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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함월산 기림사(含月山 祈林寺)
    국내 나들이/사찰(寺刹), 불교(佛敎) 2016. 8. 13. 04:30

    함월산 기림사(含月山 祈林寺)


    기림사(祇林寺)는 경주시 양북면 기림로 함월산 기슭에 있는 사찰로 643(신라 경덕여왕12)에 창건되었다.

    이 사찰은 불국사보다 앞서 지어진 가람으로 한때는 불국사를 말사로 거느릴 정도의 큰 대찰이었다.

    기림사는 천축국(天竺國, 인도)에서 온 광유성인(光有聖人)이 창건해 임정사(林井寺)라 불렸다.

    그 후 선덕여왕(善德女王) 12년(643)에 원효대사(元曉大師)가 사찰을 크게  확장하면서 현재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이때에 이미 대적광전(大寂光殿)을 건립해 삼신여래(三神如來)를 봉안했고,

    동쪽에는 약사여래(藥師如來)를 모신 약사전(藥師殿)을 건립했다.

    그리고 서쪽에는 삼층목탑(三層木塔)과 정광여래사리각(定光如來舍利閣)을, 남쪽에는 무량수전과 진남루를 건립했다.

    그러나 사리각은 없어지고 삼층목탑은 그 터만 남아 있다.


    = 경북 경주시 양북면 호암리 =


    기림사 일주문(祇林寺 一柱門)


    일주문(一柱門)은 산문(山門)이라고도 하는데, 산사 초입(初入)에 만나게 되는 문으로 절 이름이 적힌 현판이 걸려 있다.

    일주문에 들어설 때는 오직 일심(一心)으로 불법에 귀의해야 하겠다는 마음을 다지며 이 곳을 기준으로 승(僧)과 속(俗),

    세간(世間)과 출세간(出世間), 생사윤회(生死輪廻)의 중생계(衆生界)와 열반적정(涅槃寂靜)의 불국토(佛國土)가 나누어지는 곳이다.
    열반적정(涅槃寂靜)이란? 열반(涅槃, 죽음)의 경지는 고요하고 청정하며 안정(安定)한 곳이라는 뜻으로 이르는 말이다.








    기림사 천왕문(祇林寺 天王門)


    봉황문이라고도 하며 본래 맑고 깨끗해야 할 부처님의 세계를 지키는 사천왕(四天王)을 모신 문이다.

    동쪽의 持國天王(지국천왕), 서쪽의 광목천왕(廣目天王), 남쪽의 증장천왕(增長天王),

    북쪽의 다문천왕(多聞天王)깨서 삼보(三寶)를 지키시는 문이다.

    나쁜 것을 깨 버리고 올바른 길을 펼치려는 마음을 일깨워 주고 있는데 그 뜻이 있다.

    지국천왕은 비파(琵琶)를 들고 증장천왕은 보검(寶劒)을 잡았으며,

    광목천왕은 용관, 여의주(如意珠), 또는 견색(絹索; 새끼줄)을,

    다문천왕은 보탑(寶塔)을 받쳐든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 보편적이다.

    대체로 이들 사천왕은 왼쪽에 동.남천왕, 오른쪽에 서.북천왕이 배치된다.

    이 사천왕들은 불교경전에 나타나는 인도 재래의 神(신)인데, 불교의 수호신이 되어서 사방을 지키게 된 것이다.

    일정한 모습이 처음부터 규정된 것이 아니어서 인도에서는 귀족의 모습으로 표현되었고

    중앙 아시아나 중국, 우리 나라로 전파되는 동안 무인상(無人像)으로 변형되었다.



    동쪽을 지키는 지국천왕(持國天王)과 남쪽을 지키는 증장천왕(增長天王)


    동방 지국천왕은 수미산 중턱의 동쪽 영역을 관장하는 천왕으로 "아쇼카왕경" 이나 "방등대집경" 에 의하면

    수미산을 다스리는 제석천 또는 부처님이 지국천왕으로 하여금 동방에서 불법을 지키라고 명령하였다고 하며

    그래서 지국천왕은 나라를 지키고 백성을 편하게 할것을 맹세하였다고 하는데 그 이름이 유래된 것이다.
    지국천왕이 가지고 있는 물건에 대해서는 경전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기림사 천왕문 지국천왕은 비파를 들고 있다.

    남쪽을 지키는 증장천왕은 수미산 중턱의 남쪽에 있는 "유리" 라는 지방을 관장하는 천왕으로

    법어로는 "Virudhaka" 라고 하며 자꾸 늘어 난다,

    확대 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한문으로 증장(增長)이라고 한다.
    만물을 소생시키는 능력을 갖춘 천왕으로 칼을 잡고 있다.




    서쪽을 지키는 광목천왕(廣目天王)과 북쪽을 지키는 다문천왕(多聞天王)


    광목(廣目)이란 눈이 커다랗다는 뜻으로 웅변으로 악귀를 물리치는 역할을 한다.
    광목천왕의 상징적 물건으로는 용이 등장하는데 용은 하늘에서 구름, 비, 천둥 등을 부리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또 다른 한손에는 여의주를 잡고 있다.

    다문천왕은 수미산 중턱 북방 영역을 관장하며 부처님의 설법을 가장 많이 들었다고 하는데서 그 이름이 유래 되었다고 한다.
    왼손에는 창을 오른손에는 불탑을 들고 있다.
    어둠속을 방황하는 중생을 제도한다는 뜻으로 얼굴이 검은색으로 표기되기도 한다.








    기림사 범종루(祇林寺 梵鐘樓)


    2층의 누각(樓閣)으로 되어 있을 때는 범종루라 하고,

    불전사물 가운데 범종만을 봉안하는 경우에는 범종각이라고 한다.

    이곳에 비치되는 사물은 모두 부처님에게 예배드릴 때 사용되는 불구로서,

    우리나라에서는 새벽예불과 사시공양(巳時供養), 저녁예불 때에 사용된다.
    이들은 소리로써 불음(佛音)을 전파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범종은 청정한 불사(佛寺)에서 쓰이는 맑은 소리의 종이라는 뜻이지만

    지옥의 중생을 향하여 불음을 전파하고, 홍고는 축생의 무리를 향하여, 운판은 허공을 나는 생명을 향하여,

    목어는 수중의 어류를 향하여 소리를 내보낸다는 상징적 기능을 가지고 있다.





    기림사 약사전(祇林寺 藥師殿) -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52호


    약사전은 약사여래를 모시고 있는 불당으로 세운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조선 효종 5년(1654)에 고쳐 세운 기록으로 보아 그 이전에 세웠음을 알 수 있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으로 꾸몄다.
    겉모습이 부드러우면서 균형이 잘 잡혀있는 건축물이다.


    약사불(藥師佛, Bhaisajyaguru)은 동방의 정유리세계(淨瑠璃世界)에 교주로 머물고 있는 부처를 말하며

    중생을 모든 병고에서 구하고, 무명(無明)의 고질까지도 치유하여 깨달음으로 인도한다.

    정식으로는 약사유리광여래(藥師瑠璃光如來)라고 번역하는데, 보통 약사여래 또는 약사불이라고 부른다.

    경전에서는 또 병을 고쳐주는 위대한 부처란 뜻으로 대의왕불(大醫王佛)이라고도 부르고 있다.

    이 부처는 과거보살로서 수행할 때에 12가지 서원(誓願)을 세웠는데, 이를 이른바 ‘약사십이대원(藥師十二大願)’이라고 한다.

    ① 내 몸과 남의 몸에 광명이 비치게 하려는 원, ② 위덕(威德)이 높아져 중생을 깨우치도록 하려는 원,

    ③ 중생이 바라는 바를 충족시켜 결핍하지 않게 하려는 원, ④ 중생으로 하여금 대승(大乘)의 가르침으로 돌아오게 하려는 원,

    ⑤ 중생으로 하여금 좋은 일만을 하여 삼취정계(三聚淨戒)를 다 갖추게 하려는 원, ⑥ 불구자의 모든 근(根)이 완전해지게 하려는 원,

    ⑦ 몸과 마음이 안락하여 무상보리(無上菩提)를 증득(證得)하려는 원, ⑧ 여인으로 하여금 남자로 태어나게 하려는 원,

    ⑨ 모든 유정(有情)들의 그릇된 소견을 없애고 부처의 바른 지견(知見)으로 포섭하려는 원,

    ⑩ 모든 중생을 나쁜 왕이나 강도 등의 핍박으로부터 구제하려는 원,

    ⑪ 모든 중생의 기갈(饑渴)을 면하여 배부르게 하려는 원, ⑫ 가난하여 의복이 없는 이에게 좋은 옷을 입게 하려는 원 등이다.






    기림사 응진전(祇林寺 應眞殿)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14

     

    정면 5, 측면 2칸의 다포계 단층 겹처마 맞배지붕건물.

     장대석 1벌을 놓아 기단(基壇)을 만들고, 그 위에 화강석 주초를 놓아 기초를 형성하였다.

    기둥은 앞뒷면에는 원기둥, 측면에는 각기둥을 세웠다.

    벽체와 창호의 구성을 보면, 정면 5칸 모두 칸마다 2짝 빗살문을 달았을 뿐

    측면과 배면에는 창호를 전혀 두지 않고 벽체로 처리하였으므로 내부는 몹시 어둡다.

    측면의 박공벽에는 널판을 창방(昌枋) 위치까지 늘어뜨렸으며,

    창방 이하의 벽체는 중방과 가운데 기둥에 의하여 4개로 분절되어 있다.

    배면의 벽체도 모두 칸마다 중방에 의하여 둘로 분절되어 있는데,

    벽면에는 모두 회칠을 하여 간결하고 짜임새있는 외관을 형성하고 있다.

    건물의 외부는 단청이 모두 벗겨져서 단아한 느낌을 주는 반면 내부에는 상벽과 포벽을 제외한

    모든 가구 부재에 화사하고 세밀한 문양의 단청이 베풀어져 있다.

    다만 최근에 보수한 듯한 서까래가 쉽게 눈에 띈다.

    공포는 안팎 이출목으로 앞뒤 면의 평방 위에 간포 1구씩이 설치되었으며,

    측면에는 평방도 없고 공포도 설치되어 있지 않아서 조선 후기에 일반화된 다포맞배집 형식을 잘 따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첨차의 형태는 정면에서 2가앙(二假昻) 위에 용두형(龍頭形)을 얹은 경우와 삼분두형을 얹은 경우가 함께 쓰였는데,

    이 가운데 후자는 조선 중기의 양식을 따른 것이어서 기림사의 목조건물 가운데 가장 오랜 양식에 해당된다.

    내부에는 고주(高柱)를 세우지 않았으며, 불단을 설치한 부분 이외의 바닥은 모두 예불공간으로 쓸 수 있도록 우물마루를 깔았다.

    불단은 얇고 평평한 하대 위에 칸마다 안상 무늬를 그려넣은 2단의 중대를 세우고 얕은 상대 갑판을 놓은 다음

    갑판 위에 계단식으로 단을 내고 맨 아랫단에는 석가삼존상과 16나한상을, 나머지 단에는 오백나한상을 배치하였다.

    내부 공포의 첨차는 주심포에서는 이출목까지 교두형첨차로 만들고 그 위에 삼분두형을 짜 얹은 조선중기적 양식으로,

    공간포에서는 일출목 첨차만 교두형으로 하고 이출목 첨차와 그 위 한대는 연봉당초(蓮峰唐草)를 조각한 조선 후기적 양식으로 처리되어 있다.

    가구는 5량가인데 앞뒷면 주심첨차 위에는 대들보를 걸치고 대들보와 마루보 위에는 파련과 공포를 합친 복합적인 대공을 놓고,

    마루보 위에는 오각형 대공을 놓아 종도리를 받쳤다.

    또 포작(包作) 위 뜬창방과 빗반자 사이에 세워진 상벽에는 직사각형 화반(花盤)을 배치하였다.

    천장은 2단 빗반자로 마감하였다. 상부 가구에서 보이는 위와 같은 특징들은

    조선 전기의 다포 맞배집이 주심포계의 특징을 공유하던 것과 일맥상통하는 것이어서 크게 주목된다.




    기림사 대적광전(祇林寺 大寂光殿) - 보물 제833

     

    대적광전은 지혜의 빛으로 세상을 비춘다는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을 모셔 놓은 법당을 가리킨다.

    이 건물은 신라 선덕여왕 12(643)에 처음 건립된 것으로 전한다.

    그 후 조선 인조 7(1629)과 정조 17(1793) 등 여러 차례에 고쳐 지었다.

    철종 13(1862)에 큰불이 일어났으나 대적광전만 화를 면하였고 1878년과 1905년에도 보수하였다.

    건물은 정면이 5칸 측면이 3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자 모양을 한 단층 맞배지붕으로 다포식 건축양식을 보이고 있다.

    겉모습은 절의 중심 법당답게 크고 힘차며,

    안쪽은 비교적 넓은 공간에 정숙하고 위엄있는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이 건물은 산사(山寺)의 건물들이 주 칸은 좁고 기둥은 높은 성향을 지닌 것과는

    구별된다. 견실한 구조와 장엄한 공간 구성이 돋보이며 옛 모습을

    보존한 조선후기의 대표적 불전 가운데 하나이다.



    기림사 삼층석탑(祇林寺 三層石塔)


    기림사 삼층석탑은 높이 약 3m 정도의 아담한 석탑이다.
    감은사 탑과 같은 돌인 안산암(安山岩)으로 만들었는데,

    2중의 기단 위에 3층으로 몸체 돌과 지붕돌을 쌓았고 그 위에 노반, 복발, 앙화까지 남아 있다.
    아랫기단은 낮은데, 한 면에 3개씩의 기둥모양이 새겨져있고, 위 기단은 높은데 각 면마다 기둥 셋이 새겨져 있다.
    몸체 돌에는 층마다 모서리 기둥을 새겼는데, 아래는 굵게, 위는 좁게 나타내는 엔타시스(배흘림) 양식이다.
    처마 끝은 4단으로 돼있다. 크기도 작지만 기단의 기둥수, 처마 받침의 단수가 줄어들어,

    통일 신라의 일반형이면서 시대 말기 것으로 보인다. 석탑 동쪽의 보리수 밑에는 목탑(木塔)터가 남아 있다.

     



    기림사 관음전(祗林寺 觀音殿)


    관음전은 사찰에서 관세음보살을 주불(主佛)로 모신 불전을 말한다.

    수많은 보살 중에서도 사람들에게 가장 친근한 보살이 관음보살(觀音菩薩)이다.

    세상의 모든 음성을 관()하여 자신을 찾는 모든 중생들을 고난으로부터 구제해주는 관세음(觀世音),

    관세음보살은 자비로 중생의 괴로움을 구제한다는 불교의 보살이다.

    관음전이 그 사찰의 주불전(主佛殿)일 때에는 관음전이라 하지 않고 원통전(圓通殿)이라고 한다.

    관음보살은 온갖 경우의 바람에 대처해 줌으로 원통보살이라고도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관음전에는 관세음보살이나 아미타삼존불(阿彌陀三尊佛),

    즉 중앙의 아미타불과 좌우의 관세음보살·대세지보살을 모신다

    관음전 안에는 관음상을 모시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양류(楊柳)관음 ·

    십일면(十一面)관음 · 해수(海水)관음 · 백의(白衣)관음 등을 모신 곳도 있다.

    그리고 후불탱화(後佛幀畵)로는 주로 아미타불화로 모신다.

    구룡사 관음전은 관세음보살은 대세지보살과 함께 아미타부처님의 협시보살이다.

    자비로 중생을 구제하는 것을 본원으로 하시어, 어려움에 부딪친 중생이 명호를 염()하기만 하면

    보살은 즉시 그 소리를 관()하여 나아가 구해 주시기 때문에 관세음이라 한다.




    기림사 관음전(祗林寺 觀音殿) 천수관음보살상(千手觀音菩薩像)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은 자비로 중생의 괴로움을 구제하고 왕생의 길로 인도하는 보살을 말하며.

    중국에서 뜻으로 옮겨 광세음(光世音관세음(觀世音관자재(觀自在관세자재(觀世自在

    관세음자재(觀世音自在) 등으로 썼는데 줄여서 관음(觀音)이라 한다.

    관세음은 구역이며 관자재는 신역인데, 산스크리트 '아바로키테슈바라',

    곧 자재롭게 보는 이[觀自在者자재로운 관찰 등의 뜻으로 본다면 관자재가 그 뜻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일찍부터 관세음보살로 신앙되어 왔으며 관음보살이라 약칭하였다.

    그래서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의 관세음보살보문품(觀世音菩薩普門品)

    관음보문품(觀音普門品) 또는 관음경(觀音經)이라 일컫는다.

    관세음(觀世音)은 세상의 모든 소리를 살펴본다는 뜻이며,

    관자재(觀自在)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자재롭게 관조(觀照)하여 보살핀다는 뜻이다.

    결국 뜻으로 보면 관세음이나 관자재는 같으며 물론 그 원래의 이름 자체가 하나이다.

    보살(bodhisattva)은 세간과 중생을 이익되게 하는 성자(聖者)이므로

    이 관세음보살은 대자대비(大慈大悲)의 마음으로 중생을 구제하고 제도하는 보살이다.

    그러므로 세상을 구제하는 보살[救世菩薩], 세상을 구제하는 청정한 성자[救世淨者],

    중생에게 두려움 없는 마음을 베푸는 이[施無畏者],

    크게 중생을 연민하는 마음으로 이익되게 하는 보살[大悲聖者]이라고도 한다.

    화엄경에 의하면 관세음보살은 인도의 남쪽에 있는 보타락산(補陀落山)에 머문다고 알려져 있다.

    보타락산은 팔각형의 산으로, 산에서 자라는 꽃과 흐르는 물은 빛과 향기를 낸다고 한다.

    관세음보살의 형상은 머리에 보관을 쓰고 있으며 손에는 버드나무가지 또는 연꽃을 들고 있고 다른 손에는 정병을 들고 있다.

    이곳에는 단독으로 천수관음보살상(千手觀音菩薩像) 조성하였지만

    아미타불의 협시보살로 나타나기도 하며 지장보살(地藏菩薩), 대세지보살과 함께 있기도 한다.

    수월관음보살(水月觀音菩薩), 백의관음보살(白衣觀音菩薩), 십일면관음보살(十一面觀音菩薩), 등의 형태로 조성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기림사 삼성각(祇林寺 三聖閣)


    명부전 구역에 있는 건물로 정면 3칸의 맞배지붕을 하였다.
    삼성각은 나반존자(독성,獨聖), 칠성(七星)과 산신(山神) 세분을 한꺼번에 모셔 놓은 전각이다.
    나반존자는 남인도 천태산에서 홀로 선정을 닦아 십이연기(十二緣起)를 깨달은 성자이다.
    칠성은 본디 중국에서 유입된 도교신앙의 신으로 한국에 들어와 토착화되었다.
    처음에는 약사 신앙과 결합되었다가 조선중기 이후 수명신의 본디 모습이 강조되었다.
    산신은 주로 호랑이와 같이 있으며 산을 주재하는 신이다.

    불교에 들어와서 호법신중(護法神衆)의 하나로 흡수되었다.




    기림사 진남루(祇林寺 鎭南樓)


     이 건물의 기능이나 용도 및 건립연대는 정확하지 않다. 진남루란 명칭은 사적기(史蹟記)”에 의하면

    무량수잔야차유진남루(無量壽殿也叉有鎭南樓)’라 하여 위치에 대한 언급만 있을 뿐이다.

    임란(壬亂)때 기림사가 수군(水軍)과 승병(僧兵)활동의 근거지로 활용되면서 붙여진 이름이 아닌가 추측할 뿐이다.

    정면 7, 측면 2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보면 사람 인()’자 모양의 맞배지붕이다.

    일반적으로 누()라고 하면 중층건물이나 다락집의 형상을 의미하나 여기서는 일반적인 형태를 벗어나 있다.

    전통칸으로 우물마루를 깔았고 판벽에 창호를 설치하였으나 현재 사용용도가 바뀌게 되면서 창호가 개체되어 원형을 알수 없고,

    정면이 긴 건물에서 목조구조의 허약성을 보와하는 구조 수법이 돋보이는 건축이다.
    기림사 진남루는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251호로 지정, 관리하고 있다.
















    기림사 삼천불전(祇林寺 三千佛殿)

     

    기림사 삼천불전은 순조 17(1817)에 초의선사가 기림사 근방에 있는 옥돌로 천불을 조성해 모셨다가

    순조 18(1818)에 해남 대둔사로 이운을 해서 대둔사 천불전에 모셨다.

    현재의 건물은 1990년에 지어진 전각으로 정면 7칸 측면 3, 108평 규모이고 삼천불이 모셔져 있다.

    이는 항상 어디에서나 계신다는 사상에서 유래된 것으로 과거 천불, 현재 천불, 미래 천불의 의미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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