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제기동 해풍부원군 윤택영 재실(祭基洞 海豊府院君 尹澤榮 齋室)
    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15. 2. 23. 06:00

    제기동 해풍부원군 윤택영 재실(祭基洞 海豊府院君 尹澤榮 齋室)

     

    해풍부원군 윤택영 재실(齋室)은 일반 살림집이 아니고, 윤씨 일가의 재실(齋室)이었다.

    윤택영(尹澤榮)은 순종(純宗)의 비 순정효황후(純貞孝皇后)의 생부다.

    이 가옥은 원래 동대문구 제기동 224에 있었는데, 옛 이름은 '제기동 정규엽가(祭基洞 丁奎葉家)'이다.

    현재는 '남산 제모습 찾기사업'의 일환으로 1996년 조성된 남산한옥마을에 옮겨져 보존되고 있다.

    이 가옥은 윤택영이 그의 딸이 1906년 동궁(東宮) 계비(繼妃)에 책봉(冊封)되고

    이듬해 황후가 되어 창덕궁(昌德宮)에 들어갈 때 지은 집으로 전한다.

    가옥 전체의 분위기는 살림집이라기 보다는 재실 용도에 걸맞게 되어 있다.

    이 가옥은 순종이 제사하러 왔을 때의 불편을 덜기 위해

    경운궁(慶運宮)을 헐 때 나온 부재를 이용하여 지은 것이라고 한다.

    사랑채ㆍ안채ㆍ사당채를 포함한 전체 건물배치 형태는 현존하는 우리나라 전통한옥 중에서

    가장 독특하게 '元(원)'자형으로 된 길상문자(吉祥文字)를 이루었다.

    이 가옥의 제일 안쪽 높은 터에는 '元'자형 배치의 북측 머리에 해당하는 '一'자형 평면을 한 사당이 자리잡았다.

    사당 앞 남쪽 한 단 낮은 터에는 '元'자의 '兀'자를 이루는 안채ㆍ사랑채ㆍ행랑채가 자리잡고 있다.

    안채와 사랑채는 서로 길게 연속되어 '兀'자의 상부를 차지하며 '一'자형의 몸채를 이루었다.

    사당은 4·19혁명 때 화재로 소실되어 초석만 남은 것을 현재의 위치로 이전할 때 함께 복원했다.

    정면 가운데에 한 벌 계단을 설치한 화강석 기단 위에 세운 정면 4칸, 측면 2칸 규모의 건물이며,

    정면 4칸을 구성하는 각 기둥 사이에는 사분합문을 달았고, 나머지 세 면은 모두 벽으로 막았다.

     사각기둥 초익공이고, 모두 굴도리를 사용한 무고주(無高柱) 5량 가구(架構)에 홑처마 박공지붕이다.

    안채는 '一'자형의 서쪽 끝에 정면 1칸, 측면 2칸의 부엌을 두었고,

    그 동쪽으로 안방(3×1.5칸), 대청(3×1.5칸)을 차례로 두어 동쪽의 사랑방과 연결되게 하였으며,

    안방과 대청 앞에는 반 칸 폭의 툇간을 두었다.

    대청 동쪽에는 2×1.5칸 크기의 사랑방이 있으며, 그 동쪽 끝은 1×2칸 크기의 누마루가 있다.

    사랑방 앞에 있는 반 칸 폭의 퇴는 대청 앞 퇴와 연속되었다.

    사랑방에서 안채 쪽으로 향한 툇간 측면에는 두 짝 여닫이를 달았고,

    이와 마주하는 안방 전퇴의 동쪽 측면에도 두 짝 여닫이를 달아,

    가운데 대청을 두고 안방과 사랑방 사이로 공간이 개방되는 것을 조절하도록 보완하고 있다.

    안방 전퇴의 남측으로 뻗은 '兀'자형의 왼쪽에 해당하는 부분은 제일 위쪽에서 차례로

    누마루 1칸, 방 2칸(원래는 방 1.5칸, 벽장과 함실아궁이 반 칸이었음), 방 1칸, 광 1칸으로 구성되었고,

    거기서 다시 서쪽으로 꺾이며 중문간 1칸, 문간방 1칸, 광 1칸을 두었다.

    대청 오른편 전퇴에서 남측으로 뻗은 '兀'자형의 오른쪽에 해당하는 부분은

    제일 위쪽에서 차례로 방 2칸, 방 2칸, 방 1칸으로 구성되었고, 다시 동쪽으로 꺾이며 마루 2칸, 방 1칸을 두었다.

    안방 앞의 안마당은 서측 행랑의 중문으로 통하고,

    사랑방과 사랑마당은 동측 행랑 끝에 뻗어 나온 담의 일각대문으로 드나들게 되었다.

     '兀'자형 배치평면의 중앙에 남북으로 길게 조성된 가운데

    마당은 전면 동서 행랑채 벽선을 따라 만든 담의 일각대문으로 드나든다.

    안채와 사랑채는 장대석 기단 위에 네모뿔대의 주춧돌을 놓고, 그 위에 사각기둥을 세웠다.

    가구는 1고주 5량으로 전면 평주와 고주에 툇보를, 고주 후면 평주에 대들보를 걸었다.

    고주머리와 대들보 안쪽에 세운 동자기둥에는 종량을 걸고 판대공을 놓아 종도리를 받치고 있다.

    전면의 처마도리와 종도리는 굴도리이고 나머지는 납도리인데, 종도리 밑에는 장혀와 소로받침을 두어

    판대공의 도리방향으로 끼운 첨차로 받치고 있고, 이것은 다시 뜬창방으로 받쳤다.

    몸채 지붕은 팔작기와지붕이며, 행랑채는 3량 가구로 맞배지붕을 이루고 있다.

    연면적 218.18㎡(66평), 1977년 9월 5일 서울특별시 민속자료 제24호로 지정, 관리하고 있다.

     

    서울특별시 중구 필동 2가 84-1 일대 (남산골 한옥마을 내)

     

     

     

     

     

     

     

     

     

     

     

     

     

     

     

     

     

     

     

     

     

     

     

     

     

     

     

     

    2633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