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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동상(聖 金大建 안드레아 神父 銅像)
    국내 나들이/동상(銅像),흉상(胸像),비(碑), 2014. 10. 1. 05:04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동상(聖 金大建 안드레아 神父 銅像)

     

     

    ‘소나무가 뫼를 이루고 있다’하여 순우리말로 ‘솔뫼’라 이름 붙여진 곳으로,

    한국 최초의 사제인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1821~1846)이 탄생하신 장소이다.

    증조 할아버지 김진후(비오 1814년 해미에서 순교), 작은 할아버지 김종한(안드레아 1816년 대구 관덕정에서 순교),

    아버지 김제준(이냐시오 1839년 서울 서소문 밖에서 순교), 그리고 김대건 신부님(1846년 서울 한강 새남터에서 순교) 등

    4대의 순교자가 살던 곳으로, 김 신부님의 신앙과 삶의 지표가 싹튼 장소로, ‘한국의 베들레헴’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은 이곳(현 당진시 우강면 송산리, 당시에는 면천 고을 솔뫼)에서 1821년 8월 21일 태어났다.

    그러나 이미 증조 할아버지와 작은 할아버지가 순교한 천주학 집안이어서 가세는 기울대로 기울었고,

    또 어느 때 새로운 박해가 닥칠지 몰라 할아버지 김택현은 대건이 7살 되던 해에

    경기도 용인군 내사면 남곡리 ‘골배마실’이라는 산골로 이사하였다.

    김대건 소년은 그곳에서 15세 때인 1836년 모방 신부님에 의해 신학생으로 선발되어 최양업(토마스)과

    최방제(프란치스코)와 함께 마카오로 유학하여 신학을 공부했고 상해(上海) 진쟈상(金家巷:김가항) 성당에서

    고 페레올 주교님으로부터 사제서품을 받았다.

    1845년 조선에 입국한 김 신부님은 선교활동에 힘쓰는 한편 외국 선교사들을 영입하기 위해 힘쓰다

    1846년 6월 5일 순위도 앞바다에서 체포되었다.

    1846년 9월 16일 서울 한강변 새남터에서 군문효수형을 언도받고 순교하였다.

    사제 생활 1년 1개월 만의 일이었다. 1925년 7월 5일 비오 11세에 의해 기해박해.

    병오박해 순교자 79명과 함께 복자품 시복,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회 창설 200주년을 기해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다른 한국 순교자 102명과 함께 가톨릭 교회의 성인품에 올려졌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은 조선 최초의 방인사제이며 현실을 직시하고 진리를 외치던 선각자였다.

    또한 우리나라 최초의 양학 유학자이며 조선의 최장거리 여행자이고

    연평도에서 상해까지 항해한 최초의 서해 항로 개척자이기도 하다.

    1845년 초 우리나라 최초로 조선전도를 만들었으며, 저서로는 21편의 서한이 있고,

    한국 교회사에 관한 비망록 등이 있어 79위 시복자료가 되었다.

    1906년, 당시 합덕 성당의 크램프 신부님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순교 60주년을 맞이하여

    김 신부님의 생가터를 고증하였고, 1946년 순교 100주년을 맞아 순교 기념비를 세우면서 성지는 조성되기 시작하였다.

    현재 충청남도 지정문화재 제146호로 지정된 솔뫼성지는, 1만여 평의 소나무 군락지와 더불어 김대건 신부님의 생가가 복원되었고,

    광활한 내포 평야의 한 복판에 자리하면서 한국천주교회 안에 영적인 양식을 공급하고 있다.

     

    = 충남 당진시 우강면 송산리 천주교 솔뫼성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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