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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중근의사기념관(安重根義士記念館)
    국내 나들이/기념관(記念館) 2015. 3. 12. 05:19

    안중근의사기념관(安重根義士記念館)

     

    안중근의사는 일제침략으로 나라의 운명이 위험에 처한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역에서

    제국주의 침략의 상징 이토 히로부미를 쓰러뜨려 대한의 민족혼이 살아있음을 세계 만방에 알리셨다.

    동양평화를 위해 헌신하신 안중근의사는 옥중에서 『동양평화론』을 저술하는 중

    겨우 서론과 본문의 일부만을 남긴채 1910년 3월 26일 뤼순감옥에서 일제의 부당한 판결에 의해 순국하셨다.

    때문에 아쉽게도 우리는 그 깊은 평화사상을 짐작만 할 수 있을 뿐이다.

    『동양평화론』에 나타는 정치적 구상은 금일의 유럽공동체(EU)와 흡사하고 경제적 뒷받침을 위해

    공동은행을 세우려는 구상은 세계은행(IBRD)·국제통화기금(IMF)의 구상과 일치하는바,

    안중근의사는 100년 후의 오늘을 내다본 탁월한 정치사상가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우리 정부는 조국이 광복을 이룬 후에도 한국전쟁과 4·19혁명, 5·16군부 쿠데타 등

    격동기를 거치면서 안중근의사에 대해 이렇다 할 위훈을 기리지 못한 채 많은 세월을 보낸 것이 사실이다.

       그러던 중 1970년 10월 26일 당시 박정희대통령의 지시와 국민의 성금 등으로

    일제시기 민족정기를 탄압하는 조선신궁이 있던 서울 남산 현 위치(회현자락)에 안중근의사기념관을 건립·개관하게 되었으며,

    세월이 흘러 기념관이 노후·협소해짐에 따라 2004년 (사)안중근의사숭모회와 광복회의 요청을 받은

    노무현대통령의 지시로 국가보훈처에서는 2010년 10월 26일 새 기념관을 개관하였다.

    기념관 신축을 계기로 안중근의사에 관한 유물과 자료를 전시하고 그 사상과 정신을 보급하는 일에 더욱 매진하고,

    앞으로 안중근의사기념관은 우리의 젊은 세대와 후손들에게 나라와 민족이 무엇인가를 일깨우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 희생하신 애국지사를 민족의 긍지로 여기며,

    스스로 삶의 표본과 중심을 일으켜 세우는 산교육의 마당으로 자리잡게 될 것이다.

     

    = 서울특별시 중구 소월로 91(남대문로 5가) =

     

     

     

     

    獨立(독립)

    조국독립의 강한 의지를 표시했던 글이다.

     

     

    忍耐(인내)

    참고 견딘다는 안중근 의사의 평생의 좌우명

     

     

    孤莫 孤於 自恃(고막 고어 자시)

    스스로 잘난척 하는 것보다 더 외로운것은 없다.

     

     

     

    極樂(극락)

    안중근 의사의 신앙과 종교관이 깃들인 글귀이다.

     

     

    敬天(경천)

    하늘 또는 하느님을 공경하라는 뜻.

    경천’은 천주교 신자였던 안중근 의사가 1910년 3월 뤼순 감옥에서

    사형집행을 앞두고 일본인의 부탁을 받아 쓴 붓 글씨다.

     

    仁智堂(인지당)

    어질고 지혜로워야 한다는 뜻의 "당호"

     

     

    第一江山(제일강산)

    가볼 수 없는 조국강산에 대한 그리운 심정이 나타나 있다.

    안중근이 금강산을 비롯한 조국강산을 천하제일의 강산으로 생각하고 있음을 엿 볼 수 있다.

     

    百忍堂中有泰和(백인당중유태화) 백번 참는 집안에 태평과 화목이 있다.

    一日不讀書口中生荊棘(일일불독서구중생형극) 하루라도 글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

     

     

    年年歲歲花相似歲歲年年人不同(년연세세화상사 세세연년인부동)

    해마다 계절따라 같은 꽃이 피건만 해마다 사람들은 같지 않고 변하네 

    恥惡衣惡食者不足與議((치오의오식자부족여의)

    궂은 옷,궂은 밥을 부끄러워하는 자는 더불어 의논할 수 없다.

     

     

    見利思義 見危授命 (견리사의 견위수명)

    이익을 보거든 정의를 생각하고,위태로움을 보거든 목숨을 바쳐라.

     

    庸工難用 連抱奇材(용공난용연포기재)

    서투른 솜씨는 쓰기 어려우나, 아름되는 나무는 뛰어난 재목이다.

     

    人無遠慮難成大業(인무원여난성대업)

    사람이 멀리 생각하지 못하면 큰일을 이루기 어렵다.

    歲寒然後知松柏之不彫(세한연후지송백지부조)

    눈보라 친 연후에야 잣나무가 이울지 않음을 안다.

     

    丈夫雖死心如鐵義士臨危氣似雲(장부수사심여철의사임위기사운)

    장부는 비록 죽더라도 마음은 쇠와 같으며, 의사는 위태로움에 닥치더라도 기운은 구름과 같다.

     

    博學於文約之以禮(박학어문약지이례)

    글공부를 널리 하고 예법으로 몸단속하라.

    國家安危 勞心焦思(국가안위 노심초사)

    국가의 안위를 걱정하고 애태운다.

     

     

    爲國獻身軍人本分(위국헌신군인본분)

    나라위해 몸 바침은 군인의 본분이다.

     

    天與不受 反受其殃耳(천여불수 반수기앙이)

    만일 하늘이 주는것을 받지 않으면 도리어 벌을 받게 된다.

     

    言忠信行笃敬 蠻邦可行(언충신행독경 만방가행)

    말에 성실과 신의가 있고 행실이 돈독하고 경건하면, 야만(오랑캐)의 나라에서도 행할 수 있다.

     

     

    臨敵先進 爲將義務(임적선진위장의무)

    적을 맞아 앞서 나가는 것이 의무다.

     

    志士仁人 殺身成仁(지사인인 살신성인)

    지사와 어진 사람은 자기 몸을 죽여 인을 이룬다.

     

    貧與賤 人之所惡者也(빈여천 인지소오자야)

    가난하고 천 한 것은 사람들이 싫어한다.

     

     

     

    민족정기(民族正氣)의 전당(殿堂)

     

     

    이등박문죄악 15개조항(伊藤博文 罪惡 十五個條項)

     

    안중근의사가 일본검찰에게 밝힌 이등박문(이토 히로부미)죄악15개조항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한국의 명성황후(明成皇后)를 시해(弑害)한 죄

    2. 한국의 고종황제(高宗皇帝)를 폐위(廢位)시킨 죄

    3. 을사보호 5조약과 정미 7조약을 강제로 체결한 죄

    4. 독립을 요구하는 무고한 한국인들을 학살한 죄

    5. 정권을 강제로 빼앗아 통감정치 체제로 바꾼 죄

    6. 철도, 광산, 산림과 농지를 강제로 빼앗은 죄

    7. 일본이 제일은행권 지폐를 강제로 사용하여 한국의 경제를 교란한 죄

    8. 한국군대를 강제로 해산시킨 죄

    9. 민족 교육을 방해한 죄

    10. 한국인들의 외국유학을 금지시키고 식민지화한 죄

    11. 한국사를 말살하고, 교과서를 압수하여 불태워 버린 죄

    12. 한국인이 일본인의 보호를 받고자 한다고 세계에 거짓말을 퍼뜨린 죄

    13. 현재 한국과 일본 사이에 전쟁이 끊이지 않는데 한국이 태평무사한 것처럼 위로 천황을 속인 죄

    14. 대륙침략으로 동양평화를 깨뜨린 죄

    15. 일본천황의 아버지 태황제를 죽인 죄

    國家安危 勞心焦思(국가안위 노심초사) 국가의 안위를 걱정하고 애태운다

     

     

    合成散敗 萬古定離(합성산패 만고정리)

    합하면 이루고 흩어지면 패한다. 이는 만고의 정한 이치다.

     

     

    인심결합론

    대한제국 의군참모총장 안중근

     

    대저 사람이 만물보다 귀하다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삼강오륜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세상에 처하되 첫째는 몸을 닦고 둘째는 집을 정돈하고 셋째는 나라를 보호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은 몸과 마음을 서로 합하여 생명을 보호하고 집은 부모와 처자에 의해서 유지되고

    나라는 국민상하의 단결에 의해서 보존되는 것이어늘 슬프다.

    우리나라는 오늘날 이 같이 참담한 경지에 빠졌으니 그 까닭은 다른 것이 아니라

    서로 화합하지 못한 것이 제일 큰 원인인 것이다.

     

    이 불화하는 병의 원인은 교만 병이다. 하 많은 해독이 교만으로부터 생겨나나니

    소위 교만한 무리들은 저보다 나은 자를 시기하고 저보다 약한 자를업신여기며 동등한 자는

    서로 다투어 아랫사람이 안 되려하니 어찌 서로 결합함을 얻을 수가 있을 것인가.

     

    그러나 교만을 바로잡는 것은 겸손이 바로 그것이다 사람이 만일 각각 겸손함을 주장삼아 자기를 낮추고

    남을 공경하여 남이 자기를 꾸짖는 것을 달게 받으며 자기가 남을 꾸짖는 것은

    너그러이 하고 자기 공을 남에게 양보한다면 사람이 짐승이 아니어늘 어찌 서로 불화할 리가 있겠느냐 

    옛날에 어느 나라 임금이 죽을 적에 자식들을 불러 경계해 말하되

    “너희들이 만일 내가 죽은 뒤에 형제끼리 마음을 합하지 못하면 쉽게 남의 꺾임이 되려니와

    마음을 합하기만 하면 어찌 남들이 꺾을 수 있으리오” 하였었다.

    이제 고국 산천을 바라보니 동포돌이 원통하게 죽고 죄 없는 조상의 백골마저 깨뜨리는 소리를 참아듣지 못하겠다.

     

    깨어라 연해주(노령)에 계신 동포들아! 본국의 이 소식을 듣지 못 했는가 당신들의 일가친척은

    모두 대한 땅에 있고 당신들의 조상의 분묘도 모국산하에 있지 않단 말인가

    뿌리가 마르면 가지 잎새도 마르는 것이니 조상의 같은 피의 족속이 이미 굴욕을 당했으니

    내 몸은 장차 어떻게 하리오 우리 동포들아! 각각 “불화” 두자를 깨뜨리고 “결합” 두 자를 굳게 지켜

    자녀들을 교육하며 청년자제들은 죽기를 결심하고 속히 우리 국권을 회복한 뒤에 태극기를 높이 들고

    처자권속과 독립관에 서로모여 일심단체로 육대주가 진동하도록 대한독립만세를 부를 것을 기약하자

     

    안중근의사가 1908년 3월 8일 노령 블라디보스톡 해조신문(海朝新聞)에

    인심을 결합하여 국권을 회복하자는 제목으로 기고했던 글을 이은상 씨가 번역하였음

     

     

     

     

    최후의 유언

     

    내가 죽은 뒤에 나의 뼈를 하르빈공원 곁에 묻어두었다가

    우리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반장해 다오.

    나는 천국에 가서도 또한 마땅히 우리나라의 회복을 위해 힘쓸 것이다.

    너희들은 돌아가서 동포들에게 각각 모두 나라의 책임을 지고 국민된 의무를 다하여

    마음을 같이 하고 힘을 합하여 공로를 세우고 업을 이르도록 일러다오.

    대한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

     

     

     

    장부가(丈夫歌)

     

    丈夫處世兮 其志大矣(장부처세혜 기지대의) 장부가 세상에 처함이여 그 뜻이 크도다

    時造英雄兮 英雄造時(시조영웅혜 영웅조시) 때가 영웅을 지음이여 영웅이 때를 지으리로다

    雄視天下兮 何日成業(웅시천하혜 하일성업) 천하를 웅시함이여 어느 날에 업을 이루고

    東風漸寒兮 壯士義熱(동풍점한혜 장사의열) 동풍이 점점 차가우나 장사의 의기는 뜨겁도다

    念慨一去兮 必成目的(념개일거혜 필성목적) 분개하여 한번 지나감이여 반드시 목적을 이루리로다

    鼠竊伊藤兮 豈肯比命(서절이등혜 개긍비명) 쥐 도적 이등여 어찌 즐겨 목숨을 비길고

    豈度至此兮 事勢固然(개도지차혜 사세고연) 어찌 이렇게 될 줄을 헤아렸으리요 사세가 본디 그러하도다

     同胞同胞兮 速成大業(동포동포혜 속성대업) 동포 동포여 속히 대업을 이룰 지어라

    萬歲萬歲兮 大韓獨立(만세만세혜 대한독립) 만세 만세여 대한독립이로다

    萬歲萬萬歲 大韓同胞(만세만만세 대한동포) 만세 만만세여 대한동포로다

     

    人無遠慮 難成大業(인무원여 난성대업)

    사람이 멀리 생각하지 못하면 큰일을 이루기 어렵다.

     

    안의사의 말씀

     

    우리들의 소원을 단 한 번에 성공하지 못하면 두 번 세 번 열 번 백 번이라도 해보고

    올해 안 되면 내년에 해보고 십년 백년이 걸려도 좋다.

    우리 대에 안 되면 아들 대 또 손자 대까지 가서라도 대한독립을 되찾고야 말 것이다.

    1908년 6월 두만강전투 때

     

     

    東洋大勢思杳玄(동양대세사묘현) 동양대세 생각하매 아득하고

    有志男兒豈安眠(유지남아기안면) 뜻있는 남아 어찌 편히 잠드리

    和局未成猶慷慨(화국미성유강개) 평화시국 못 이룸이 이리도 북받치고

    政略不改眞可憐(정략불개진가련) 정략을 고치지 않으니 참으로 불쌍토다.

     

    人類社會 代表重任(인류사회 대표중임)

    인류사회의 대표는 책임이 무겁다.

     

     

     

    안중근의사 충의비 성역(安重根義士 忠義碑 聖域)

     

    조국(祖國)의 독립(獨立)과 동양(東洋)의 평화(平和)를 위하여 1909년 10월26일

    안중근의사는 하얼삔 역두(驛頭, 역앞)에서 아세아(亞細亞) 침략(侵略)의 원흉(元兇)

    이등박문(伊藤博文)을 저격(狙擊)하고 대한국(大韓國) 만세(萬歲)를 높이 외쳐

    세계 인사(世界 人士)들로부터 코리아가 아직 살아있다는 대찬사(大讚辭)를 받았다.

    안의사(安義士)의 장렬(壯烈)한 애국심(愛國心)과 민족혼(民族魂)이 담긴

    유묵(遺墨, 살았을 때에 써 둔 필적)과 유언(遺言)을 큰 돌에 새겨

    온 국민이 길이 추모(追慕)하는 마음의 도표(道標)를 삼는다.

    안의사(安義士)의 높은 정신(精神)을 본 받아 자유(自由)와 평화(平和)와

    정의(正義)의 세계(世界)를 건설하는 것은

    우리의 위대(偉大)한 사명(使命)이요 고귀(高貴)한 의무(義務)다.

    여기에 세운 안의사(安義士) 충의비(忠義碑) 성역(聖域)은 우리 겨레의 정기(精氣)를

    드높이는 천추만대(千秋萬代)의 빛나는 영장(靈場)이 될 것이다.

     

    1987년 3월 26일   사단법인(社團法人) 안중근의사(安重根義士) 숭모회(崇慕會)

     

     

    志士仁人 殺身成仁(지사인인 살신성인)

    지사와 어진 사람은 자기 몸을 죽여 인을 이룬다.

     

     

    見利思義 見危搜命(견리사의 견위수명)

    이익을 보거든 정의를 생각하고, 위태로움을 보거든 목숨을 바치라.

     

     

    안중근(安重根)

     

    안중근(安重根, 1879년 9월 2일 ~ 1910년 3월 26일)은

    대한제국의 독립운동가이며 의병장, 정치사상가이다.

    어려서 안응칠(安應七)이라는 아명으로 불렸으며, 천주교 세례명은 토마스이다.

    본관은 순흥(順興), 고려조의 유학자 안향(安珦)의 26대손이다.

    우덕순, 조도선 등과 소수의 결사대를 조직, 만주의 각 역 근처에서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 등의 하차 시 저격을 준비하였으며,

    하얼빈역에 잠입하여 역전에서 러시아군의 군례를 받는 이토를 사살하고

    하얼빈 총영사 가와카미 도시히코(川上俊彦), 궁내대신 비서관 모리 타이지로(森泰二郞),

    만철 이사(滿鐵 理事) 다나카 세이타로(田中淸太郞) 등에게 중상을 입히고 현장에서 러시아경찰에게 체포되었다.

    체포 후 대한의군 참모중장이자 특파독립대장이라고 밝혔다.

    동학 농민운동 당시 아버지 안태훈이 동학군을 정벌하는 데 함께 참여하였고,

    구한 말에는 학교 설립과 교육운동과 국채보상운동을 하였으며

    한때 복권 사업과 비슷한 채표회사(彩票會社) 활동을 하기도 했다.

    1905년 대한제국을 사실상 일본 제국의 속국으로 만든 제2차 한일 협약이 체결된 것에 저항해,

    독립 운동에 투신한 그는 사상적 측면으로는 동양평화론자이기도 했다.

    1910년 3월 26일 오전 10시에 사형이 집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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