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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명(金重明)과 호랑이일상생활속에서/작품속으로 2015. 8. 10. 22:30
김중명(金重明)과 호랑이
김중명(金重明, 1614~1685)은 청풍 김씨로 자는 이회(而晦)였다.
아버지 김전(金㙉)은 병자호란(丙子胡亂) 당시 빙고(氷庫)의 별제(別提) 벼슬을 지내던 사람으로
남한산성(南漢山城)으로 임금을 문안하려고 급히 가던 길에
청병(淸兵)을 만나 싸우다가 장열하게 전사했으며, 호조참판(戶曹參判)을 추증 받았다.
그때 중명은 부친의 시신을 메고 양주(楊州) 금촌(金村)까지 가서 장사(葬事)를 지냈다.
그 후 인조 을유년(乙酉年) 무과(武科)에 올라 선전관(宣傳官)에 발탁되었으며,
과거에 급제한 후 성묘갔던 길에 묘 뒤에 숨어있던 큰 호랑이를 만나게 되었다.
따라온 사람들이 혼비백산(魂飛魄散)하여 감히 앞으로 나가지 못하자 중명이 말에서 내려 고함을 크게 지르며
곧장 나아가 발로 그 호랑이를 차서 죽여 버리니 그 용맹에 탄복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효종이 중명의 힘을 시험해보려고 부르자, 중명은 모래흙 세 포대를 가져다 양쪽 겨드랑이에 한 포씩 끼고
나머지 한 포는 등에 지고 대궐 밖에서부터 전각까지 걸어오니 임금이 매우 장하게 여겼다.
날로 총애가 깊어진 중명은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라는 벼슬까지 받게 되었으나
효종임금이 기해년 승하하자 팔뚝을 어루만지며 “나의 일은 이제 모두 끝났구나!”라고 크게 울부짖더니
결국은 청풍고을의 백치로 물러나 살다가 생을 마쳤다.
출처 : “매산집”(조선문신 홍직필(1776~1852)의 유고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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