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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산(烏山) 독산성(禿山城) 및 세마대지(洗馬臺址) - 사적 제140호
    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16. 11. 6. 05:00

    오산(烏山) 독산성(禿山城) 및 세마대지(洗馬臺址) - 사적 제140호


    독산성(禿山城)은 다른 이름으로 독성산성이라고도 한다.
    선조 25년(1592)12월 임진왜란 중에 권율 장군이 전라도로부터 병사 2만여 명을 이끌고

    이 곳에 주둔하여 왜병 수만 명을 무찌르고 성을 지킴으로써 적의 진로를 차단했던 곳이다.
    독산성이 언제 만들어졌는지 분명하지는 않으나 원래 백제가 쌓은 성일 것으로 추측되며,

    통일신라시대나 고려시대에도 군사상 요충지로 쓰였을 것으로 본다.
    선조 27년(1594) 백성들이 산성을 쌓고, 임진왜란이 끝난 선조 35년(1602)에 당시 부사 변응성이 다시 보수하고,

    그후 정조 16년(1792)과 20년(1796)에도 다시 공사했다.
    성 둘레는 3,240m이고 문도 4개이지만 성 안에 물이 부족한 것이 큰 결점이었다.
    이런 결점 때문에 이 곳에는 세마대(洗馬臺)의 전설이 있는데,

    권율 장군이 산위로 흰 말을 끌어다가 흰 쌀로 말을 씻기는 시늉을 해 보이므로

    왜군이 성안에 물이 풍부한 것으로 속아서 물러났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경기도 오산시 지곶동








































    정조의 효심이 담긴 독산성

    영조 사도세자 - 정조 3대가 찾은 독산성


    정조의 아버지인 사도세자는 온양온천에 행차했다가 환궁 하던 중

    장마 때문에 독산성에서 하루를 묵고 백성들에게 몇가지 이야기를 남기고 갔습니다.

    그로부터 30년 뒤 풍수지리의 문제로 독산성을 없애야 한다는 논란이 일어났지만

    효심이 깊었던 정조는 아버지의 뜻을 기리기 위해 오히려 독산성을 더 고쳐 쌓도록 명하여

    지금의 독산성의 모습이 갖춰졌습니다.






    독산성 및 세마대지 - 사적 제140호


    독산성 또는 독성산성(禿城山城)이라고도 하는 이 산성은 평지에서 돌출하여

    사방을 두루 살필 수 있어서 군사적으로 중요한 곳이며 조선시대에는 남한산성과

    용인의 석성산성 등과 함께 도성 방어를 위한 삼각 체계를 형성하였다.

    기록에 따르면 이 성은 백제가 처음 쌓았고 통일신라와 고려를 거처 임진왜란 때까지 계속 이용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 선조 27년 9월 11일부터 14일까지 불과 4일만에 백성이 합심하여 성벽을 새로 쌓았다고 한다.

    그후 임진왜란이 끝나고 이 성의 중요성이 강조되자 1602년(선조35)변응성(邊應星)이 보수하고

    1796년(정조20) 수원성의 축조와 함께 개축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성의 둘레는 1,095m이다.

    이곳에 있는 세마대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온다.
    선조 25년(1592) 12월에 전라도 관찰사 겸 순변사였던 권율(權慄)이

    근왕병(勤王兵) 2만을 모집하여 북상하다가 이 성에서 진을 치고 있었다.
    그때 왜병 가토가 이끄는 왜군 수만 명이 이곳을 지나다가

    이 벌거숭이산에 물이 없으리라 생각하고 물 한지게를 산위로 올려 보내 조롱하였다.
    그러자 권율은 물이 풍부한 것처럼 보이기 위해 백마(白馬)를 산위로 끌고가 흰 쌀을 말에 끼엊으며 목욕시키는 시늉을 하였다.
    이를 본 왜군은 산 꼭대기에 말 씻길 정도로 물이 풍부하다고 오판하고 퇴각하였다고 한다.

    이때 말을 씻었던 높은대를 세마대라 하며 1957년에 복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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