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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주 탄금대(忠州 彈琴臺)-명승 제42호
    국내 나들이/명승(名勝) 2015. 8. 31. 06:00

     

    충주 탄금대(忠州 彈琴臺)-명승 제42호

     

    탄금대(彈琴臺)는 해발 108m 정도의 야트막한 산(대문산, 大門山 또는 견문산, 犬門山)에 위치하며

    남한강(南漢江)과 달천(達川)이 합류되는 지점(합수머리)에 자리하고 있다.

    탄금대라는 명칭은 신라 진흥왕(新羅 眞興王)때 3대 악성(樂聖)의 한분인

    우륵선생(于勒先生)이 가야금(伽倻琴)을 연주(演奏)한데서 유래하였다.

    우륵선생은 원래 가야국(伽倻國) 사람이었는데 신라 진흥왕이 가야지역을 차지한 후

    사민정책에 따라 충주로 이주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조선시대 선조(宣祖) 25년(1592년) 4월 임진왜란(壬辰倭亂)시 신립장군(申砬將軍)은

    탄금대에서 8천여명의 병사들과 배수진을 치고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 군대에 맞서 싸우다

    장렬(壯烈)하게 전사(戰死)한 옛 전쟁터이기도 하다.

    탄금대는 산세가 평탄하면서도 기암절벽에 소나무 숲이 우거져서 경관이 아름다워 명승 제42호로 지정되었다.

    탄금정 인근에는 고대(古代) 토성(土城)의 흔적(痕迹)이 남아있으며,

    탄금대 뒷편에는 ‘열두대’라고 부르는 기암절벽이 있는데, 열두대의 이름은 두가지 유래가 있다.

    그  하나는 우륵이 탄주했던 가야금이 12줄 이기에 붙여진 이름이라 하고,

    다른 하나는 임진왜란 때 신립 장군이 탄금대 강가인 남한강에 배수진을 치고

    활을 산더미처럼 쌓아두고서 번개처럼 활시위에 화살을 당겨 활이 뜨거워지자, 

    이 암벽을 열두 번이나 오르내리며 물에 활을 식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이 있다. 

    현재 탄금대에는 그들의 넋을 기리는 팔천고혼위령탑과 신립장군 사당이 세워져 있다.

     

    충북 충주시 탄금대안길 (칠금동)

     

     

     

     

     

     

     

     

     

     

     

     

     

     

     

     

     

     

     

     

     

     

     

     

     

     

     

     

    탄금대기(彈琴臺記)

     

    이 비(碑)는 충주(忠州)의 역사(歷史), 지리(地理), 인물(人物) 그리고 자연환경(自然環境)을 예찬(禮讚)한 내용으로

    충주는 국토(國土)의 중앙부에 위치하고 남한강(南漢江)과 달천(達川)이 만나는 곳으로

    땅이 비옥(肥沃)하고 교통의 요충지로서 삼국시대부터 이곳을 차지하기 위하여 패권(覇權)을 다투었으며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뒤에는 중원소경(中原小京)을 설치 예부터 중요하게 여겨져 왔다.

    또한 청풍명월(淸風明月)의 고장으로 악성(樂聖) 우륵(于勒)의 가야금(伽倻琴) 율조(律調)가 면면히 이어져오고

    문장가(文章家) 임강수, 명필(名筆) 김생과 함께 이 고장 문화예술을 꽃 피웠으며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신립장군(申砬將軍)과

    병자호란(丙子胡亂) 때 임경업장군(林慶業將軍)의 얼이 서린 충절(忠節)의 고장이다.

    이와같이 과거(過去)의 영화(榮華)로움을 바탕으로 인재가 모이고 문화의 원천(源泉)이 될 축복받는 고장이 되기 위하여

    이지역 주민의 부단한 노력과 정진(精進)이 있어야 하겠다는 교훈을 준 내용으로 육당 최남선선생(六堂 崔南善 先生)이 글을 짓고

    일중(一中) 김충현 선생이 쓴 높이 183cm, 폭 66cm, 두께 34cm의 화강석 비석(碑石)으로 1953년에 건립하였다.

     

     

    탄금정(彈琴亭)

    2층 누각형태인 탄금정은 사방을 조망할 수 있는 정자로 본래 충주관아 내 연못에 천운정이란 정자가 있던 것을 사직산에 이건되었다가,

    1955년 다시 이 자리로 이건되었는데, 목조로 된 정자가 낡고 헐어 지금 이 정자를 건립하게 되었다.

     

     

    신립장군순국지

     

     

     

    강쪽으로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탄금대에서도 가장 절경인 열두대에 이른다.

     

     

     

     

     

     

     

     

     

     

    우륵선생(于勒先生)의 탄금대(彈琴臺)

     

    이곳 탄금대(彈琴臺)는 신라 진흥왕(新羅 眞興王, 551년) 때

    당대의 악성(樂聖) 우륵선생(于勒先生)이 가야금(伽倻琴)을 탄주(彈奏)하면서 음악을 연마하던 곳이다.

    선생은 원래 가야국(伽倻國) 사람으로 가야금을 만들고 12곡을 지었으며 신라에 귀화(歸化)하여

    왕의 배려로 국원(國原 忠州)에 살면서 계고(階古)에게는 가야금을, 법지(法知)에게는 노래를,

    만덕(萬德)에게는 춤을 가르쳤으며 이때 가야금곡이 궁중악(宮中樂)으로 되었다.

     

     

     

     

     

     

     

     

    탄금대 대흥사(彈琴臺 大興寺)

    탄금대 대흥사는 태고종 소속의 사찰로 1956년에 지는 것으로,

    이곳은 원래 신라 진흥왕 때 용흥사라는 절이 있었는데, 거란족의 침략을 받아 소실되었다고 한다.

    대흥사에는 대웅전과 산신각, 범종각, 용사채 등이 있다.

     

     

     

    양한 누드조각상

     

     

     

     

     

     

     

    임란충신백기장군조태기적비(壬亂忠臣白旗將軍趙態記績碑)

     

     

    악성우륵선생추모비(樂聖于勒先生追慕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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