 남문에서 지리산(智異山)이 보이기 때문에 망악루(望嶽樓)라 하였는데
옮기면서 이름도 함화루(咸化樓)로 고쳤다고 한다.
원래 성의 문루였던 것을 전혀 다른 장소로 이전하였기 때문에 본래의 모습은 찾기 어렵다.
다만 누각의 아랫부분이 윗부분보다 높아 문루였음을 짐작할 뿐이다.
본래 함양읍성에는 동쪽에 제운루(齊雲樓), 서쪽에 청상루(淸商樓),
남쪽에 망악루(望嶽樓) 등 삼문(三門)이 있었는데 지금은 이 문만 남아 있다.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2층 누각으로, 공포는 이익공식에 구조는 목조 오량가이다.
홑처마 팔작지붕에 별다른 장식을 사용하지 않은 소박한 누각이다.
주춧돌(礎石) 위에 자연 그대로의 굽은 둥근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마루를 깔고 둘레에 닭벼슬 모양의 난간(계자난간,鷄子欄干)을 돌렸다.
2층의 내부는 단청(丹靑)을 칠 하였으며, 퇴량에는 용신을 단청으로 그렸다.
2층의 출입은 목조 계단을 통하도록 되어 있으며, 2층에는 난간을 둘렀다.
하층에는 벽이 없고 기둥만이 서 있는데 기둥은 굽은 부재를 그대로 사용하였다.
문루로 이용될 때에는 하층에 벽과 문짝이 시설되어 있었는데
현재에는 벽과 문짝은 사라지고 기둥에서 그 흔적을 찾아 볼 수 있다.
1층 부분은 기둥만이 있어 현재는 정자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영남의 대유학자인 김종직(金宗稙)은 ‘함화루’의 옛 이름인 ‘망악루’를 주제로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다.
“작년 내 발자취가 저 멧부리 더렵혔거니/망악루 올라서 다시 보니 무안하구나/
산신령도 (내가) 다시 더럽힐까 두려워하여/흰구름시켜 곧 문을 굳게 닫는구나.”
경남 함양군 함양읍 운림리 349-1 상림숲에 위치한 함양 함화루(咸陽 咸化樓)는
1986년 8월 6일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58호로 지정, 관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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