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산생태공원(茶山生態公園)과 다산의 생애국내 나들이/공원(公園)으로 2015. 11. 13. 05:30
다산생태공원(茶山生態公園)과 다산의 생애
남양주 다산유적지 인근에 위치한 다산생태공원은 남한강과 북한강이 합수하는 곳에
약 3만5000㎡ 일대에 갈대 군락지, 수변 광장, 간이 선착장, 생태 탐방로, 팔당호 전망대 등을 조성해
산책하면서 다산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힐링공간이다.
=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 =
다산생태공원에 세워놓은 다산 정약용 선생의 생애(연도와 연령별)을 기록한 안내판
1762년(1살)
남양주 마재마을에서 태어나다.
1768년(7살)
4살 때에 천자문을 배우기 시작하고 7살 때부터 시를 지어 '신동'으로 이름을 날리다.
1777년(16살)
성호 이익의 「성호집」을 읽고 실학자가 되기로 마음먹다.
1783년(22살)
성균관에 들어가 정조임금을 뵙다. 정약용의 학문과 사람됨을 알아본 정조가 그를 매우 총애하다.
1784년(23살)
친구 이벽과 서학(서양학문)에 대해 토론하고, 큰 충격을 받다.
1789년(28살)
정조임금의 아버비(사도세자) 묘소에 참배하러 가기 편리하도록
한강에 배다리(배들을 나란히 엮어 강을 건널 수 있게 만든 다리)를 설계하다
1792년(31살)
거중기를 이용하여 화성을 쌓다. 공사비 4만냥을 아껴 백성들의 칭송을 받다.
1794년(33살)
경기도의 암행어사가 되어 고통받는 백성들을 위해 탐관오리들을 잡아내다.
1799년(38살)
형조참의가 되어, 과학수사관으로 활약하다.
1801년(40살)
신유박해 때 모함에 빠져 모진 고문을 받고, 전라남도 강진으로 귀양가다.
1801년~1818년(40~57살)
강진에서의 귀양 생활
제자를 가르치고, 학문을 연구하며, 국가 개혁을 주장하는 책을 펴내다.
1882년(61살)
스스로 묘지명 (자신의 일생을 정리한 글)을 짓고, 여유당집 500권을 펴내다.
1836년(75살)
결혼한지 60년 되는 날에 고향 마재에서 눈을 감다.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의 저서(著書)
대동수경(大東水經): 압록강, 청천강, 대동강 등 임진강 이북 북한 지방의 강과 하천을 지리와 함께 상세히 수록한 지리서.(1814년)
맹자요의(孟子要義): 정약용이 “맹자” 260장중 153장을 초록하고 이에 대한 실천적 실용적 입장에서 재해석한 저서.(1814년)
경세유표(經世遺表): 중국의 주례를 바탕으로 우리나라 국가 체제를 전면적으로 개혁하기 위해 쓴 다산의 국가개혁론,
처음 이름은 방례초본(邦禮草本).(1817년)
제례고정(祭禮考定): 우리나라의 제사 지내는 방법을 옛날의 경전을 토대로 고증하여 정리한 책.(1808년)
악서고존(樂書孤存): 악지(樂志), 성률의 제작 이동, 연혁, 오류 등에 대하여, 그리고 편종(編鐘), 편경(編磬), 금(琴),
슬(瑟), 생(笙), 적(笛) 등 악기에 이르기까지 고문헌을 인용, 조사, 서술한 음악이론서.(1816년)
도산사숙록(陶山私淑錄): 정약용이 이황(李滉)의 편지글들을 읽고 깨달은 내용을 기록하여 엮은 글.(1795년)
목민심서(牧民心書): 정약용이 지방 수령(守令)들이 군현을 통치할 때 가져야 할 몸가짐,
애민정신과 업무처리 지침을 육전 체제로 자세히 제시한 목민서.(1818년)
기중가도설(起重架陶說): 기중도설, 수원 화성(華城)의 축성공사에 사용하기 위해
정약용이 제안하였던 기중기의 제도에 대한 그림과 내용을 수록한 도설.(1792년)
춘추성언수(春秋聖言蒐): 춘추삼전(春秋三傳)과 국어(國語)에 실린 공자의 언행 63장을 모아 놓은 자료.
논어고금주의 부록으로 실려 있음.
춘추고징(春秋孤徵): 정약용이 “춘추(春秋)”에서 오례(五禮)를 고증하여 설명한 예서.(1812년)
3384 '국내 나들이 > 공원(公園)으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배미꾸미조각공원 (0) 2016.03.05 부천자연생태공원 (0) 2015.12.28 수인선 세류공원(水仁線 細柳公園) (0) 2015.11.02 연암(燕巖) 물레방아공원 (0) 2015.10.31 매탄공원(梅灘公園)의 가을 (0) 2015.10.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