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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러시아 "연해주 신한촌(沿海州 新韓村)" - 블라디보스토크
    해외 나들이/러시아(俄羅斯) 2015. 9. 22. 06:30

     

    러시아 "연해주 신한촌(沿海州 新韓村)"-블라디보스토크

     

     

     

     

    1910년 한일합방을 전후하여 해외독립운동기지로 주목을 받던 두 마을이 있었다.

     

    그 하나는 만주의 명동촌이고, 다른 하나는 연해주의 신한촌이다.

     

    이 두 마을은 각기 만주와 연해주에서 이주한인들의 정신적 의지처로서 교육·문화·언론·정보의 중심지였으며, 독립운동의 요람이었다.

     

    신한촌(新韓村)의 유래를 살펴보면 1863년 13호의 한인들이 연추(煙秋)의 지신헤로 이주한 이래 뒤이어 이주해간 한인들은

     

    연해주 동남부 지역, 포시에트 빨디산스크(水淸), 우수리스크(蘇王領), 블라디보스토크(海參威) 등지로 마을을 형성하여 정착했다.

     

    이들 중 1874년 블라디보스토크시에 한인촌이 형성되었 는데 새 땅을 개척한다는 의미를 부여하여 개척리(開拓里)라고 불렀다.

     

    그 위치는 블라디보스토크 서남쪽 아무르만 변, 시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었으며 마을 형성 초기에는 한옥식 초가 몇 채가 있었다.

     

    블라디보스토크시의 규 모가 커지고 현대적 도시로 면모를 갖추어가면서 거기에 따르는 도시 근로자의 수요가 늘어나게 되자

     

    이에 편승, 한인수가 증가하여 1911년 이 마을 이 폐쇄될 때는 400∼500호에 달했다.

     

    러시아당국은 개척리를 그들의 기마병 영지로 책정하면서

     

    겉으로는 한인촌에 만연된 콜레라를 근절한다는 이유를 앞세워 한인들을 강제 철거시켰다.

     

    러시아당국의 명령에 따라 새로 옮겨간 곳이 블라디보스토크시 외곽의 변두리였는데

     

    새로운 한인의 마을이란 뜻으로 신한촌(新韓村)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연해주 신한촌 기념탑문(沿海州 新韓村 記念塔文)

     

     

     

     

    민족의 최고 가치는 독립이다. 이를 수호하기 위한 투쟁은 민족적 선정이며 청사에 빛난다.

     

     

    신한촌은 그 성전의 요람으로 선열들의 얼과 넋이 깃들고 한 민족의 피와 땀이 어려 있는 곳이다.

     

     

    1910년 일본에 의하여 국권이 침략 당하자 국내외의 지식인들은 신한촌에 결집하여 국권회복을 위해 필사의 결의를 다졌다.

     

     

    성명회와 권업회 결성, 한민학교 설립, 신문발간, 13도의 군 창설 등으로 민족역량을 배양하였고,

     

     

    1919년에는 망명정부(대한국민회의)를 수립하여 대일 항쟁의 의지를 불태웠다.

     

     

    그러나 한민족은 1937년 불행하게도 중앙아시아에 흩어지게 되고 신한촌은 폐허가 되었다.

     

     

    이에 해외한민족연구소는 3.1독립선언 80주년을 맞아 선열들의 숭고한 넋을 기리고

     

     

    재러 중앙아시아 고려인들의 마음에 상처를 위로하며 후손들에게 역사인식을 일깨워 주기 위하여 이 기념탑을 세우다.

     

     

     

    19998월 15일  한국 사단법인 해외한민족연구소

     

     

    건립기

     

    이곳 신한촌은 독립운동의 요람일 뿐 아니라 교육, 언론, 문화의 중심지로서

    지금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50만 한민족의 근원지이며 마음의 고향이다.

    그러나 신한촌이 형성된지 100여년, 그리고 중앙아시아로 흩어진지 60여 년이 지나도록 기념물 하나 없이

    역사의 뒤편으로 잊혀져 가고 있어 믾은 사람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하였다.

    이에 해외한민족연구소에서 적극적으로 주선하여 정유리 러시아고려연방회장, 이웨채스라브 블라디보스토크회장의 노력과

    중앙아시아 전 고려인의 정성이 모아지고 러시아 당국의 협조에 힘입어 한국의 전국경제인연합회에서 협찬하고

    (주)백미산업 이인기사장이 건립비를 부담하여 이 탑을 세우게 되었다.

     

    1999년 8월 15일 한국 사단법인 해외한민족연구소

    이사장: 손세일, 소장: 이윤기, 임원: 김낙준, 김도현, 김성규, 김원기, 김중구, 김호진, 김희형,

    박관용, 박정수, 심영수, 이민열, 이만우, 이수종, 이우석, 이인기, 이종진, 조규대, 조동춘, 조이방, 조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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