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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장공 신립장군(忠壯公 申砬將軍)과 팔천고혼 위령탑(八千孤魂 慰靈塔)국내 나들이/탑(塔) 2015. 8. 21. 05:30
충장공 신립장군(忠壯公 申砬將軍)과 팔천고혼 위령탑(八千孤魂 慰靈塔)
이 탑은 1592년 4월 28일(음력) 도순변사 휘하 장졸 8천여명과 함께 이곳 탄금대(彈琴臺)에서 배수진을 치고
나라를 수호하고자 왜적을 맞아 싸우다가 장렬하게 전사(戰死)한 전적지임을 기리기 위한 위령탑이다.
탑 상단에 형상화 된 혼불은 산화한 영령들을 추모하는 모습으로 조국을 지키는 수호신을 의미하고,
아래 부분의 신립장군과 4인의 군상은 죽음으로써 국토를 지키는 불굴의 충정을 나타내고 있다.
또 바위와 바닥부분의 원반모양은 탄금대를 싸고도는 남한강과 달천의 물결모양을 살려 구성한 것이며,
탑 뒷부분의 부조(浮彫)는 당시의 탄금대 전투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도록 표현하였다.
신립장군(申砬將軍, 1546~1592)
신립장군은 조선명종 1년(1546)에 생원 화국(華國)의 아들로 출생하여
선조조의 무장으로서 임진왜란(1592)때 충주에서 순국하였다.
선조 원년(1567)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을 거쳐 도총부도사 경력을 지내고 진주판관이 되었다.
선조 16년(1583)문성부사가 되어 북변에 침입해 온 여진족 니탕개(尼湯介)를 격퇴하고 두만강을 건너가
야인들의 소굴을 소탕하고 돌아와 그 전공으로 함경도 북병사에 승진하고 얼마 뒤에 니탕개를 투멸하였다.
그 후 선조 20년(1587) 흥양에 왜구가 침입하니 경상우 방어사가 되어 군사를 인솔하여 토벌하기도 하였다.
선조 23년(1590) 평안도병마절도사, 선조 24년(1591) 한성부판윤,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 삼도 도순변사가 되어
빈약한 병력으로 출진 하여 충주탄금대에 배수진을 치고 적군과 대결했으나 참패하여 김여물과 함께 물에 투신 순국하였다.
훗날 영의정에 추증되고 충장(忠壯)이라는 시호(諡號)가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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