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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원화성(水原華城)
    수원사랑/수원화성(水原華城) 2013. 9. 15. 05:34

     

     

    수원화성(水原華城)

     

     

     

     

     

     

     

    “수원화성(水原華城)”은 1794년에 착공하여 2년 후인 1796년 완공된 성(城)으로

     

     

     

    조선 제22대 정조대왕(正祖大王)께서 정쟁(政爭)에 휘말려 억울하게 뒤주 속에 갇혀

     

     

     

    생을 마감한 아버지 사도세자(思悼世子)에 대한 효성심과 강력한 왕도정치를

     

     

     

    꿈꾸며 건설한 효의 성곽이자 신도시이다.

     

     

     

    수원화성(水原華城)은 조선시대 제일 마지막으로 축성된 것으로 임진왜란(壬辰倭亂), 병자호란(丙子胡亂) 등

     

     

     

    전란을 통해 나타난 우리나라 성의 취약점을 실학자들이 과학적이고 실용적이며

     

     

     

    효과적으로 보완하여 축성한 것으로 사적 제3호로 지정,관리되고 있다.

     

     

     

    수원화성 성곽 축성에 소요된 자재는 석재가 201,400덩이, 기와 530,000장,

     

     

     

    벽돌 695,000장, 목재 26,200주 등이며 동원된 인원 6,343명에 달했을 정도로 큰 공사였다.

     

     

     

    또한 축성 시에는 다산 정약용에 의해 고안된 거중기 등 많은 신기재가 사용되었다.

     

     

     

    거중기(擧重機)의 경우 40근의 힘으로 25,000근의 무게를 움직일 수 있었다고 한다.

     

     

     

    수원화성 성곽의 특징은 형태에 있어 팔달산과 시내에 드리워져 있어

     

     

     

    평지성과 산성의 장점을 고루 갖춘 평산성의 형태로 성 가운데를 수원천이 지나고 있다.

     

     

     

    또한 벽돌이 사용된 최초의 성으로 시설물의 곳곳에 곡선의 미가 나타나고 있으며,

     

     

     

    성벽에 배가 나오도록 하여 적군의 침투를 어렵게 하고 있다.

     

     

     

    성곽 전체의 둘레는 5,744 m이며, 주요 시설물로는 4대문을 비롯하여

     

     

     

    장대(將臺) 2곳, 수문(水門) 2곳, 포루(砲樓) 5곳, 포루(鋪樓) 5곳,

     

     

     

    각루(角樓) 4곳, 암문(暗門) 4곳, 공심돈(空心墩) 3곳, 치성(雉城) 등

     

     

     

    총 48개의 시설물이 있었으나 일부가 파괴된 것을 1975년부터 5년간에 걸쳐 복원 보수하였다.

     

     

     

    1997년 12월 수원화성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명실공히 세계인의 문화유산으로 관리하고 있다.

     

     

     

    수원화성 축성과 관련된 모든 기록이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라는 책으로

     

     

     

    남아 있으며, 현재 규장각(奎章閣)에 보관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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