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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리성지 성 다블뤼 기념관(新里聖地 St, Daveluy 記念館)
    국내 나들이/기념관(記念館) 2014. 9. 30. 05:12

    신리성지 성 다블뤼 기념관(新里聖地 St, Daveluy 記念館)

     

     

    신리성지 성 다블뤼 기념관은 201456일에 축성식을 올린 신리성지 기념관이다.

    이곳에는 성화와 성 다블뤼 주교님의 성물과 신앙을 증거하는 유물이 보존되어 있다.

    지하에 설치된 성 다블뤼 기념관은 최대한 절제된 소박한 모습으로 순수 시멘트 벽돌로만 건축하여

    내부는 조명과 함께 마치 예술적인 건축물을 돌아보는 느낌이 든다.

    다블뤼 기념관에는 내포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와 일랑 이종상 화백이 그린 기록화 등이 전시되어 있다.

     

    = 충청남도 당진시 합덕읍 신리63-의2필지 =

     

     

    Qui a Jesus a tout

    예수님을 가진 자가 모든 것을 가진 자다.

     

    성 다블뤼 안 안토니오(St. Antoine Daveluy, 安敦伊)

    Qui a Jesus a tout(예수님을 가진 자가 모든 것을 가진 자다)

     

     

     

    오성석 기도

     

    시기: 1866년 3월 (갈매못 순교 이전)

    등장인물: 다블뤼 주교, 위앵 신부, 오메트르 신부, 장주기 요셉, 황석두 루카, 천주교 신자들, 포졸

    작품내용: 한양에서 문초 후 오천 충청수영(갈매못)으로 압송기간 중 충남 아산군 음봉면 동천리 주막거리에 있는

    오성바위에서 잠시 머물러 막걸리와 떡을 사서 포졸과 구경꾼들에게 나눠 먹였다.

    잠시 포승이 풀린 다섯 성인은 포졸들의 경계 속에 오성바위에 둘러 앉아 서로 격려하며, 성가를 부르고 기도하였다.

    근거: 이호일, 강종민 ‘순교성지 갈매못’기쁜소식 2009 P.119-120

     

    갈매못 순교

     

    시기: 1866. 3. 30

    등장인물: 다블뤼 주교, 위앵 신부, 오메트르 신부, 장주기 요셉, 황석두 루카, 천주교 신자들, 포졸, 망나니

    작품내용: 한양에서 군문효수형이 내려졌으나 고종의 혼인날이 한 달여 남아 국혼을 앞두고

    한양에서 피를 흘리는 것은 국가 장래에 이롭지 못하다는 무당의 예언에 따라

    한양에서 250리 떨어진 곳에서 형을 집행하라는 명이 떨어졌다.

    충남 보령시 오천면 영보리 갈매못 바닷가 모래사장에 압송 후, 충청도 수군절도사의 통제에 따라

    군사 200명이 다섯 성인을 둘러쌓아 구경꾼들의 접근을 막고 사형집행 직전의 장면.

    근거: 샤를살몽 ‘성 다블뤼 주교의 생애’ 대전가톨릭대학교 출판부 2006 P.379-381

     

    순회사목

     

    시기: 1846년 1월 ~ 1866년 3월 11일 체포 직전까지

    등장인물: 다블뤼 주교, 천주교 신자들

    작품내용: 1945년 10월 12일 다블뤼 최초 입국 후, 자신의 소임을 다하기 위해

    조선어 교육을 받고 자신에게 맡겨진 교우들을 방문해도 될 상태가 되었다.

    1846년 1월부터 두 달 동안 조선의 혹독한 겨울의 눈을 뚫고 여러 지역에 흩어져 있는

    700명의 교우들을 만나 사목활동을 수행하였다. 대부분의 순회사목 시기는 농번기를 피하여 이루어졌다.

    근거: 샤를살몽 ‘성 다블뤼 주교의 생애’ 대전가톨릭대학교 출판부 2006 P.279-381

     

    배티신학교

     

    시기: 1850년

    등장인물: 다블뤼 주교, 장주기 요셉, 신학생, 천주교 신자들

    작품내용: 다블뤼 주교는 1850년 이전에 이미 신학생을 선발해 순방 여행 중에 데리고 다니며 라틴어 등을 지도하였다.

    1850년경 페레올 신부는 일정한 곳에 신학교를 마련하여 병으로 순방 여행을 하지 못하는

    다블뤼 주교에게 병이 나을 때까지 신학생들을 맡아보게 하였다.

    페레올 주교로부터 소년들의 라틴어 교육에 소임을 받아 조선 최초의 예비 신학교 교장을 역임하였다.

    근거: 방상근, 최선혜, 양인성‘한국천주교회사’한국교회사 연구소 2010 P.205-206

     

    병인박해 (신리)

     

    시기: 1866년 3월 이후

    등장인물: 신리의 천주교 신자들, 포졸

    작품내용: 병인박해 중, 포졸들이 신리에 여러 차례 들이닥쳤다고 한다.

    신리의 손씨 성을 가진 교우들은 키도 크고 건장하여 여러 명의 포졸들이 교우를 잡아도 한 번에 제압할 수 없었다.

    체포에 어려움을 겪었던 포졸들은 교우들을 잡으면 몽둥이로 마구 때려서 힘을 빼고 팔을 부러뜨려서 압송하였다.

    근거: 2014년 3월 24일 김성태 신부님 1차 고증자료

     

    미사(다블뤼 주교관:신리)

     

    시기: 1865년~1866년 3월

    등장인물: 다블뤼 주교, 황석두 루카, 신리 손씨 일가, 천주교 신자들

    작품내용: 신리 손씨 마을의 손자선 토마스의 생가에서 거주한 다블뤼 주교가

    신리 교우들과 미사를 드리는 장면. 증언에 의하면 방의 장식은 간단했다고 전해진다.

    벽에 고정되어 있는 널빤지 하나는 제대로 사용되었는데,

    그 위에 바구니를 하나 놓고서 미사에 필요한 제의들을 모두 넣어 두셨고,

     제대 밑에는 작은 상자가 하나 있고 그 안에 매일 사용되었던 물건들이 들어있었다고 한다.

    많은 신자들이 방안에서 미사를 드리기 위해 각방을 나눠놓는 미닫이문을 제거하여 미사를 드렸던 곳이다.

    근거: 위앵 신부의 증언 내용(김성태 신부님 보내온 메일 자료)

     

     

     

    이 십자가는 1870년경 지금의 솔뫼성지 김대건 안드레아 성인 생가에서 근거리에 있는

    우강면 대포리에서 출생하여 3를 살으셨던 증조부되시는 여성식(呂成植) 요한께서

    그 시대 내포지방(內浦地方)을 사목하시던 안돈이 신부(安敦伊 神父)로부터 구입한 것으로 추정되는 십자가이다.

    특히 이 십자가상은 우리 가문에서 6를 우리와 함께 신앙생활을 지켜온 유서깊은 귀품이다.

     

    천주강생 20103월 신례원 천주교회 계촌리공소 여운섭(呂運燮) 가비노 기록

     

    순교자의 유해함

     

     

     

     

    당진 신리 다블뤼 주교 유적지 (唐津 新里 Daveluy 主敎 遺蹟址)

     

    충청남도 기념물 제176호

     

    신리성지는 제5대 조선교구장 다블뤼 주교가 거처 하던 곳이다.

    다블뤼 주교는 1845년 10월 김대건 신부와 함께 강정에 첫 거름을 내 디딘 후

    1866년 갈대 못에서 순교하기까지 21년 동안 조선에서 활동하였다.

    그는 내포지방 천주교 유력자였던 손자선 토마스의 집에 은거하면서

    함석두 루카의 도움을 받아 천주교 서적을 저술하거나 한글로 번역하였다.

    그리고 조선천주교사와 순교자들의 행적을 수집하였다.

    이 자료들은 훗날 달례(한국천주교회사)의 기초가 되었고 103위 성인을 반성시키는데도 결정적으로 기여하였다.

    또한 신리는 천주교 탄압기의 가장 중요한 교우 촌으로 인식되었다.

    조선에서 가장 큰 교우마을이었으며 선교자 들의 비밀 입국 처이기도 했다.

    이처럼 한국의 천주교 전파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이 곳은 조선의 카다름바(로마시대비밀교회)로 불리고 있다.

    다블뤼 주교가 신리에서 이러한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발달된 삽교천 수계를 통해

    중국에 있는 파리외방 전교회와 긴밀히 연결될 수 있었던 점과 내포지방의 문화적 개방성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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