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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여 정림사지 5층석탑(扶餘 定林寺址 五層石塔) - 국보 제9호
    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16. 8. 20. 05:00

    부여 정림사지 5층석탑(扶餘 定林寺址 五層石塔) 국보 제9


    이 탑은 백제가 부여로 도읍을 옮긴 후 6세기 말에 세워진 석탑이다.

    정림사 절터 한가운데 자리한 오층석탑은 높이가 8.33m의 결코 작지 않는 탑으로

    탑신부에는 모서리마다 기둥을 세워 민흘림 기법을 적용해 상승감을 보여주는 등

    장중하면서도 부드럽고 육중하면서도 단아한 백제의 멋을 느낄 수 있는 백제석탑의 완성된 모습을 보여준다.

    신라군과 연합해 백제를 멸망시킨 당나라 장수 소정방의 백제를 정벌하고 세운 기념탑이란 글씨를 새겨놓아

    한동안 소정방이 세운 평제탑으로 잘못 알려지기도 했다.


    =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정림사지 =















    대당평백제국비명(大唐平百濟國碑銘)


    정림사지오층석탑 1층 탑신부에 새겨진 당나라 장군 소정방의 전승기념문이다.

    비문은 4면 모두에 새겨져 있으며 중국 낙주 하남의 권희소가 쓰고 당 현경 5년(660) 8월 15일에 완성하였다. ​

    내용은 백제 31대 의자왕, 왕자 융, 효 등13인과 대좌평 사타천복과 국변성 이하 7백여 명을 중국에 압송하였다 하고,

    당나라는 후에 5도독과 37주 250현을 두었고 당시에 백제영토에는 24만호에 인구 620만이었다고 적고 있다.

    백제 멸망 당시에 사비성이 7일동안 밤낮으로 불에 타 거의 건조물이 남지 않은 상태에서

    당군은 철수에 앞서 사비궁터에 있었던 부여석조와 정림사지오층석탑에 전승문을 새기었던 것으로 보인다.


















    정림사지 오층석탑의 구조(定林寺址 五層石塔의 構造)


    여러장의 돌을 사용하여 단층으로 된 낮은 기단을 만들고

    면석의 각 면에는 우주(귀퉁이 기둥돌)와 탱주(지탱하는 돌)를 하나씩 세웠다.

    1층 탑신의 네 모퉁이에는 별도의 돌로 민흘림의 우주를 만들고 그 사이에 두 장씩 판석을 끼웠다.

    탑신 2층부터 몸돌은 윗면으로 갈수록 부재가 줄어 차례로 4개, 2개, 1개의 돌로 만들어져 있다.

    옥개석(지붕돌)의 아래 면에는 여러 장의 석재로 구성된 2단의 지붕받침을 두었는데,

    탑신과 마찬가지로 위층으로 갈수록 석재의 수가 줄어든다.
    옥개석(지붕석)은 얇고 넓으며 전각에 이르러 약간의 반전이 나타나고,

    옥개받침(지붕받침)아래에는 사각형의 석재를 놓고 윗면을 비스듬히 다듬어서 간략화된 공포(公布) 형태를 재현하였다.

    지붕돌의 윗면에는 한 단의 탑신받침을 놓았으며 상륜부에는 노반석을 두었다.

    몸돌에 비해 지붕돌의 폭이 넓고, 작은 석재를 많이 사용하고 축조하여 외견상 목조건물과 유사하다.

    안정감 있는 체감률의 격조 높은 탑이다. (높이 약8.8m)




    정림사지 오층석탑의 비례(定林寺址 五層石塔의 比例)


    탑과 탑을 둘러싼 건물들의 배치와 구성은 매우 정교한 수치에 의해서 구성되었다.

    탑이 아름다워 보이는 것은 우리가 자세히 알지 못하는 수리적 원리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탑의 건립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지대석의 크기이다. 지대석의 크기에 의해 모든 탑은 높이와 너비가 결정된다.

    정림사지 5층 석탑은 지대석의 넓이가 14척(그 당시에 주로 사용하던 단위 ‘고려척’)이며,

    그 절반인 7척이 이 탑의 건립 기본 단위가 되었다.





    정림사지 오층석탑(定林寺址 五層石塔)


    백제의 장인들은 기존의 목조가 가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석재를 택했다. 석탑을 표현함에 있어 목조탑을 재현하기에 그쳤으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석재의 가공적 용이함을 위해 규모를 축소하고 세부 형식을 간략화하였고, 정림사지 석탑이 축조 되었다.

    세부 구성형식이 정형화되지 못한 미륵사지 석탑에 반하여 정림사지 5층 석탑은 정돈된 형식미와 세련되고 완숙한 미를 보여준다.

    또한 좁고 낮은 단층기단과 각층우주에 보이는 민흘림, 살짝 들린 옥개석 단부, 낙수면의 내림마루 등에서 목탑적인 기법을 볼 수 있지만

    목조의 모방을 벗어나 창의적 변화를 시도하여 완벽한 구조미를 확립하였고, 우리나라 석탑의 시원양식으로서 그 의의가 크다.



    건립연대


    정림사의 창건연대는 사비천도 이후부터 백제 멸망 전까지인 538~660년에 석탑으로 건립되었는지,

    혹은 목탑 이후에 석탑이 건립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탑의 양식으로 보아 미륵사지 석탑에서 진일보한 석탑으로서 전형적인 모습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에

    미륵사지 석탑보다는 다소 늦게 건립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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