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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왕저수지(日旺貯水池)와 만석공원(萬石公園)
    수원사랑/휴식공간 2015. 4. 12. 06:36

    일왕저수지(日旺貯水池)와 만석공원(萬石公園)

     

     

    수원시 장안구 송죽동(松竹洞)에 위치한 만석공원(萬石公園)은

     

     

     

    넓이는 355,800㎡으로 1998년에 조성된 수변공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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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석거(萬石渠)라 불리는 이곳은 1795년(정조 19년)수원 화성을 쌓으면서

     

     

     

    인근에 입주한 사람들이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만든 저수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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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민백성들을 위한 정조대왕의 선정(善政) 중의 한나인 농업정책의 산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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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저수지가 축조되어 쌀을 1만 석이나 더 생산하였다고 해서 만석거(萬石渠)라고 불려진 것이다.

     

     

     

    또한, 현재는 일왕저수지 또는 교귀정방죽, 북지, 조기정방죽 등의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운다.

     

     

     

    교귀정이라는 이름은 저수지 남쪽에 교귀정(交龜亭)이라는 정자가 있어서 부르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1996년 10월에 건립한 영화정(迎華亭)이 들어서 있다.

     

     

     

    만석거에는 만석공원을 조성해 놓았는데 산책로, 정자, 분수대 등이 설치되어 있으며,

     

     

     

    휴게시설로 덩굴시렁(일명 파고라) 등과 운동시설로는 다목적 운동장과 테니스장,

     

     

     

    게이트볼장, 축구장이 있으며, 매점과 주차장 화장실 등 편의시설이 들어서 있다.

     

     

     

    또한, 공원 내에 수원미술관이 들어서 있어서 휴식을 하며 예술작품을 감상할 수도 있다.

     

     

     

     

     

     

     

     

     

     

     

     

     

     

     

     

     

     

     

     

     

     

     

     

     

     

     

     

     

     

     

     

    이병희선생상(李秉禧先生像)

     

     

    이병희 선생의 생애를 기린다

     

    열정이 없는 사람은 선인도 악인도 되지 않는다.

     

    수원의 역사에서 한 시대를 꿰뚫어 본 정치인, 그는 수원사랑의 열정으로 생애를 일관한 이병희 선생이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격동으로 점철된 청. 장년기 오직 선생은 수원의 미래와 영광을 위해 전신을 투구했다.

     

    지역사회의 밝은 내일을 위해서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구심점이자 원동력인 경기도청을 유치했고,

     

    국민은 배고픔을 면해야 하늘을 안다는 궁핍과 곤궁의 시절, 선생은 정치가다운 소신과 선구자적 신념으로

     

    삼성전자 선경합섬을 이곳에 정착시킴으로서 수원사회의 경제적 기반을 구축했다.

     

    또한 선생은 문화역량은 곧 국력에 결집됨을 통감하고 황폐에 이른 화성(華城)을 복원,

     

    수원을 효원의 도시로 가꾸는데 그에게 주어진 역량을 다했다.

     

    그밖에도 교육환경개선  체육인양성은 선생이 평생사업으로 주도해 온 결실이었다.

     

    장부의 한평생은 포부를 실현하는 멀고도 긴 대장정이다.

     

    풍요롭고 활기찬 문화역량의 물결로 충만된 수원사회의 건설, 이 것이 인간 이병희 선생의 포부였다.

     

    할일은 많았고 인생은 짧았던 이병희 선생.

     

    무엇이 그로 하여금 수원사회를 탈바꿈시키는데 주도적 역할을 담당하도록 하였는가,

     

    그것은 수원시민의 소리없는 성원이었고,

     

    바로 오늘의 수원이 다 지워지지 않는 그의 발자국 수원시민의 자랑이었기에 가능했다.

     

    여기 그를 아끼고 사랑했던 모든 사람의 정성을 모아

     

    그 뜻을 기리는 것은 수원시민의 자긍심이요, 문화역량이다.

     

    역사의 지평선 수 없이 세워진 이정표 이것은 선각자의 고독한 발길을 기리는 한조각 돌 일뿐

     

    그것을 의미하는 마음속에 역사는 밝은 내일을 기약한다.

     

    서기 2000년 5월 19일 시인 김훈동 짓고 도양 김병학 쓰다.

     

     

     

     

     

    이병희(李秉禧) 약력 1926  8. 1 경기도 용인 출생,

     

    1941~1946 수원 삼일중학교 졸업,1948~1949 육군사관학교 8기 졸업

     

    1953~1957 경희대학교 정외과 졸업, 1963~1996 제6, 7, 8, 9.10,13,15대 국회의원(민선 7선),

     

     

    1967~1968 국회 운영위원회 위원장, 1967~1972 민주공화당 중앙위원회 의장

     

     

    1971~1975 정무담당 무임소장관(제1무임소장관), 1971~1980 한. 일 의원연맹 창설 및 간사장

     

     

    1963~1967 경기도청 유치추진위원장, 1954~ 대한농구협회장, 1972~1988 아세아농구연맹회장

     

     

     

     

     

     

     

     

     

     

     

     

     

     

     

     

     

     

     

     

     

     

     

     

     

     

     

     

     

     

    만석공원의 영화정(迎華亭), 교구정(交龜亭)

     

    영화정(迎華亭)은 원래는 만석거의 남쪽 언덕에 자리하고 있었으나,

    옛날에 없어지고 만석 공원을 조성하면서

    원래의 위치에서 동북쪽으로 약 200m를 옮겨 복원시켰다.

    정자는 대략 8칸인데 북쪽으로 세로로 2칸이 온돌이고, 남쪽으로 세로로 2칸은 포판인데,

    3면과 온돌 뒤쪽은 모두 퇴를 반간씩 달고 하엽 난간으로 두르고 있다.

    온돌 4면은 모두 쇄창 장자(刷窓障子)를 들였다.

    단확은 5토(土)를 썼고 정자 서쪽에는 대문을 내고 남쪽으로는 작은 문을 냈는데 둘레는 네모꼴 단장이다.

    병진년(1796) 행차시 영화정이란 편액을 달도록 했다고 한다.

    영화정이 건립된 후 진목정에서 행해 지던 신구 유수끼리의 거북이 모양의 관인을 인계인수 하고

    업무를 시작한 교구(交龜)의식은 이 곳으로 옮겨진 듯하다.

    현재의 영화정(迎華亭)은 만석거를 공원화하면서 1996년 10월에 건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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