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담양 식영정일원(潭陽息影亭一圓), 부용당(芙蓉堂)과 성산사(星山祠)
    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16. 6. 1. 06:19

    담양 식영정일원(潭陽息影亭一圓), 부용당(芙蓉堂)과 성산사(星山祠)


    부용당(芙蓉堂)
    김성원(金成遠, 1525~1597)이 살고 있던 서하당(棲霞堂) 곁에 연꽃을 심어 놓은 연못이 있는 정자로,

    부용단 사각형의 연못은 선비들의 각진 절도있는 생활을 상징하고 있다.

    서하당 김성원이 거처하던 서하당의 별당 누각으로 정면 1칸, 측면 2칸으로 1칸은 방이고,

    1칸은 마루로 되어있으며, 지금의 목조 건축물은 1972년에 복원되었다.

    부용당은 석조 기둥이 2개가 연지에 잠겨 놓아 운치를 더하고 있다.

    지방수령으로 재직시에는 풍습을 바로잡고 교육을 진흥시켰으며,

    사사로운 일에는 청렴하여 집안에 가재도구가 거의 없었으나

    그 상상의 자유를 만끽했던 백록白麓 신응시(辛應時, 1532~1585)가

    전라도관찰사 전라순무어사로 재직시 들려서 지었던 부용당이라는 제목의 시를 부용당의 아름다움을 노래했다.


    芙蓉堂(부용당)   -辛應時-

    金梭織柳晩鶯呼(금사직류만앵호)     버들장막 깊은 속 꾀꼬리 울어

    驚起西床客夢孤(경기서상객몽고)     나그네 외로운 꿈 놀라 깨었네,

    一霎荷塘山雨過(일삽하당산우과)     삽시간 연당 앞 비가 지나며

    乍看銀竹雙明珠(사간은죽쌍명주)     연잎 위 방울방울 구슬 맺었네.



    성산사(星山祠)
    성산사(星山祠)는 처음에 식영정 뒤에 지은 사당이다.
    임석천의 후손에게서 식영정을 인수한 소은 정민하(字 達夫)는 이곳에서 소가(簫歌)로 노년을 보냈는데

    그의 후손들은 이곳을 아끼고 사랑했던 선비들을 제향(祭享)하기 위해 성산사를 세웠다.
    사당(祠堂)에는 서하당 김성원(棲霞堂 金成遠 1525-1597), 기암 정홍명(畸庵 鄭弘溟 1582-1650),

    계곡 장유(谿谷 張維 1587-1638), 서창 조흡(曙窓 趙흡 1591-1661), 삼연 김창흡(三淵 金昌翕 1653∼1722),

    소은 정민하(簫隱 鄭敏河 1671-1754)와 계당 정 근(溪堂 鄭 根 1691-1756) 등 7인을 병향(幷享)하였다.

    그런데 이 성산사가 1851년 조선 철종(哲宗) 신해(辛亥)에 일어난 산 사태로 허물어지고 말았다.
    식영정의 주인은 소은 정민하 이후 그의 장손(長孫)들인 지실 계당(溪堂)의 주인들로 이어져서

    수산 정조원(壽山 鄭祚源 1815-1886)에 이르고 있었다.

    수산 정조원은 1861년에 자신의 7대조인 송강의 현손 수환 정흡(守環 鄭潝 1648-1709)이

    스스로 호를 수환이라 하고 지켰던 환벽당을 당시의 소유주였던 송씨에게서 인수했다.

    환벽당은 수환 정흡이후 자손들로 이어지다가 여러차례 소유주가 바뀌어 당시는 송씨가 소유하고 있었다.

    수산은 환벽당 조차 인수하여 식영정과 환벽당의 주인이 되자

    산 사태로 1851년에 허물어진 성산사를 안전한 환벽당 부근에 복원하였다.

    그런데 1868년에 고종을 섭정했던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이 내렸다. 성산사는 다시 훼철되고 말았던 것이다.
    이때는 열강들의 식민지 쟁탈전이 세계를 뜨겁게 달구던 시기였다.

    그런데 조선은 날로 쇠퇴하여 마침내 1910년 8월 29일은 일본의 강제병합(强制倂合)으로

    나라를 잃는 경술국치(庚戌國恥)의 날을 맞았다.

    그 후 일제 식민지배  36년만에 세계 제2차대전의 종식으로 1945년 해방을 맞았다.

    외세에 의한 해방으로 나라는 38선을 두고 남북으로 갈리는 민족 분단의 비극을 당했다.

    이 비극중에 동족상잔의 1950년 6.25전란이 일어났고 수백만명의 백성들이 희생당하는 수난의 세월을 보냈다.

     그리고 50년, 우리나라는 전쟁의 잿더미 속에서도 기적같은 경제성장을 이루었고,

    군사독제를 무너뜨리고 괄목할 만한 민주화를 이루어 냈다.

    나라가 경제성장으로 살아나기 시작하자 점차 문화유산들을 챙기는 여유를 가지게 되면서

    성산사도 이제는 자치단체에서 챙겨 복원하기에 이르렀다.
    담양군에서는 16세기 중엽 조선시대에 성산별곡(星山別曲)의 무대였으며 가사문학을 꽃피웠던

    식영정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400여년 이곳 문화유산들을 사랑하고 아끼며 지켜왔던 사람들의

    흔적을 기리기 위해  2005년 성산사를 복원하였다.





    芙蓉塘(부용당) - 정철(鄭澈)

    龍若閟玆水(용약비자수)   용이 이 물에 숨어서 나오지 않는다면

    如今應噬臍(여금응서제)   이제 와선 응당 후회할 것을.

    芙蓉爛紅白(부용란홍백)   연꽃이 붉고 희게 흐드러졌느니

    車馬簇前溪(거마족전계)   車馬가 시내 앞에 모여드네.

























    한국가사문학관 주변에 위치한 목포밥상  한정식집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