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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악대사(仁嶽大師) 나무
    자연과 함께/나무(木) 2015. 2. 17. 04:55

     

    인악대사(仁嶽大師) 나무

     

     

    인악대사(1746~1796)의 俗姓(속성)은 李氏, 本貫(본관)은 星山(성산),

    諱(휘)는 義沼(의소), 字(자)는 子宜(자의), 法號(법호)를 仁嶽(인악)이라 하였다.

    고려 司空(사공) 星山府院君(성산부원군) 能一(능일)의 23世孫(세손)이며

    父는 徽澄(휘징)이고 母(모)는 達成(달성) 徐氏(서씨)이다.

    1746년(영조 22)에 達成(달성) 인흥촌(현 달성군 화원면 본리동 인흥촌,

    고려때 유명한 仁興寺(인흥사)가 있던 곳)에서 태어났다.

    인악대사는 8살에 鄕學(향학)에 들어가 小學(소학)을 세번 읽고 다 외워버리니

    신동이라는 소문이 인근 고을까지 났다.

    15세에 詩經(시경), 書經(서경), 易經(역경)을 다 읽고 글을 잘지어 천재라 했다.

    18세에 인근에 있는 龍淵寺(용연사)의 嘉善(가선) 軒公(헌공)에게서 僧(승)이 되고,

    碧峰和尙(벽봉화상)에게서 具足戒(구족계)를 받았으며,

    金剛經(금강경), 華嚴經(화엄경)등 大乘經(대승경)을 배웠다.

    西岳(서악). 泓宥(홍유), 聾巖(농암)등 諸名師(제명사)에게서 修學(수학),

    1768년(영조 44) 벽봉화상에게 돌아와 法(법)을 이어받고 講堂(강당)을 열어 설법했다.

    또 靈源庵(영원암)으로 가서 華巖(화암)의 宗師(종사) 雲坡(운파)에게서 華巖經(화암경)과 禪門(선문)을 배운 다음

    비슬산, 八公山(팔공산), 鷄龍山(계룡산), 佛靈山(불영산) 등의 산을 遊歷(유력)하며 佛經(불경)을 강의했으며

    동화사에 오랫동안 머물면서 후학양성에 전념했다.

    1790년(정조 14)에 正祖가 그 아비의 願堂(원당)으로 水原(수원) 龍珠寺(용주사)가 창건될 때

    證師(증사)가 되어 <佛服藏願文慶讚疏(불복장원문경찬소)>와 <龍珠寺祭神將文(용주사제신장문)>을 지으니

    정조가 그 글을 보고 크게 감탄하여 그에게 弘濟(홍제)라는 호를 내렸다.

    1796년(정조 20)에 비슬산 명적암(明寂庵)에서 향년 51세, 법랍 34세로 입적하였으며,

    비는 지금 동화사에 세워져 있다.

    저서로는 인악집(仁嶽集), 화엄사기(華嚴私記), 금강사기(金剛私記), 기신론사기(起信論私記) 등이 있다.

    수령이 500여년 된 이 느티나무는 동화사와 인연이 깊은

    스님을 기리기 위하여 인악대사(仁嶽大師) 나무라 이름지었다.

     

     

    = 대구광역시 동구 동화사1길 1 (도학동) 대한불교조계종 동화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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