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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산 동헌(礪山 東軒)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16. 8. 12. 05:30
여산 동헌(礪山 東軒)
이 건물은 조선시대 여산 고을의 수령이 업무를 보던 청사이다.
이 건물은 3단의 계단식 건물 터 제일 상단부에 들어서 있는데, 조선시대 말기에 건축한 것으로 보인다.
벽과 방의 구조는 근래 일부 개조하여 본 모습은 잃었지만, 비교적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다.
특히 추녀와 대청마루에서 한식 목조 건물의 전형적인 아름다움이 잘 드러난다.
여산동헌은 전국적으로 그리 많이 남아있지 않은, 옛 모습을 간직한 조선시대 지방관청 건물의 하나이다.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93호(1980년 3월 8일 지정)
= 전라북도 익산시 여산면 동헌길 13 (여산리) =
여산 동헌 느티나무(礪山 東軒 槐木)
이 느티나무의 유래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정확한 내용은 알 수 없다.다만 여산동헌과 주변에 7주의 대형 느티나무가 집중 분포되어 있음에 따라
동헌의 설치와 어느 정도 연간이 있을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여산은 전주에 속해 있다가 공양왕 3년(1391) 감무를 두고 낭산과 공촌, 파제 두 부곡의 권농사까지 겸임하였고,조선 태종 2년(1402)에 여산현이라 하고, 세종 18년(1436)에는 원경왕후의 외향이라 하여 군으로 승격되었다고 함으로
조선 태종대에서 세종대에 동헌이 설치되는 과정에서 식재되었을 것으로 보여 수령은 600년 정도로 추정된다.
나무의 휴고 둘레는 4.5m, 높이는 22m이다.
전라북도 기념물 제116호 (2002년 8월 2일 지정)
여산척화비(礪山斥和碑)
소재/출토지 : 익산시 여산면 여산리 445-2 (여산동헌內)
익산시향토유적 제7호(2002년 5월 30일 지정)길이 4자 5치, 너비 1자 5치, 두께 8치 5푼. 재료 화강석. 1871년 건립.
비석 표면에 “洋夷侵犯 非戰則和 主和賣國(양이침범 비전즉화 주화매국: 서양 오랑캐가 침입하는데,
싸우지 않으면 화친하자는 것이니, 화친을 주장함은 나라를 파는 것이다)”라는 주문(主文)을 큰 글자로 새기고,
“戒我萬年子孫 丙寅作 辛未立(계아만년자손 병인작 신미립: 우리들의 만대자손에게 경계하노라.
병인년에 짓고 신미년에 세우다)”라고 작은 글자로 새겼다.
이 비는 1866년(고종 3)의 병인양요(丙寅洋擾)와 1871년의 신미양요(辛未洋擾)를 치른 뒤 대원군이 쇄국의 결의를 굳히고
온 국민에게 외세의 침입을 경계하기 위해 1871년 4월을 기해 서울을 비롯하여 전국의 요소에 세운 것이다.
그러나 1882년(고종 19) 임오군란(壬午軍亂)으로 대원군이 청나라로 납치되어가고, 개국을 하게 되자 철거하거나 파묻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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