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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차돈순교비(異次頓殉敎碑)
    국내 나들이/동상(銅像),흉상(胸像),비(碑), 2016. 8. 14. 23:30

    이차돈순교비(異次頓殉敎碑)


    경주 소금강산 백률사 출토(慶州 小金剛山 栢栗寺 出土)
    시기: 통일신라 817년


     고구려(高句麗)와 백제(百濟)는 370년대에 불교(佛敎)를 공인(公認)하였지만,

    신라(新羅)는 법흥왕(法興王)15년(528)에 불교를 공인하였습니다.

    이차돈(異次頓)은 이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삼국유사(三國遺事)』의 「원종흥법(原宗興法) 염촉멸신(厭髑滅身)」조(條)에는

    사인(舍人)이라는 벼슬을 하던 22살 난 박염촉의 순교(殉敎)가 묘사되어 있습니다.

    박염촉과 이차돈은 같은 사람입니다. 이차돈의 목을 베자 젖이 한 길이나 솟고,

    그의 머리는 금강산(金剛山 소금강산)에 떨어졌으며, 하늘에서는 꽃비가 내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헌덕왕(憲德王 재위 809~826) 9년(817)에 그의 행적을 새긴 비석을 세웠다고 합니다.

    이 비석은 백률사에 있던 이차돈 순교비입니다.
    비석을 왜 백률사(栢栗寺)에 세웠을까요? 『삼국유사』를 살펴보면,

    신라 사람들은 이차돈의 머리가 떨어진 곳에 절을 세우고 자추사(刺楸寺)라 했다고 합니다.

    가시(刺)가 있는 호두(楸)는 곧 밤(栗)이니, 자추사(刺楸寺)가 곧 백률사(栢栗寺)를 가리킨다 하겠습니다.

    즉 이차돈을 기념하기 위해 지은 절에 거의 행적을 새긴 비석을 세운 것이지요.
    비석의 한 면에는 이차돈 순교 장면을 극적으로 묘사하였고,

    나머지 다섯 면에는 정간(井間)을 치고, 3cm 크기의 글자를 새겼습니다.

    글자는 마멸이 심하여 아쉽게도 판독이 쉽지 않았지만,

    『흥인군신각 김생서(興隣君新刻金生書)』, 『원화첩(元和帖)』에 관련 내용이 남아있습니다.


     = 경북 경주시 인왕동 국립경주박물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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