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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군 참전기념비국내 나들이/안보 현장(安保 現場) 2015. 9. 23. 23:30
필리핀군 참전기념비
건립연월일: 1974년 10월 2일 건립자: 국방부
현황: 기단높이 4.5m, 비높이 17m, 조각동상높이 3m, 면적: 1,200평
모형: 높이 솟은 탑신은 으로부터 정삼각형 구도 형식을 빌어 전체적 통일성과 안정감을 살리면서 꼬리를 감추듯 휘어지게 처리한 것은
탑신 상단부와 하단부를 한 덩어리로 보았을 때 느낄 수 있는 곡선미를 강조하기 위한 모형임.
부조에 조각된 50명의 모습과 표정은 절망과 좌절을 딛고 일어난 우리 국민의 자유와 평화를 추구하는 모습이며
탑신 전면의 부조는 필리핀 고유 민속 문화를 표현한 것임.
건립개요: 1950년 6월 25일 북한공산괴뢰집단의 불법 기습남침시 필리핀군은 한국의 안전과 자유수호를 위하여
1950년 9월 19일 참전하여 많은 전과를 거두었음.
이를 기리고 산화한 영령들의 넋을 위로하고 후손에게 그 뜻을 전하기 위하여 이 비를 세움.
전과: 1.496명의 병력이 전투에 참여하여 왜관, 김천, 대구, 임진강변, 철원지구 전투 등에서 많은 전과를 세웠음.
○ 전사자 448명(사망 92명, 부상 299명, 실종 57명)
=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관산동 97-6 =
필리핀군 참전기념비
MONUMENT DEDICATED TO THE PHILIPPLNE ARMED FORCES IN THE KOREAN WAR
당시 필리핀은 독립 이후 줄곧 공산 반란군과 교전상태에 있어 국내정세가 매우 불안했다.
그럼에도 필리핀 정부는 유엔이 한국에 대한 군사원조를 결의하자 전차 17대를 포함한 5000명 규모의 1개 연대 전투단 파견을 통보한다.
그리고 최강 전력을 보유한 제10대대 전투단을 파견키로 하고, 이들을 실은 수송선이 1950년 9월 15일 마닐라 항을 출발했다.
20일 부산항에 도착한 필리핀 대대는 시민들의 환영 속에 미국·영국에 이어 세 번째 지상군 참전국이 됐다.
10여 일의 적응훈련을 마친 필리핀 대대는 미 제25사단에 배속돼 10월 11일 사천으로 이동,
비행장 경비임무를 시작으로 6·25전쟁에 참전하게 된다.
이후 유엔군이 북진을 시작하자 대대는 평양에 진출해 개성~평양 간 주보급로 경계작전을 수행하며 북한군 게릴라를 소탕했다.
1951년 4월 22일 경기 연천 북방 율동리에서 중공군 34사단을 맞아 끝까지 진지를 고수하며
인접 부대의 철수를 성공적으로 엄호하고, 유엔군사령부의 명령에 따라 후방으로 철수했다.
이 전투는 필리핀군이 치른 가장 큰 전투로 이를 기념하기 위해
1966년 4월 22일 유엔 한국참전국협회와 연천군이 연천읍 상리에 필리핀 참전비를 세운 바 있다.
이 외에도 중공군 전초인 191 고지에서 백병전으로 적을 격퇴한 아스널-이리고지 전투와
미 제34사단의 크리스마스고지 전투를 지원하며 벌인 백석산-크리스마스고지 전투 등 필리핀은 모두 7420여 명의 전투병을 파병해
전사 116명, 실종 16명, 부상 299명의 적지 않은 희생자를 내면서 한반도 평화를 지켜낸 전통적 우방이다.
당시 장교로 참전했던 피델 발데스 라모스(Fidel Valdez Ramos)는 이후 대장까지 진급했으며,
1992년~1998년까지 필리핀 대통령을 역임하기도 했다.
태양같이 밝고 불타는 정열의 기상을 지닌 삼성좌의 용사들!
한국의 평화와 자유를 위해 피 흘린 488명의 고귀한 영혼 위에 하나님의 가호가 영원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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